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식 프란치스코, 김현채 토마스 묘소
성지
장소 소개
김난식 프란치스코와 김현채 토마스 묘소는 정읍 회문산 자락의 깊은 산중에 자리한 전주교구의 교회사 사적지다. 두 사람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가까운 일가로, 박해를 피해 이 지역에 들어와 신앙을 지키며 살았던 이들이다. 묘소는 순교자만이 아니라 박해 뒤 산중 교우촌에서 신앙을 이어 간 평신도와 가족들의 삶을 기억하게 한다.
이곳의 의미는 화려한 건축물보다 장소 자체에 있다. 산과 골짜기에 숨어 공동체를 이루었던 교우들의 생활 환경, 회문산 일대 공소들의 형성, 성 김대건 신부의 가족사가 한 지점에서 만난다. 따라서 방문자는 두 인물의 묘를 참배하는 동시에, 신앙의 자유가 없던 시대에 가족과 생업을 지키면서도 신앙을 전승했던 교우촌의 역사를 함께 묵상할 수 있다.
두 묘소는 능교 공소와 회문산 일대의 다른 교우촌 역사를 이해할 때도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이 지역 신앙사는 특정 성직자의 활동만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박해를 피해 이동한 가족들이 산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활하고 기도한 과정으로 이루어졌다. 묘소는 바로 그 평신도 중심의 신앙 전승을 눈에 보이는 장소로 남겨 준다.
역사와 유래
김난식 프란치스코는 1827년에 태어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동생이며, 김현채 토마스는 1825년에 태어난 김대건 신부의 일가였다. 두 사람은 조선 후기 박해 속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킨 집안의 구성원으로 살아갔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두 사람은 박해를 피해 회문산 자락으로 들어갔다. 이 일대에는 박해를 피한 신자들이 산속에 모여 살면서 교우촌을 이루었고, 먹구니라 불린 공동체도 그 흐름 속에서 형성되었다. 전주교구 자료는 두 사람이 이곳에서 화전을 일구고 생업을 이어 가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했다고 설명한다.
김난식은 1873년에, 김현채는 1888년에 선종하여 이 산중에 묻혔다. 그들의 무덤은 성직자나 공식 순교자의 묘가 아니라, 박해 이후에도 산중에서 가톨릭 신앙을 지킨 가족과 평신도의 삶을 보여 주는 기록이 되었다. 이후 회문산 일대의 공소 역사와 함께 이 묘소가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삶은 성 김대건 신부의 가족사가 지역 교우촌의 역사와 연결되는 중요한 증거로 남았다.
두 사람의 삶은 공식적인 순교 서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박해기의 신앙을 증언한다. 체포되어 형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뿐 아니라, 박해를 피해 삶의 터전을 옮기고 외딴 산중에서 신앙 공동체를 유지한 이들도 한국 천주교의 생존과 전승에 중요한 몫을 했다. 이 묘소가 교회사 사적지로 기억되는 까닭도 바로 그러한 피신과 정착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보여 주기 때문이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김난식 프란치스코, 김현채 토마스 묘소의 첫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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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전주교구 (Diocese of Jeonju)
공식 홈페이지: https://www.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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