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동 성당
개요
송림동성당은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성당이 1955년 9월 11일 답동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고 주보가 성모 승천이라고 적는다. 성당 홈페이지는 1956년에 준공한 유서 깊은 성당으로, 한국 1세대 건축가 이희태가 세웠다고 소개한다.
역사
〔설립 배경과 건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인천시에서 가장 중심에 위치한 송림동은 1950년대 초부터 교세가 늘었고, 당시 이 지역을 관할하던 답동 본당 주임 임종국(바오로) 신부는 관할 구역이 넓어 사목상의 어려움이 커지자 본당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1954년 10월 30일 성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하고, 한 달 뒤인 11월 30일 현 성당 부지 540평을 매입했다. 이듬해 4월 12일 공사에 착수하여 9월 11일 2층 규모(총 305평)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으며, 이날 송림동 본당이 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정덕진 신부가 임명되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에는 설립일이 1955년 9월 19일로 기재되어 있어 대사전과 날짜가 다르다.
〔시설 확충과 분가〕 대사전은 1959년 6월 30일 부지 193평을 추가로 매입해 사제관과 수녀원을 마련했다고 적는다. 신자 수가 늘면서 송림동 본당에서는 1960년 7월 17일 도화동 본당, 1962년 9월 16일 화수동 본당, 1965년 6월 30일 영종 본당, 1974년 10월 6일 석남동 본당, 1976년 9월 18일 송현동 본당, 1992년 10월 15일 대부 본당을 분리했다. 1970년 11월 1일에는 서곳 공소가, 이듬해 4월 15일에는 대부도 공소가 본당 관할로 편입되었다.
〔본당의 활동〕 대사전에 기록된 활동은 다음과 같다. 1964년 7월 11일 ‘송림 신용 협동 조합’ 조직, 1967년 3월 7일 ‘새싹유치원’ 개원(1989년 3월 폐원), 1977년 9월 입대자와 타지역 거주 신자에게 사목 방침을 알리는 주보 보내기 운동, 1979년 근로 청소년을 위한 ‘서해 야학’ 운영, 1985년 8월 5일 레지오 마리애 ‘그리스도의 어머니’ 꾸리아 창단, 1987년 9월 6일 ‘본당 공동체와 도시 빈민’을 주제로 한 제1회 젊은이 잔치, 1990년 2월 13일 성체 조배실 마련, 같은 해 10월 10일 성령 쇄신을 위한 8주간 생활 세미나, 1994년 5월 29일 ‘한소리 청년회’ 창립. 1995년에는 설립 40주년을 기념해 목단강 지역 조선족 신자들을 위한 모금 운동을 벌여 그곳에 성당을 마련해 주었고, 1997년에는 상반기 ‘잃은 양 찾기 운동’과 하반기 ‘새로운 양 찾기 운동’으로 약 150명을 입교시켰다고 한다.
〔교세와 관할〕 대사전의 교세 통계는 1956년 3,109명, 1963년 4,134명, 1969년 3,922명, 1975년 5,360명, 1981년 4,119명, 1987년 5,822명, 1993년 7,045명, 1998년 4,484명이다. 관할 구역은 동구 금창동, 송림1·2동과 송현1·3동 일부 지역이었다. 대사전은 관할 일부 지역과 금창동 일대가 재개발 대상 지역이거나 대상 예정지라고 적고 있다.
〔역대 주임신부〕 대사전에 실린 역대 주임신부는 초대 정덕진 루가(1955년 9월~1959년 11월), 2대 설리반(H. Sullivan, 薛立案) 헨리코(1959년 11월~1962년 6월), 3대 파퀘트(J. Paquet) 요셉(1962년 6월~1966년 3월), 4대 강의선 힐라리오(1966년 3월~1968년 4월), 5대 강용운 시몬(1968년 4월~1970년 4월), 6대 강성욱 마태오(1970년 4월~1973년 9월), 7대 로워리(M. Lowery) 마르티노(1973년 9월~1976년 12월), 8대 강근신 미카엘(1976년 12월~1980년 2월), 9대 조성교 요한 그리소스토모(1980년 2월~1984년 3월), 10대 박복남 요셉(1984년 3월~1989년 2월), 11대 이수일 제르바시오(1989년 2월~1991년 1월), 12대 김종학 바오로(1991년 1~3월), 13대 최상진 야고보(1991년 3월~1994년 2월), 14대 이용길 세례자 요한(1994년 2월~1997년 1월), 15대 배효식 바오로(1997년 1월~)이다.
건축과 공간
성당 홈페이지의 ‘본당 변천사’는 송림동성당이 1956년에 준공했고, 한국 1세대 건축가로 유명한 이희태가 세웠다고 적는다. 이희태는 명수대성당(1954), 혜화동성당(1960) 등을 통해 입방체형의 근대 성당 건축을 시도했으며, 그의 건축물은 교회건축의 변화를 가져온 제2바티칸공의회(1962~1965)의 정신에 부합했다고 홈페이지는 설명한다. 송림동성당은 종탑과 본당이 구분된 독특한 구성이고, 건립 당시 성당 주변의 한옥을 의식한 듯 모던한 벽면에 리듬감 있는 창호 계획과 서로 다른 재료를 적용해 분절의 효과를 높였다고 한다. 홈페이지는 6·25전쟁 후 가톨릭 구제회가 밀가루와 헌옷 등 구호물자를 보내 주었고 이를 받으려고 성당에 나오던 ‘밀가루 신자’가 많았다고 전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답동 본당: 송림동 본당이 1955년 분리·설립될 때의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도화동·화수동·영종·석남동·송현동·대부 본당: 송림동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임종국(바오로) 신부: 본당 분리를 결정한 당시 답동 본당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정덕진 루가 신부: 송림동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김병상 몬시뇰: 성당 홈페이지의 소식 게시글이 ‘송림동성당 1호사제’로 소개한 인물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송림동 본당. 1955년 9월 11일 설립, 설립 배경과 건립 과정, 분가 본당, 본당 활동, 교세, 역대 주임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654 - 송림동성당 홈페이지, 본당 변천사. 1956년 준공, 건축가 이희태, 종탑과 본당이 구분된 구성, 구호물자와 ‘밀가루 신자’.
http://songlim70.com/19 - 송림동성당 홈페이지, 본당 뉴스&역사. 김병상 몬시뇰을 ‘송림동성당 1호사제’로 소개한 게시글.
http://songlim70.com/53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 송림동. 설립일 1955.9.19., 주보성인 성모 승천.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0386&gubun=4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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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9일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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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송림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07:58. https://missamap.com/ko/kr/incheon-songrim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