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순교자 묘

성지

장소 소개

하느님의 종 서응권 요한 순교자 묘는 천주교 마산교구가 소개하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성지·사적지로 등재한 김해 진례의 순교 신앙 현장이다. 서응권 요한과 아내 윤 안나의 유해가 함께 모셔진 쌍분으로 전해지며, 병인박해기에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한 평신도 가정의 증언을 기억하게 한다. 서응권 요한은 한국 교회가 시복을 추진해 온 ‘하느님의 종 133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이 묘소는 그의 생애와 직접 연결되는 장소다.

이곳의 의미는 거대한 순례 시설이나 건축물보다 가족의 신앙과 박해의 기억에 있다. 방문자는 서응권 요한 개인뿐 아니라 아내와 자녀들에게 이어진 신앙, 그리고 순교 뒤 유해를 수습해 보존한 가족의 기억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가 묘소를 현장 조사하고 자료로 남긴 곳이기도 하여, 김해 지역의 병인박해와 한국 교회의 시복시성 작업을 연결해 이해하는 데 중요한 현장이다.

역사와 유래

서응권 요한은 1827년경 경상도 김해군 상북면 장방리 노루목에서 대대로 살아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이며 자는 선겸으로 전해진다. 장성한 뒤 윤 안나와 혼인해 여섯 자녀를 두었고, 부부는 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면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자녀들에게도 교리를 가르쳤다. 주교회의 약전은 이 가정이 박해 이전부터 신앙생활을 충실히 이어 온 평신도 가정이었음을 전한다.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포교들이 노루목 마을까지 들이닥치자 부부는 잠시 피신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 어린 자녀 셋이 희생된 사실을 알게 된 뒤 서응권 요한과 윤 안나는 김해 관아에 스스로 나아갔고, 배교를 거부하며 형벌을 견딘 끝에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주교회의와 마산교구 자료는 정확한 순교일과 처형 방식이 확정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하며, 순교 시기는 병인박해기인 1866년 이후로 추정한다.

순교 뒤 부부의 시신은 처음에는 관아에 의해 매장되었으나, 약 두 달 뒤 가족이 수습해 각각 안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훗날 셋째 아들 서석수 비오가 부모의 유해를 현재의 김해 진례면 시례리 묘역으로 함께 이장하면서 쌍분이 조성되었다. 이 가족의 수습과 이장 덕분에 순교자의 구체적인 묘소가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2019년 5월 이 묘소를 현장 조사하고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이는 서응권 요한을 ‘하느님의 종 133위’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묘소와 전승을 다시 확인한 작업이었다. 오늘의 묘소는 한 평신도 순교자의 죽음만이 아니라, 박해를 겪은 가족과 그 유해를 지켜 온 후손의 기억이 함께 이어진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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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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