응암동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응암동성당은 서울대교구 중서울지역 제3 은평지구에 속하는 본당으로, 서울 은평구 응암동에 있다. 1968년 9월 23일 수색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모 성심이다. 1968년 8월 15일 천막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고, 1972년 10월 22일 노기남 대주교의 주례로 성당을 봉헌했으며, 1991년 10월 27일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현재의 성당이 봉헌되었다. 제5대 주임 함세웅 신부가 재임한 본당이기도 하다.

역사

〔설립〕 수색 본당 관할이던 응암동 지역은 본당과 거리가 멀어 본당 신설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1966년 9월 응암동 본당 설립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1968년 8월 성임옥(빅토리아)이 기증한 응암동 247-21의 185평에 천막 성당을 세워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같은 해 9월 23일 본당으로 설정되었고 김윤상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응암2·3·4동 전 지역과 응암1동, 북가좌2동 일부 지역이다.

〔성당 건립〕 김윤상 신부는 1969년 2월 응암동 338-2의 대지 300평(현 성당 부지)을 매입하였고, 2대 주임 유재국 신부는 이해 4월 30평 규모의 콘세트 건물을 지어 성당으로 사용하였다. 3대 주임 고명철 신부가 1970년 4월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4대 주임 차인현 신부 재임기인 1972년 10월 22일 총 건평 215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되었고 노기남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

〔1970년대〕 5대 주임 함세웅 신부는 1974년 4월 수녀원 건물(대지 46평, 건평 22평)을 매입하였고, 5월에 역촌동 본당이 분리되어 역촌동 공소 신자(46세대 150명)가 이관되었다. 함세웅 신부가 1976년 3월 '3·1절 명동 성당 특별 기도회 사건'으로 수사 기관에 연행되자 본당 신자들은 구속 사제를 위한 특별 기도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함세웅 신부는 1977년 12월 25일 석방되었고, 그동안 송순용(라자로), 박용일(타데오) 신부가 임시 주임으로 사목하다가 최창화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980년대〕 6대 주임 최창화 신부는 1981년 1월 교구 사목 계획 지침에 따라 사목 협의회를 개편했고, 같은 해 9월 21평 규모의 성당 앞집을 매입하여 교육관으로 사용하였다. 7대 주임 봉희만 신부는 1983년 5월 응암 신용 협동 조합을 창립하였고 8월에는 본당 설정 15주년 기념 책자 《설지전》을 발간하였으며, 응암동 본당에서 은퇴한 뒤 본당 거처에서 지내다 1986년 4월 선종하였다. 9대 주임 박기주 신부는 1986년 10월 성전 건립 추진 위원회를 발족시키고 1987년 5월 성전 건립 3개년 종합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1988년 3월 기공식을 가졌다.

〔1990년대 이후〕 1991년 10월 27일 대지 832평에 성당(연면적 1,302평)과 사제관 및 수녀원(연면적 164평)이 완공되어 김수환 추기경 주례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10대 주임 김영일 신부 재임기인 1993년 3월 본당 25년사 편찬 위원회가 발족하여 같은 해 10월 《응암동 본당 25년사》가 발행되었고, 1996년 1월에는 2000년대 복음화 추진 위원회가 발족하였다. 12대 주임 김몽은 신부는 북한 선교에 힘써 두 차례 평양 장충 성당을 방문했으며, 1999년 1월 '민족 화해와 일치'를 주제로 특강을 열고 2000년 2월에는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주제로 특강과 사진 전시회를 실시하였다.

교세는 1976년 3,293명, 1980년 4,583명, 1985년 7,116명, 1990년 7,916명, 1995년 9,191명, 2000년 5,668명이다.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는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가 본당의 수녀회로 기재되어 있다.

역대 주임은 초대 김윤상 베네딕도(1968.9~1969.4), 2대 유재국 바실리오, 3대 고명철 아우구스티노(1970.1~12), 4대 차인현 알로이시오(1970.12~1973.11), 5대 함세웅 아우구스티노(1973.11~1977.11), 6대 최창화 토마스 아퀴나스(1982.6까지), 주임 서리 배세영 마르첼리노(1982.6~8), 7대 봉희만 안토니오(1982.8~1985.2), 8대 이성만 토마스(1985.2~1986.8), 9대 박기주 미카엘(1986.8~1992.9), 10대 김영일 발타사르(1992.9~1997.9), 11대 나원균 바오로(1997.9~1998.9), 12대 김몽은 사도 요한(1998.9~)이다.

건축과 공간

1968년 8월 응암동 247-21의 185평 천막 성당에서 출발하여, 1969년 응암동 338-2의 대지 300평으로 옮겼다. 1969년 4월 30평 콘세트 건물, 1972년 10월 22일 건평 215평 성당을 거쳐, 1991년 10월 27일 대지 832평에 연면적 1,302평의 성당과 연면적 164평의 사제관·수녀원이 완공되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수색 본당: 1968년 9월 응암동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
  • 역촌동 본당: 1974년 5월 응암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역촌동 공소 신자 46세대 150명이 이관된 본당이다.
  • 함세웅 신부: 1973년 11월부터 1977년 11월까지 제5대 주임을 지냈으며, 1976년 3월 '3·1절 명동 성당 특별 기도회 사건'으로 연행되어 1977년 12월 25일 석방되었다.
  • 성임옥(빅토리아): 1968년 8월 천막 성당이 세워진 응암동 247-21의 185평을 기증한 신자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응암동 본당」. 1968년 9월 23일 수색 본당에서 분리 설립, 주보 성모 성심,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천막 성당·성당 신축과 봉헌, 역촌동 본당 분리, 함세웅 신부 관련 사건, 1991년 성당 봉헌, 25년사 발행, 북한 선교 활동을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975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응암동」. 소속 지구(중서울지역 제3 은평지구), 설립일 1968.09.23, 주보 성모 성심,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를 확인하였다.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char=all&code=201000201&gubn=4&gubn2=all&gyogu=2010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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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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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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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응암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04:41. https://missamap.com/ko/kr/seoul-eungam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