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순교자 묘

목차
  1. 개요
  2. 역사
  3.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순교자 묘는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산106번지에 있는 마산교구의 순교자 묘소로, 병인박해 때 김해 관아에서 순교한 평신도 서응권 요한(1827~1866?)과 아내 윤 안나의 쌍분이 조성된 곳이다. 서응권은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에 포함된 시복 대상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매일미사 성지 안내가 연락처로 적은 성당은 진례 성당이다.

역사

서응권(徐應權) 요한의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자(字)는 '선겸'(善兼)이며, '응권'은 족보에 기록된 이름(보명)이다. 그는 대대로 경상도 김해군 상북면 장방리의 노루목(현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장방리 대항)에 살던 집안에서 태어났고, 장성한 뒤 파평 윤씨 안나를 아내로 맞아 자녀 여섯을 두었다(주교회의 약전, 마산교구 안내). 마산교구 안내는 그의 신분을 평신도, 생년을 1827년으로 적으며, 달성 서씨 현감공파보(대구: 대보사, 2001)에 서응권 요한이 정해생(1827년생)으로 나온다고 밝힌다.

요한과 안나 부부는 농사로 생계를 유지했고 언제부터인가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열심히 교리를 실천했으며, 여섯 자녀에게도 교리를 가르쳐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끌었다. 장남 서석원(徐錫元, 베네딕토)이 장성해 혼인하면서 1865년에는 손자를 보는 기쁨도 얻었다(주교회의 약전).

이 가족의 평온은 1866년 병인박해로 깨졌다. 박해의 위협이 경상도 남부 지역까지 미쳐 김해 노루목 마을에도 포교들이 들이닥쳤을 때, 서응권은 미리 소식을 알고 아내 안나와 함께 마을 인근의 초분(草墳) 안으로 피신했다. 포교들이 천주교 신자로 알려진 자신들을 체포하러 온 것이므로 다른 자녀들은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흘 뒤 포교들이 물러갔을 것이라 여기고 집으로 돌아온 부부는 어린 자녀 세 명이 포교들에게 살해된 참극을 맞닥뜨렸다. 장남 베네딕토와 차남 석형(錫亨), 삼남 석수(錫首, 비오)는 위험을 느끼고 피신했으나 나머지 어린 자식 세 명은 집에 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주교회의 약전).

요한과 안나 부부는 "우리 대신 이 어린 것들이 모두 죽고 말았는데 이곳에서 어찌 농사를 짓고 살아가겠으며, 또 우리만 살아서 무엇 하리오? 관가에 자수하여 신앙을 증거함만 같지 못하다."라고 생각해 김해 관아에 자수했다. 관장은 천주교 신자냐고 묻고 배교하면 살려 주겠다고 유혹했으나 부부는 이를 거부했고, 형관들이 갖가지 형벌을 가했지만 "천주 신앙을 버릴 수 없다."며 신앙을 증거했다. 이후 다른 교우들과 함께 순교했으며 당시 요한의 나이는 39세 이상이었다. 주교회의 약전은 순교일을 '1866?', 순교지를 김해로 적고, 마산교구 안내는 순교 형태를 교살, 순교지를 김해 관아로 적는다.

마산교구 안내문의 참고 항목에 따르면 기존에는 서응권의 순교 연도를 1868년으로 기록해 왔다(마백락, 『경상도 교회와 순교자들』, 대건출판사, 1989; 마산교구 진영 교회, 『진영 본당 50년사』, 1985). 그러나 이 연도는 서응권과 관계가 없는 관변 자료(『일성록』과 『승정원일기』 1868년 윤4월 23일, 6월 4일)에 근거한 것이어서 옳지 않으며, 여러 정황에서 볼 때 체포·순교 시기는 1866년 이후의 병인박해기로 추정되고 집안 전승에도 이 시기의 순교자로 전해져 왔다고 설명한다.

순교한 뒤 관아는 요한 부부의 시신을 함부로 매장했으나, 2개월 뒤 가족들이 두 사람의 시신을 따로따로 수습해 각각 다른 장소에 안장했다. 훗날 삼남 서석수(비오)가 지금의 장소(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산106번지)로 함께 이장해 쌍분이 조성되었다(주교회의 약전, 마산교구 안내).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133위 약전 페이지는 서응권의 관련 장소로 '[부산] 하느님의 종 2위 현장 조사(김해, 밀양 삼랑진)'와 '[마산] 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묘소(김해) 현장 조사' 항목을 연결해 두고 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서응권 요한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의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약전 103번에 실려 있다. 같은 위원회의 133위 순교자 명단은 그를 103번으로 올리고 순교 연도를 1866?, 순교지를 김해로 적는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 성지 안내는 이 묘를 전국 성지·순교 사적지 목록에 올리고 진례 성당을 연락처로 적는다. 마산교구 누리집은 이 묘소를 교구 홈페이지의 '성지 및 순교자' 항목에서 복자 신석복 마르코, 구한선 타대오, 정찬문 안토니오, 박대식 빅토리노, 윤봉문 요셉, 순교자의 딸 유섬이 묘와 함께 안내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윤 안나: 서응권의 아내로 함께 김해 관아에 자수해 순교했으며, 쌍분에 함께 모셔졌다.
  • 서석수 비오: 서응권의 삼남으로, 부모의 유해를 지금의 장소로 함께 이장해 쌍분을 조성했다.
  • 서석원 베네딕토: 서응권의 장남으로 1865년에 아들을 얻었다.
  • 노루목(한림면 장방리 대항): 서응권이 대대로 살던 마을이다.
  • 진례 성당: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 성지 안내가 이 묘소의 연락처로 적은 마산교구 본당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133위 시복 대상자 약전 서응권 요한. 가계와 생업, 박해 때의 피신과 자녀의 희생, 자수와 순교, 시신 수습과 쌍분 조성을 확인했다.
    https://cbck.or.kr/koreanmartyrs/133-Martyrs/103
  2. 천주교 마산교구, 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인적 사항 표, 생년과 순교 연도에 관한 참고 설명을 확인했다.
    https://cathms.kr/F_7
  3.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매일미사, 전국 성지·순교 사적지·순례지 안내. 묘소 소재지와 연락처 성당(진례 성당)을 확인했다.
    https://missa.cbck.or.kr/Shrines
  4.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 133위 명단. 서응권 요한의 번호와 순교지를 확인했다.
    http://www.cbck.or.kr/Catholic/Martyr/133-Marty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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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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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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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순교자 묘",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5:50. https://missamap.com/ko/kr/masan-haneunimyi-jong-seoeunggwon-yohan-sungyoja-my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