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3동 성당
개요
만수3동성당은 인천광역시 남동구 만수동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8년 8월 15일 간석동(현 간석2동) 본당에서 분리·신설되었고 1993년 1월 본당명을 만수동에서 만수3동으로 변경했으며, 주보는 성 안드레아이다. 인천교구에서 21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다.
역사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인천교구에서 21번째로 설립된 만수동 본당은 설립 초기에 구역 안의 한국 순교 복자 수도원을 임시로 사용하다가, 1978년 9월 10일 만수2동 108번지의 대영주택 15호와 8호를 빌려 각각 임시 성당과 수녀원으로 썼다.
〔성당 건립〕 철거민이 많아 지역 신자들의 이주가 잦고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해 성당 건립을 보류하다가 1980년 8월 30일 기공식을 가졌으나, 자금난으로 1981년 6월 공사가 중단되었다. 약 2년 뒤인 1983년 3월 22일 공사가 재개되어 그해 6월 18일 성당을 완공했다. 착공 3년 만에 완공된 이 성당은 718평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성당(120평)을 비롯해 사제관, 수녀원, 사무실과 각종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초기 사목과 의료·교육 활동〕 만수동 일대는 인천 시내 남쪽 끝에 위치한 외진 곳으로 본당 신자의 70%가 철거민이었다. 초대 주임 박성규(베네딕도) 신부는 부임 직후부터 철거민 세대를 중심으로 가정 방문을 실시하고, 주변에 병원이 없는 현실을 감안해 전셋집을 얻어 진료실을 개설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장 최평화(제노베파) 교수가 이끄는 가톨릭 학생회와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가톨릭 학생회 회원들이 무료 진료팀을 구성해 매주 토요일 진료 봉사를 했고, 이후 주기적이고 지속적인 의료 활동이 전개되어 상설 진료소 역할을 했다. 1978년 11월 7일 예비자 교리반을 개강했고, 1980년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들이 설립되었으며, 이듬해 10월 16일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를 구성했다. 1982년 3월 27일에는 무료 유치원(2개 반 80명)을 개원했다.
〔2대 주임 이수일 신부 시기〕 이수일(제르바시오) 신부는 신자 재교육의 첫 단계로 1984년 9월 4일 평신도 지도자 육성을 위한 야간 신앙 대학을 개설했다. 1985년부터는 정규 교리반 외에 1년에 4차례 거북이반이라는 이름의 별도 교리반을 개설해 찾아오는 예비자들의 수용과 중도 탈락한 예비자들의 재교육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본당 차원에서 예비 신학교를 설립해 성소 개발과 육성을 도모했고, 매년 사순 시기에는 신자들이 연구한 교리를 매주 금요일 저녁 미사 강론 때 직접 발표하게 했다.
〔이후 사회복지 활동〕 3대 주임 오용호(세베리노) 신부는 1992년 8월 인하대학교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용마루 야학교를 본당 안에 마련해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을 배울 기회를 제공했다. 4대 주임 현명수(바오로) 신부는 불우 노인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기 위해 1994년 6월 12일 밀알의 집을 개설했다. 5대 주임 황해룡(마르코) 신부 때인 1996년 7월 1일 인천시 남동구청으로부터 사회복지회관의 운영을 위탁받아 용마루 야학교와 밀알의 집을 옮기고, 독서실·청소년 공부방·노인 강좌·주부를 위한 영어 강좌·미용 강좌 등을 실시했다.
〔신심 단체〕 대사전에 따르면 본당에는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 산하 24개 쁘레시디움을 비롯해 연령회,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주일학교 자모회, 복사 자모회, 헌화회, 펠리컨 성가대, 청년 성가대, 청년회, 할아버지·할머니들로 구성된 신심 강화 및 친교 단체인 예수 성심회와 모니카회가 있으며, 지속적인 성체 조배회가 1988년 2월 9일 구성되었다. 1996년 6월 30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중심이 되어 가두 선교단을 발족시켰다.
〔교세와 관할 구역〕 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8년 478명, 1983년 2,265명, 1988년 4,716명, 1990년 3,672명, 1994년 4,054명이다. 관할 구역은 만수3동, 도림동, 서창동, 장수동 전역과 만수2·5동 일부로 적혀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 본당을 남동지구 소속으로, 설립일을 1978년 8월 15일로, 주보를 성 안드레아로, 수녀회를 천주 섭리 수녀회로 적는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박성규 베네딕도(1978.8~1984.2), 2대 이수일 제르바시오(1984.2~1989.2), 3대 오용호 세베리노(1989.2~1992.9), 4대 현명수 바오로(1992.9~1995.2), 5대 황해룡 마르코(1995.2~대사전 집필 당시 현재)이다.
건축과 공간
대사전에 따르면 1978년 9월 10일 만수2동 108번지의 대영주택 15호를 임시 성당으로, 8호를 수녀원으로 빌려 썼다. 1980년 8월 30일 기공식을 가졌고 1981년 6월 자금난으로 중단되었다가 1983년 3월 22일 재개되어 그해 6월 18일 완공되었다. 718평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이며 성당은 120평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간석동 본당(현 간석2동): 1978년 만수동 본당이 이 본당에서 분리·신설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한국 순교 복자 수도원: 설립 초기에 구역 안의 이 수도원을 임시로 사용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용마루 야학교와 밀알의 집: 각각 1992년 8월 인하대학교 학생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야학교, 1994년 6월 12일 개설된 노인 무료 점심 제공 시설로, 1996년 사회복지회관으로 옮겨 운영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최평화(제노베파) 교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소아과장으로 가톨릭 학생회의 무료 진료 봉사를 이끌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만수3동 본당”(인천교구, 4권). 1978년 본당 설립, 성당 건립과 완공, 무료 진료소와 사회복지 활동, 신심 단체, 교세, 관할 구역,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892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만수3동”(인천교구). 설립일 1978.8.15, 주보 성 안드레아, 수녀회 천주 섭리 수녀회, 남동지구.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0357&gubun=4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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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만수3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20일 04:07. https://missamap.com/ko/kr/incheon-mansu3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