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

성지

장소 소개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는 거제시 거제면에 있는 마산교구의 성지·사적지로,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서도 같은 이름의 순례 장소로 확인된다. 거제본당이 문의를 맡는 이곳은 순교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딸 유섬이의 무덤을 중심으로, 박해가 순교자 개인뿐 아니라 남겨진 가족에게 어떤 삶을 강요했는지를 기억하게 하는 장소이다.

유섬이는 자신이 순교한 인물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순교 뒤 어린 나이에 거제로 유배되어 관비로 살아야 했던 박해의 피해자였다. 그의 생애는 순교 장면만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한국 천주교회의 박해사를 보여 준다. 교회 안팎의 사료와 연구는 유섬이가 오랜 세월 거제에서 삶을 이어 가며 정결과 이웃 사랑을 지켰던 인물로 기억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묘소는 그래서 순교자의 가족과 유배자의 삶, 그리고 지역 사회 안에서 이어진 신앙의 기억을 함께 돌아보게 하는 순례지라는 의미를 지닌다. 특히 순교 영웅만이 아니라 박해 뒤에도 살아남아 삶 전체로 신앙의 결과를 감당한 이들을 기억하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순교 성지와 구별되는 의미가 있다.

역사와 유래

유섬이는 1793년에 태어난 순교복자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의 딸이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유항검이 동생 유관검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한 뒤, 모반대역 죄인의 가족에게 적용된 연좌제 때문에 아홉 살 유섬이도 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경상도 거제부의 관비로 정배되어 가족과 고향에서 떨어진 채 섬에서 삶을 시작해야 했다.

그의 삶은 한동안 교회사의 중심 기록에서 거의 사라져 있었다. 뒤에 하성래 아우구스티노 박사가 거제 도호부사를 지낸 하겸락의 문집 《사헌유집》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유섬이에 관한 기록을 찾아내면서 구체적인 생애가 다시 드러났다. 이 기록에는 유섬이가 성장하면서 자신의 몸을 지키려 애쓴 모습과, 긴 유배 생활 속에서도 정결을 지키며 살아간 정황이 담겨 있다. 현대 교회사 연구는 교회 문헌과 조선시대 관찬·개인 기록, 문학 자료를 함께 검토하며 그의 삶을 복원해 왔다.

《사헌유집》은 하겸락이 거제부사로 있던 1863년, 유섬이가 일흔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은 사실도 전한다. 하겸락은 장례에 필요한 물품을 마련하도록 하고 묻을 자리를 정하게 했으며, 묘 옆 바위에 ‘칠십일세 유처녀지묘’라는 글자를 새기도록 했다고 기록하였다. 이 대목은 유섬이의 죽음과 매장이 단순한 후대 전승이 아니라 동시대 기록에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이후 문헌 연구를 통해 잊혔던 이름과 삶이 다시 알려지면서 유섬이는 한국 천주교 박해사의 범위를 넓혀 주는 인물로 주목받게 되었다. 그의 이야기는 순교자와 함께 처벌받고 살아남아 긴 세월을 감당해야 했던 가족들의 역사 역시 교회사가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오늘의 묘소는 그 기억이 구체적인 장소와 연결되어 보존되는 지점이 되었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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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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