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

목차
  1. 개요
  2. 역사
  3.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는 경남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송곡마을 일대에 있는 마산교구의 성지로, '호남의 사도'로 불린 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막내딸 유섬이의 무덤이다. 유섬이는 1801년 신유박해로 아버지가 순교하자 아홉 살에 거제도 관비로 유배되어 일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71세에 세상을 떠났다. 관할 성당은 거제성당이다.

역사

전주교구 기사에 따르면 1801년 신유박해로 유항검과 가족들이 모두 순교한 뒤에는 당시 국법으로 처형할 수 없던 15세 미만의 세 자녀가 있었다. 유섬이(9세)는 거제도, 유일석(6세)은 흑산도, 유일문(3세)은 신지도로 유배되었다. 유섬이는 노비 신분으로 초남이에서 먼 거제도까지 유배의 길을 떠나 거제 관아에 도착했고, 거제부사의 호의로 읍에 사는 노파의 수양딸이 되어 71세까지 독신으로 고결한 삶을 살았다. 가톨릭신문은 유섬이가 아버지 유항검이 전주 남문 밖에서 능지처사형으로 순교하면서 대명률의 연좌제에 따라 아홉 살에 거제부 관비로 유배된 인물이라고 설명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유섬이를 유항검 복자와 하느님의 종 신희의 막내딸로 소개하며, 기록에 따르면 일평생 동정녀로 순교자적 삶을 살다가 1863년 71세의 나이로 선종했다고 적는다. 거제시민뉴스는 유섬이가 9세에 거제부의 관노로 유배되어 71살을 일기로 생을 마쳤으며 1862년 거제부사로 부임한 하겸락에 의해 묘비가 세워진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반 백성이 묘비를 세울 수 없던 시대 상황에서 하겸락 부사의 관심이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유섬이에 관한 문헌 기록은 전 수원교회사연구소 고문 하성래 아우구스티노 박사가 거제도호부사를 지낸 하겸락(1825-1904)의 문집 「사헌유집」의 해제를 쓰던 중 우연히 발견해 한국교회사연구소의 「교회와 역사」 4월호에 발표했다. 하성래 박사와 서종태 스테파노 교수는 유섬이의 묘 옆 바위에 '칠십일세유처녀지묘'라고 새겼다는 「사헌유집」의 기록을 근거로 2월에 거제도를 찾았으나 묘를 찾지 못했다. 이후 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 김진소 신부가 거제도 옥포본당 주임 허철수 신부에게 사정을 전했고, 허 신부가 본당 신자들과 함께 묘의 위치를 아는 주민들을 찾아냈다.

2014년 5월 16일 김진소 신부와 서종태 교수, 허철수 신부는 '유처자묘'라고 새겨진 묘비를 확인했다(가톨릭신문). 서 교수는 무덤이 오랜 세월 돌보는 이가 없어 봉분이 거의 사라져 평지처럼 보이지만 묘비가 확인된 만큼 위치는 확실하다고 판단했고, 문헌의 '유처녀지묘'가 '유처자묘'로 새겨진 경위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거제시민뉴스는 송곡마을 윤성부 이장이 마을에 구전으로 전해지던 '유처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묘를 찾았으며, 지난 4월 말에야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주교회의 자료는 묘소가 거제도에서 발견된 해를 2015년으로 적어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허철수 신부는 지역 노인들을 통해 유섬이가 전라도의 음식문화와 가사를 경상도에 소개한 사실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거제시민뉴스도 구전에 따르면 유섬이가 전라도 음식문화와 가사를 거제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는다.

주교회의에 따르면 전주교구는 2019년 1월 유섬이 묘소의 묘토석 일부를 치명자산 가족 합장묘에 합토했다. 전주교구 기사는 이 묘소가 한국천주교성지순례 167곳의 하나로 지정되어 전국의 순례자가 찾는다고 적는다. 2020년에는 전주 우전성당 신자들이 봉분 위에 풀이 없이 메마른 모습을 안타깝게 여겨 초남이성지의 흙과 물, 잔디를 가져와 11월 15일 봉분에 심고 물을 뿌렸으며, 초남이성지 개발을 시작한 김환철 원로 신부가 동행해 묘소 앞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이 일은 우전성당 주임 김훈 신부의 지원과 초남이성지 담당 김성봉 신부의 배려, 관할 성당인 거제성당의 허락으로 이루어졌다.

마산교구 주보 「가톨릭마산」 2541호(2022년 11월 27일)에 따르면 2022년 11월 12일 교구 총대리 최봉원 야고보 신부의 주례로 유섬이 묘소 십자가 축복식과 감사미사가 봉헌되었다. 행사는 거제지구장 이상원 베네딕토 신부가 주관했고 신자 50여 명이 함께했다. 묘소 올라가는 길이 비좁고 경사가 심해 거제시의 도움으로 진입로 개설과 교량 가설 공사를 했으며, 교구 루멘회가 진입로 입구에 5평 정도의 땅을 마련해 전주 치명자산 유항검 가족 묘지의 십자가와 똑같은 쌍둥이 십자가를 봉헌했다. 거제시민뉴스는 거제성당 신도들이 묘지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이정표를 세웠다고 전한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가톨릭신문은 유섬이의 무덤이 발견됨으로써 유항검과 그 자제들이 '전라도의 사도'로서 신앙을 지키고 전파한 사실이 보다 분명히 밝혀지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거제시민뉴스는 유섬이를 관노로 내몬 신유박해가 단순한 천주교 박해가 아니라 시파를 제거하기 위해 벽파가 벌인 정략적 사건이라고 설명한다. 전주교구는 이곳을 전국의 많은 순례자가 찾는 필수 순례 코스로 소개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치명자산 성지: 유항검과 가족 순교자들이 합장된 전주의 성지로, 유섬이 묘소의 묘토석 일부가 합토되어 있다.
  •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유섬이의 아버지로, 신유박해 때 전주에서 순교한 복자이다.
  • 신희: 유섬이의 어머니로,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이 추진 중이다.
  • 하겸락: 거제부사로 있으며 유섬이의 묘비를 세우고 문집 「사헌유집」에 기록을 남긴 인물이다.
  • 초남이 성지: 우전성당 신자들이 흙과 잔디를 가져와 유섬이 묘소 봉분에 심은 전주교구의 성지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치명자산 성지. 유섬이의 가계와 선종, 묘소 발견 연도 표기, 2019년 합토를 확인했다.
    https://www.cbck.or.kr/koreanmartyrs/Shrines/50
  2. 천주교 전주교구, 거제 유섬이 묘, 초남이성지 흙·물·잔디로 봉분(2020년 12월 4일). 유섬이의 유배와 생애, 성지순례 지정, 2020년 봉분 보수를 확인했다.
    https://www.jcatholic.or.kr/bbs/board.php?bo_table=interbro_special&theme=interbro&wr_id=322
  3. 가톨릭신문, 시복 대상 유항검 딸 유섬이 묘 발견(2014년 5월 21일). 문헌 기록 발견 경위와 묘비 확인을 확인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405210090448
  4. 거제시민뉴스, 비운의 여인 유처자, 200년 지나 빛을 보다(2014년 7월 11일). 묘 발견 과정과 묘비 건립 경위, 구전을 확인했다.
    http://www.geojesim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4
  5. 마산교구 고현성당,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소 십자가 축복식과 감사미사(가톨릭마산 2541호, 2022년 11월 27일). 2022년 십자가 축복식과 진입로 정비를 확인했다.
    http://goh.cathms.kr/xe/board_kHzP14/19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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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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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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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5:12. https://missamap.com/ko/kr/masan-sungyojayi-ttal-yuseomi-my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