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식 프란치스코, 김현채 토마스 묘소
개요
김난식 프란치스코·김현채 토마스 묘소는 전북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에 있는 전주교구의 성지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생 김난식과 7촌 조카 김현채의 무덤이다. 두 사람이 병인박해(1866)를 피해 숨어 산 회문산 중턱 먹구니 공소 자리에 있으며, 소속 성당인 칠보성당이 관리를 맡고 있다.
역사
디지털정읍문화대전에 따르면 김난식(프란치스코, 1827-1873)은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생이다. 김대건이 1821년에 태어나고 김난식이 1827년에 태어났는데, 김대건의 족보명이 김지식이어서 형제의 이름을 '지란'으로 지었음을 알 수 있다고 이 문헌은 설명한다. 김난식은 김대건이 사제가 되기 위해 중국 마카오로 유학을 떠난 뒤 열두 살에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가 순교하면서 어머니 고 우르술라와 어렵게 살았다. 1845년 김대건이 사제품을 받고 귀국했으나 1년 만에 순교하자 어머니와 함께 떠돌아다니며 신자들의 도움을 받고 지냈다. 안동 김씨와 혼인했으나 곧 사별했다.
전주가톨릭순교현양원의 인물 소개는 김난식이 1827년 정해박해 때 피난을 다니던 중에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고 적는다. 1864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시신을 용인 미리내에 있는 형 김대건 신부의 무덤 옆에 모셨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전라도로 내려와 회문산 자락 깊은 골짜기의 먹구니로 들어갔고, 먼저 부안 변산반도 불무동에 와 있던 큰집 7촌 조카 김현채 토마스와 피난 온 신자들과 함께 살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김난식이 회문산에 들어가자 마침 질재에 산불이 발생하여 힘들이지 않고 화전을 일구어 조를 심었는데 그해 대풍이 들었고, 교우들과 조로 끼니를 때우며 굶주림을 이겨냈다고 한다. 김난식은 1873년까지 회문산에서 화전을 일구며 가난하게 살았고, 토종벌을 치며 생계를 유지했는데 구전에는 50통을 쳤다고 한다. 처와 자녀 없이 수도자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1873년 46세로 세상을 떠나 회문산에 묻혔다. 순교현양원은 김난식이 친척들이 있는 곳을 두고 연고 없는 먹구니로 들어온 까닭을 세속에서 벗어나 수도자처럼 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며, 먹구니가 정읍, 임실, 순창의 경계지역이라고 적는다.
디지털정읍문화대전에 따르면 김현채(토마스, 1825-1888)는 김대건의 큰집 7촌 조카로 김난식보다 두 살이 많았다. 부모와 함께 박해를 피해 떠돌아다니다 아버지를 여의고 40세이던 1865년 어머니마저 잃었으며,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전라도 부안 불무동(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을 떠나 먹구니로 와서 김난식과 함께 살았다. 불무동에서 10살 아래인 강 막달레나와 혼인했는데 서로 동정을 지키며 살았다고 한다. 1888년 김현채가 사망한 뒤 강 막달레나는 금구 수류성당 아래로 옮겨 살다가 1900년 숨을 거두고 수류에 묻혔다. 김현채와 강 막달레나는 떠돌이 김재화를 양자로 삼아 결혼시켰고, 족보에는 부안 등용공소를 일군 김양배가 김현채의 계자로 올라 있다.
이 문헌은 두 사람이 숨어 산 회문산 일대가 박해를 피해 들어온 천주교 신자들의 보금자리였다고 설명한다. 신자들은 풀뿌리와 열매, 나물로 연명하며 화전을 일구었고, 산비탈에 담배를 심고 벌을 치고 숯을 구워 팔다가 숯으로 옹기점도 열었다. 옹기는 신자들의 소중한 생계 수단이었고 옹기점은 신자들을 모으는 구심점이었다.
건축과 공간
디지털정읍문화대전은 묘역 입구에 '김난식과 김현채의 묘'라는 설명문이 하나 서 있을 뿐 울타리 없이 무덤 두 개만 있다고 적는다. 위쪽의 약간 큰 봉분이 김난식의 묘이고 아래의 작은 봉분이 김현채의 묘이다. 담장이나 철책이 없어 멧돼지 등 산짐승에 의해 봉분이 훼손되기도 한다. 이 문헌에 따르면 전주교구와 칠보성당이 여러 차례 성역화를 시도했으나 무덤이 있는 회문산 일대가 국유림이라 허가를 받지 못했고, 산짐승을 막을 담장이나 철책을 설치하려는 요청도 산림청 정읍 국유림관리소에서 불허되었다. 칠보성당이 잔디를 조성하고 벌초를 맡고 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디지털정읍문화대전은 이 묘가 천주교 신자들이 회문산 일대에서 살았던 당시의 생활 모습과 천주교 박해를 알 수 있는 유적이라고 평가한다. 전주교구는 이곳을 '김난식 방지거, 김현채 토마스 묘소'라는 이름으로 교구 성지 목록에 올려 두고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김대건 안드레아: 김난식의 형으로, 1846년 병오박해 때 순교한 성인이다.
- 김제준 이냐시오: 김난식의 아버지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성인이다.
- 칠보성당: 묘소의 소속 성당으로 잔디 조성과 벌초를 맡고 있다.
- 수류성당: 김현채가 세상을 떠난 뒤 아내 강 막달레나가 그 아래로 옮겨 살았고, 1900년 숨을 거두어 수류에 묻혔다.
- 부안 등용공소: 김현채의 계자로 족보에 오른 김양배가 일군 공소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디지털정읍문화대전, 김난식 프란치스코 묘. 김난식과 김현채의 생애, 먹구니 피난, 묘역의 형태와 현황, 성역화 시도를 확인했다.
https://www.grandculture.net/jeongeup/toc/GC09300924 - 전주가톨릭순교현양원, 김난식 프란치스코. 김난식의 출생, 회문산 생활, 선종과 먹구니를 택한 까닭을 확인했다.
https://www.martyr.co.kr/people/26 - 천주교 전주교구, 기관 및 단체 성지 목록. 교구가 이 묘소를 성지 목록에 올려 둔 것을 확인했다.
https://www.jcatholic.or.kr/theme/main/pages/group.php?strCate=k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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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김난식 프란치스코, 김현채 토마스 묘소",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4:58. https://missamap.com/ko/kr/jeonju-gimnansik-peuranchiseuko-gimhyeonchae-tomaseu-myos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