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진두 순교 성지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제물진두 순교성지는 인천광역시 중구 제물량로에 있는 천주교 인천교구의 순교성지이다. 병인박해 이후 1868년과 1871년에 천주교 신자 10명이 처형된 인천 지역 최대 순교지이며, 김대건 부제가 1845년 사제 서품을 받기 위해 중국 상해로 떠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인근 인천교구 해안본당이 성지를 관할한다.

역사

굿뉴스의 성지 소개에 따르면 제물진두는 1866년 병인박해, 1868년 오페르트의 무덤 도굴 사건, 서양 세력의 침공과 관련해 천주교 신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척사 의식을 높이려던 정부에 의해 인천 지역 최대 순교지가 되었다. 가톨릭신문은 흥선대원군이 백성들의 왕래가 잦고 외국 선박의 출입이 빈번한 이곳 제물 나루터를 공개 처형장으로 택했다고 설명한다. 진두(津頭)는 나루터를 뜻하며, 서울 한강변 양화진두(절두산)와 함께 많은 신앙인이 공개 처형된 곳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2010년에야 순교 터가 규명되었다고 한다.

순교자는 모두 10명이다. 1868년 4월에는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 박순집 베드로의 이모 김씨와 이모부 손 넙적이(베드로), 사위 백치문(사도 요한), 이 마리아의 손자 등 4명이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가톨릭신문은 이 처형이 1868년 4월 20일에 도끼로 이루어졌다고 적는다. 1871년 5월에는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베드로)의 증손자 이연구와 이균구 형제, 이승훈의 손자 이재겸의 부인 정씨와 그의 손자 이명현, 백용석, 김아지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이연구와 이균구는 5월 6일 미군의 배에 들어가 길 안내를 하려 했다는 죄로, 정씨와 이명현, 백용석, 김아지는 5월 21일 사학죄인으로 순교했다. 인천교구 자료는 이승훈을 '하느님의 종'으로 표기하고, 이(손)명현·백용석·김아지를 포함한 6명이 1871년에 처형되었다고 기록한다.

이곳은 성 김대건 신부가 부제품을 받고 입국해 1년여간 조선교회의 사정을 둘러본 뒤, 1845년 4월 사제품을 받기 위해 작은 목선을 타고 중국 상해로 떠난 곳이기도 하다. 가톨릭신문은 김대건이 1845년 4월 30일 신자 11명과 함께 이곳에서 상해로 떠났다고 전한다. 또 1888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제물포항을 통해 조선에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굿뉴스는 7월 22일 수녀 4명의 입국으로 적고, 인천교구 자료는 수녀 3명(프랑스 국적 2명, 중국 국적 2명)이라고 적어 인원 표기가 서로 다르다. 가톨릭신문은 수녀 4명(프랑스인 2명, 중국인 2명)이 도착해 조선에서 처음으로 수도 생활이 시작된 것을 기념하는 '첫 선교 수녀 도착지 기념비'가 인천 중부경찰서 앞 공원에 있다고 소개한다.

인천교구는 제물진두 위치 규명에 이어 2011년 차이나타운 입구 한중문화관 옆 대지를 매입하고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성역화를 추진해, 2014년 5월 제물진두 순교기념 경당 축복미사를 봉헌했다. 2025년 희년을 맞아 인천교구가 지정한 전대사 수여 지정 순례지 가운데 한 곳이다.

건축과 공간

제물진두 순교기념경당은 높이 15m이며, 하늘을 향해 피어오르는 꽃 모양이자 하느님께서 순교자들을 감싸는 두 손 모양을 형상화했다. 가톨릭신문은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공간에 세워졌으며 한국교회 성지 가운데 가장 날씬한 경당일 듯하다고 평한다. 성지 입구에는 오른팔을 내려뜨려 순례자를 맞이하는 '위로와 자비의 주님'상이 있고, 경당으로 들어서는 좁은 복도 옆면에는 제물진두 순교자들의 초상이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걸려 있다. 경당 안에는 십자 모양 스테인드글라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32) 성구와 순교자 부조, 박해 당시 제물진두 처형장을 그린 그림이 있으며, 그림에는 김대건 신부의 초상과 배 한 척이 함께 그려져 있다. 성지 입구에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해안성당 뒤에는 5층 건물인 '제물진두 성지 순교자 영성관'이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해안성당: 인천교구 소속으로 제물진두 순교성지를 관할하는 성당이다.
  • 박순집 베드로: '순교자들의 행적 증거자'로 불리며, 1868년 순교자 가운데 그의 이모 가족이 있다.
  • 이승훈 베드로: 한국인 최초의 세례자로, 1871년 순교자들은 그의 증손자와 손자 가족이다.
  • 첫 선교 수녀 도착지 기념비: 인천 중부경찰서 앞 공원에 있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굿뉴스 가톨릭정보, 제물진두 순교성지. 1868년·1871년 순교자, 김대건 부제의 출발, 1888년 수녀 입국, 2011년 대지 매입과 2014년 5월 경당 축복미사, 경당의 형상을 확인했다.
    http://mobile2.catholic.or.kr/web/holyplace/?seq=4224
  2. 천주교 인천교구, 교구성지 제물진두 순교성지. 순교자 10명의 명단과 처형 연도, 김대건 부제의 출발, 1888년 수녀 입국(3명으로 표기)을 확인했다.
    http://www.caincheon.or.kr/intro/shirine.jsp
  3. 가톨릭신문, [순례, 걷고 기도하고] 인천교구 제물진두 순교성지(2025년 1월 22일). 공개 처형장 선정 배경, 2010년 순교 터 규명, 처형 날짜, 경당 내부와 첫 선교 수녀 도착지 기념비, 해안본당 관할, 전대사 순례지 지정을 확인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117500023
  4. 인천투데이, [개항장 기행] '해안성당'과 '한중문화관'을 찾아서(2021년 4월 2일). 해안성당의 성지 관할, 영성관, 2011년 대지 매입과 2014년 5월 경당 축복미사를 확인했다.
    https://www.incheontoday.com/news/articleView.html?idxno=207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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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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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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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제물진두 순교 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1:43. https://missamap.com/ko/kr/incheon-jemuljindu-sungy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