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이성지
개요
초남이성지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옛 이름 초남이)에 있는 천주교 전주교구의 성지로, ‘호남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일가가 살았던 생가터이다. 호남 천주교의 발상지로 불리며, 동정 부부 유중철·이순이가 4년간 살았던 곳이고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권상연의 유해가 발견된 바우배기가 인근에 있다.
역사
〔유항검의 입교와 집안〕 디지털완주문화대전에 따르면 전라도에서 처음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유항검과 윤지충이며 두 사람은 이종사촌이었고, 이 중 먼저 세례를 받은 유항검을 ‘전라도의 사도’라 부른다. 유항검의 본관은 진주이고, 문화대전은 그가 1754년 전주부 이서면 초남이(현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마을)에서 태어났다고 적는다(치명자산성지 홈페이지와 전북일보는 1756년으로 적는다). 어머니 안동 권씨는 권상연의 고모여서 권상연은 유항검의 외종사촌이었고, 본가와 외가·처가가 모두 남인이었다. 유항검은 경기도 양근에서 남인 소장 학자들이 서양 학문을 공부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 천주교를 알게 되었고 이승훈에게 ‘아우구스티노’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전주교구는 1784년으로 적는다). 이후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과 노비, 집안 식구, 찾아오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전주·김제·정읍·고창·영광에 천주교가 전파되었다. 전주교구는 호남 최고 갑부였던 그가 나눔을 실천하고 종들을 형제처럼 대하며 복음을 전했다고 설명한다.
〔가성직제도와 북경 밀사〕 문화대전은 1786년 봄 천주교 지도자들이 가성직제도를 만들어 이승훈 등이 신부로 임명되었고, 유항검이 동생 유관검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검토하다가 결혼한 사람이 사제직을 수행하면 독성죄를 범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1787년 봄 이승훈에게 알렸다고 적는다. 그 뒤 윤유일이 유항검의 편지 등을 가지고 1789년 10월 첫 번째로, 1790년 7월 두 번째로 북경에 파견되었다. 1791년 윤지충의 순교로 유항검도 박해를 받았지만 거짓 배교를 하고 신앙생활을 지속했다(문화대전).
〔주문모 신부와 대박청래운동〕 문화대전은 1795년 4월 주문모 신부가 유항검의 초청으로 한양에서 전주를 방문했다고 적고, 전주교구는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이곳 교리당에서 한 주간 머무르며 미사와 고해성사를 거행했다고 설명한다. 주문모 신부 입국 뒤 윤유일·최인길·황심 등이 처형되자 조선 교회는 큰 배를 청해 오는 것이 박해에서 벗어나는 지름길이라 보게 되었고, 유항검과 동생 유관검, 아들 유중태, 고산 저구리에 살던 윤지헌 등이 이를 구체화했다. 1796년 황심을 시작으로 1797~1801년 여러 차례 북경에 밀사가 파견되었고, 문화대전은 이들의 실제적인 정신적·물질적 후원자가 유항검이었으며 비용의 대부분을 그가 부담했다고 적는다.
〔교리당과 전라도 교회의 성장〕 전주교구는 교리당이 유항검이 교리를 가르치고 논하며 숙식을 제공한 장소이고 이곳을 기점으로 전주·김제·금구·영광 등에 천주교가 전해졌다고 설명한다. 문화대전은 전라도에서 1791년 신해박해 이후 10년 동안 박해가 없어 신자가 많이 늘었고, 신자 수가 1790년경 4천 명, 1800년 무렵 약 1만 명에 이르렀으며, 유항검이 초남이를 중심으로 자기 소유의 전답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적는다.
〔동정 부부 유중철과 이순이〕 문화대전은 대박청래운동이 무르익던 1797년 유항검의 맏아들 유중철과 서울 명문가의 이순이가 주문모 신부의 주례로 혼인했고, 1798년 이순이가 초남이로 이사해 부모 앞에서 동정 부부로 살겠다고 서약한 뒤 순교할 때까지 4년을 오라비와 누이로 부르며 지냈다고 적는다. 굿뉴스와 전주교구도 이곳 생가터가 두 사람이 4년 동안 동정 부부로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신유박해와 파가저택(1801)〕 문화대전은 신유박해가 시작되자 전라감영 포졸들이 이서면 초남이를 급습해 유항검과 동생 유관검을 체포하고 주변 인물들까지 잡아들였으며, 전주·금구·김제·고산·무장·흥덕·영광·함평·무안 등지에서 200명 이상의 신도를 체포해 옥에 가두었다고 적는다. 1801년 음력 9월 11일 사형 판결을 받은 유항검은 9월 17일 전주 풍남문 밖(현재 전동성당 자리)에서 동료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재산은 몰수되고 가족들은 끌려갔으며 집은 파가저택되어 집터는 파서 웅덩이(연못)가 되었다. 전주교구는 유항검이 능지처참형을 받았고, 아들 유중철과 유문석은 전주옥에서, 이순이와 조카 유중성, 부인 신희와 제수 이육희는 숲정이에서 순교했다고 적는다.
〔유해의 매장과 이장〕 굿뉴스는 살아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시신을 은밀히 수습했으나 고향 초남 땅에 묻지 못하고 김제군 재남리에 가매장했다고 적는다. 문화대전과 전주교구는 일가의 유해가 초남이 옆 바우배기에 묻혀 있다가 1914년 4월 19일 전동성당을 건립한 보두네 신부와 신자들에 의해 지금의 치명자산성지 정상으로 이장되었다고 적고, 문화대전(전라도 천주교의 발원지 초남이 항목)은 임시 매장터가 초남이 성지에서 서쪽으로 600미터 거리의 밭터로 확인되었다고 적는다. 유항검, 유중철, 이순이, 유문석, 유중성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성지 조성의 시작(1985~1987)〕 굿뉴스는 초남이성지의 개발이 1985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1987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유항검 생가터인 파가저택 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문화대전은 호남교회사연구소 김진소 신부가 1970년대 수년간 유항검의 생가 일대를 뒤졌으나 찾지 못했고, 이후 원동에 사는 한 유학자의 도움으로 지금의 터를 확인한 뒤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관찬사료의 발견으로 확정했다고 적는다. 전주교구 50주년 사업분과위원회가 생가터 매입을 결정하고 동산동성당 주임 권이복 신부에게 일임했다. 전주교구는 이우집의 문초 기록과 토착민의 증언 등을 토대로 파가저택지와 유항검 교리당터, 가매장터를 확인해 성역화를 진행했고(굿뉴스), 1987년 성지로 축복했다. 문화대전의 메타데이터는 설립 시기를 1987년 4월 13일, 설립자를 박정일 주교와 권이복 신부로 적는다.
〔성지 정비(2000~2014)〕 문화대전에 따르면 초남이성지의 조성은 2000년 1월 김환철 신부의 부임으로 본격화되어 생가터 웅덩이 공사,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다락방 신축, 버스 주차장 매입, 교리당 조성, 주변 토지 매입이 이루어졌다. 김환철 신부는 ‘은사회’와 ‘은총회’를 조직해 시복시성 운동을 했고 매년 10월 ‘루갈다 시집온 날’ 기념 미사를 봉헌했으며, 이것이 ‘요안루갈다제’의 정기 행사로 이어져 초남이성지에서 치명자산성지까지 도보순례를 하고 있다. 굿뉴스에 따르면 2000년 생가터를 새단장하고, 2002년 한옥 형태의 교리당과 ‘정지샴’(샘물)을 복원했으며, 2005년 주문모 신부 미사 봉헌 기념경당을 일자형 한옥으로 건립했고, 2006년 파가저택지 옆에 동정 부부가 4년간 살았던 행랑채를 복원해 성체조배실로 쓰고 있다. 시복식을 준비하면서 생가터에 경당을 마련하고 교리당터 입구 조경공사를 했다. 2011년 부임한 하태진 신부는 경당 리모델링, 무허가 건물 철거, 주변 토지 매입을 했고 성지의 숙원 사업이던 ‘유항검 나눔의 집’을 신축했다(문화대전).
〔바우배기 유해 발견과 발굴조사(2021~2022)〕 전주교구는 바우배기가 1791년 신해박해 때 참수된 한국 최초의 순교자 복자 윤지충(바오로)과 권상연(야고보), 신유박해 순교자 복자 윤지헌(프란치스코)의 유해가 순교한 지 230년이 지난 2021년 3월 11일 발견된 곳이며, 세 사람의 유해는 교리당의 순교자 묘소에 안치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전북일보(2022년 3월 15일)는 2021년 9월 윤지충의 유골과 유품이 확인되었고 전주교구가 해부학적 감식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등 과학적 방법으로 윤지충·윤지헌·권상연으로 특정했다고 전한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2022년 초남이성지의 진정성 회복을 위한 학술발굴조사를 시작했으며, 이는 바우배기 일원의 추가 매장자 확인과 순교자 최초 매장지 추적을 위한 토양 표본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조사가 마무리되면 유항검 생가에 대한 중장기 발굴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최근의 움직임(2025)〕 연합뉴스(2025년 5월 14일)는 완주군이 초남이성지를 ‘초기 한국 천주교 신앙공동체의 발상지’로 확립하고 2027년 세계청년대회의 주요 순례 코스로 포함하며 대규모 순례객 수용을 위한 인프라 개선에 나서고 있다고 전한다. 또 초남이성지를 중심으로 한 천주교 유산의 세계유산적 가치 정립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건축과 공간
굿뉴스와 문화대전에 따르면 성지에는 유항검 생가터(파가저택지, 연못 형태로 남은 웅덩이), 2002년 복원한 한옥 형태의 교리당과 샘물 ‘정지샴’, 2005년 건립한 일자형 한옥의 주문모 신부 미사 봉헌 기념경당, 2006년 복원한 동정 부부의 행랑채(현 성체조배실),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다락방, 순례자 편의를 위한 ‘유항검 나눔의 집’이 있다. 전주교구는 교리당의 순교자 묘소에 윤지충·권상연·윤지헌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치명자산성지: 유항검 일가의 유해가 1914년 이장되어 합장된 전주의 성지이다(굿뉴스, 디지털완주문화대전).
- 전동성당: 유항검이 처형된 전주 풍남문 밖 터에 선 성당으로, 10년 전 윤지충과 권상연의 처형장이기도 했다(디지털완주문화대전).
- 숲정이성지·전주옥: 유중철·유문석(전주옥), 이순이·유중성·신희·이육희(숲정이)가 순교한 곳이다(천주교 전주교구).
- 바우배기: 윤지충·권상연·윤지헌의 유해가 2021년 발견된 초남이성지 인근 터이다(천주교 전주교구).
- 되재성당: 완주군 화산면에 1895년 본당이 세워진 전국 최초의 한옥 성당이다. 2004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19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9년 원래의 한옥 성당으로 재건축되었다(디지털완주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초남이 성지”(전주교구). 유항검 일가 생가터, 파가저택, 1985년 이후 성역화와 2000~2006년 시설 조성.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63 - 디지털완주문화대전, “초남이성지”. 유항검과 대박청래운동, 1914년 이장, 성지 설립(1987.4.13)과 김진소 신부의 생가터 확인, 김환철·하태진 신부 시기 조성.
https://www.grandculture.net/wanju/toc/GC07000951 - 디지털완주문화대전, “전라도 천주교의 발원지 초남이와 전국 최초의 한옥성당인 되재성당”. 유항검의 입교와 가성직제도, 북경 밀사, 동정 부부, 신유박해와 성지 개발.
https://www.grandculture.net/wanju/toc/GC07001370 - 천주교 전주교구, 성지 안내 “초남이성지”. 생가터와 교리당, 1795년 주문모 신부의 미사, 순교자 7위의 유해, 바우배기 유해 발견(2021.3.11).
https://www.jcatholic.or.kr/theme/main/pages/terrasanta04.php - 전북일보, “완주 이서 초남이성지 진정성 회복 위한 조사 착수”(2022.3.15).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의 학술발굴조사와 순교자 유골 특정.
https://www.jjan.kr/article/20220315580240 - 연합뉴스, “완주 초남이성지, 교황 방한 후보지로 ‘급부상’”(2025.5.14). 초남이성지의 위상 정립과 2027년 세계청년대회 대비 사업.
https://www.yna.co.kr/view/RPR20250514014300353
문서 정보
- 문서 크기
- 13,852 바이트
- 판 수
- 1
- 기여자
- 1명
- 만들어진 날
- 2026년 10월 13일 15:50
- 마지막 수정
- 2026년 10월 13일 15:50
- 본문 연결
- 0개
- 출처 링크
- 6개 · 제출 출처 있음
- 작성 상태
- 보완 권장
- 장소 ID
ba7c8548-8cb8-4f41-907a-3df467814477- 고정 주소
- https://missamap.com/ko/kr/jeonju-chonami-shrine/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초남이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15:50. https://missamap.com/ko/kr/jeonju-chonami-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