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성당
개요
소록도성당은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소록도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60년 8월 13일 벌교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주보는 근심하는 이의 위로자 성모이다. 병사 성당과 직원(관사) 성당 두 곳이 소록도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며, 이 가운데 병사성당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이다.
역사
〔소록도의 천주교 전래〕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일본 총독부는 나환우를 격리·수용하기 위해 1916년 전남 고흥군 금산면(현 도양읍) 소록리에 약 20만 평의 부지와 가옥 10채를 매입하고 100여 명의 나환우를 이주시켰으며, 같은 해 5월 17일 도립 나병원인 자혜의원(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이 설립되었다. 1920년대 초에는 프로테스탄트가 진출해 대다수의 환우가 프로테스탄트에 입교했다. 1935년 장순업(프란치스코)·강기수(바오로)·허영원(요셉) 등 3명의 천주교 신자가 입원해 치료를 받으면서 기도와 공소 예절을 갖고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사전은 입원 시기를 1935년 11월 1일로, 디지털고흥문화대전 “소록도성당”은 1935년 11월 3일로 적는다.
〔사제의 방문과 첫 미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나주 본당 주임 김재석(요셉) 신부가 이듬해 11월 6일 처음 병원을 방문한 뒤 몇 차례 교리를 가르치고 성사를 주었고, 1938년 11월 24일 3명이 세례를 받았다. 이듬해에는 노안 본당 주임 김창현(바오로) 신부가 방문해 성사를 주었는데 당시 신자 수는 17명이었고 장순업이 전교 회장으로 활동했다. 대사전은 1943년 7월 15일 나환우를 위한 병사 공소가 설립되어 나주 본당 주임 김필현(루도비코) 신부의 집전으로 첫 미사가 봉헌되었다고 적는다. 디지털고흥문화대전은 1936년부터 나주본당 김재석 보좌신부가 1943년까지 8회에 걸쳐 전교 활동을 했으나 별도의 미사는 드리지 않았고, 1943년 7월 15일 평양교구 김필현 신부의 집전으로 병사지대에서 처음 미사가 봉헌되었으며, 1946년 9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토마스(Thomas) 신부의 전교 활동으로 병사지대에 정식으로 소록도공소가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공소에서 본당으로〕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7년 6월부터 미국 가톨릭 복지 협회(N.C.W.C)의 원조를 받아 환우들을 도왔고, 1958년 7월 1일 동산동 본당 주임 이민두(타대오) 신부와 벌교 본당 주임 모리시(M. Morrisey) 신부의 노력으로 병원 종사자들을 위한 직원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1959년 11월 10일 벌교 본당의 마이클스 신부가 파견되어 병사 공소와 직원 공소의 성당 건립을 추진한 끝에 1960년 8월 13일 두 공소가 소록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디지털고흥문화대전은 1958년 10월 24일 광주교구장 하롤드 헨리 주교가 처음 소록도를 방문해 224명의 신자에게 견진성사를 집전했고, 1959년 11월 1일 벌교본당 소속 공소로 변경되었으며, 1950년대에 신자가 1,000여 명으로 늘어 1960년 8월 13일 광주교구 주교관의 인가를 받아 본당으로 승격되고 권 야고보(James Michaels)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했다고 적는다.
〔성당 신축과 수녀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주임 마이클스 신부는 1961년 10월 11일 170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했고, 이듬해 5월 10일 광주대교구장 헨리 대주교의 집전으로 병사 성당의 성모 동굴과 판석 축성식을 거행했으며, 1964년 12월 15일 성모 동굴 앞에 십자가를 건립했다. 본당 설립 초에 분원을 개설한 까리따스 수녀회는 미감아 수용소인 보육소를 운영하고 나환우의 재활과 자립을 위해 양재 학원을 설립·운영했으며, 1962년 2월 24일에는 오스트리아 그리스도 왕 시녀회 소속 수녀들이 부임해 영아원과 병원 등에서 봉사했다. 디지털고흥문화대전은 1961년 10월 11일 병사지대에 건평 170평(561.99㎡)의 병사성당(2번지)을 건립했고 관사지대에는 140평(462.81㎡)의 직원용 관사성당(1번지)과 사제관을 건립했으며, 당시 신자 수는 병사지대 1,200여 명, 관사지대 50여 명이었다고 적는다. 1966년 이후 음성 환자가 육지의 정착촌으로 전출되면서 신자 수도 줄었다(디지털고흥문화대전).
〔오스트리아 출신 두 수녀〕 디지털고흥문화대전 “천주교”는 오스트리아 출신 수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각각 1962년과 1966년에 소록도에 들어와 약 40년간 한센인들을 가족처럼 돌보며 생활했고, 대장암을 앓던 두 수녀가 짐이 되고 싶지 않아 2005년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2015년 고흥 명예군민으로 추대되고 법무부로부터 명예국민으로 보답받았다고 적는다. 2016년 6월 14일 문화재청은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을 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했다.
〔1968년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8년 2월 본당 사목권이 골롬반 외방선교회에서 과달루페회로 이관되어 차베스 신부가 5대 주임으로 부임했고, 이어 인보 성체 수도회(1973.2~1975.7)와 메리놀 수녀회(1974.5~1987.12) 수녀들이 본당과 병원 등에서 봉사했으며 1978년 4월 28일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분원이 마련되었다. 같은 해 7월 10일 한국 가톨릭 나사업가 연합회의 지원으로 병사 성당 보수 공사를 했고 7월 27일에는 직원 성당의 제의실과 고백소 등의 확장·보수 공사를 마쳤다.
〔교황 방문〕 한국가톨릭대사전과 디지털고흥문화대전에 따르면 1984년 5월 4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대회와 103위 시성식 참석차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소록도를 방문해 병사성당에 대형 십자고상을 마련해 주었다. 디지털고흥문화대전은 이 방문을 계기로 환우 전용 선창(제비선창)과 선박을 없애고 일반인과 함께 도선장을 이용하도록 하면서 차별 조치를 폐지했다고 적는다. 1985년 10월 9일에는 윤공희 대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선교 50주년, 본당 승격 25주년 행사가 열렸다(디지털고흥문화대전).
〔사제 배출과 이후〕 디지털고흥문화대전에 따르면 병사성당 교우의 자녀 가운데 1992년 8월 대전교구 김홍식 신부가 소록도성당 사상 첫 사제로 배출되었고, 2002년 8월 아우구스티니안 레콜렉토스 수도회 이상원 신부가 두 번째로 배출되었다. 관사성당 출신으로는 1993년 2월 광주대교구 윤근일 신부가 배출되어 2월 6일 병사성당에서 첫 미사를 집전했다. 1997년 2월 첫 한국인 사제로 강길웅 신부가 부임했고, 2015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 순례 성당으로 지정되었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본당 설립 당시 1,200여 명이던 신자 수는 많은 수가 자활촌으로 이주해 1970년대에 700여 명, 1980년대에 600여 명으로 줄었고 대사전 집필 시점에는 500여 명이었으며, 교세는 1963년 1,150명, 1967년 1,141명, 1970년 750명, 1974년 627명, 1981년 624명, 1986년 688명, 1989년 592명, 1992년 587명, 1997년 497명이다. 디지털고흥문화대전은 2025년 기준 등록 신자 수를 300여 명, 주일 미사 참석 신자를 평균 80여 명으로 적고 2024년 기준 소록도 내 별도 거주지에 사는 한센인이 369명이라고 적는다. 역대 주임은 1대 권(마이클스) 야고보(1960~1964)에서 16대 강길웅 요한(1997~2007), 17대 박희동 사도 요한(2007~2010), 18대 서달원 안드레아(2010~2013), 19대 김연준 프란치스코(2013~2019), 20대 강요섭 요셉(2019~2022), 21대 이준호 세례자 요한(2022~)으로 이어진다(디지털고흥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97년 부임한 17대 강길웅 요한까지 적으며 대수가 한 대씩 다르게 매겨져 있다.
건축과 공간
병사성당(2번지)와 직원(관사)성당(1번지): 디지털고흥문화대전에 따르면 소록도성당은 관사성당과 병사성당으로 각각 분리되어 있지만 소록도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병사성당은 1961년 10월 11일 건평 170평으로 건립되었고, 관사성당은 140평 규모로 건립되었으며 관사성당에는 ‘피정의 집’이 있어 다른 신도들이 봉사 활동과 체험 활동에 참여한다. 고흥 소록도 병사성당은 2016년 6월 1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659호로 지정되었고, 2025년 3월 27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병사 성당의 성모 동굴과 판석은 1962년 5월 10일 축성되었고 1964년 12월 15일 성모 동굴 앞에 십자가가 세워졌으며, 1984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병사성당에 대형 십자고상을 마련해 주었다. 1978년 7월에는 병사 성당과 직원 성당이 각각 보수·확장 공사를 거쳤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오스트리아 출신 수녀로 1962년과 1966년에 소록도에 들어와 약 40년간 한센인을 돌보았다. 두 수녀의 사택은 2016년 6월 14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디지털고흥문화대전 “천주교”).
- 벌교성당: 소록도 병사 공소와 직원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기 전인 1959년 11월 벌교본당 소속 공소로 변경되었고, 벌교 본당의 마이클스 신부가 성당 건립을 추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고흥문화대전).
- 고흥성당·녹동성당: 소록도에서 시작된 천주교가 고흥 지역으로 확산된 성당이다. 디지털고흥문화대전은 고흥성당이 1956년 벌교성당 고흥공소로 시작해 1970년 본당으로, 녹동성당이 1959년 녹동공소로 시작해 1980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소록도 본당”(7권). 1960년 8월 13일 본당 승격, 주보,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소록도 천주교 전래와 공소 시기, 1961년 성당 신축, 수녀회 활동, 1984년 교황 방문.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597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고흥문화대전 “소록도성당”. 1935년 신자 입원, 1943년 첫 미사, 1946년 소록도공소 설립, 1960년 본당 승격, 1961년 병사성당과 관사성당 건립, 1984년 교황 방문, 사제 배출, 병사성당 문화재 지정, 역대 주임신부.
https://www.grandculture.net/goheung/toc/GC10100889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고흥문화대전 “천주교”. 고흥 천주교 역사 개관, 소록도에서 시작된 신앙, 마리안느와 마가렛 수녀, 고흥 지역 성당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goheung/toc/GC1010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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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소록도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5:04. https://missamap.com/ko/kr/gwangju-sorokdo-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