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 성당
개요
노안성당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이슬촌길)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정보는 이 성당을 1908년 계량 본당으로 설립된 나주 지역 최초의 성당이라고 소개한다. 1927년에 지어진 건물은 2002년 9월 13일 국가등록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44호)으로 등록되었다.
역사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정보에 따르면 1894년 서울에 거주하던 정락 요한이 박해를 피해 함평군 나산면에 정착하여 한약방을 경영했고,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주민들이 이 한약방을 왕래하면서 천주교가 알려졌다. 당시 양천리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이진서가 정락을 만난 뒤 친척인 이민숙, 이화서와 함께 교리를 공부하여 1900년 무안 우적동에서 요양 중이던 이내수 신부를 찾아가 세례를 받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계량 공소가 시작되었다. 한겨레는 정락이 1897년 무렵부터 한약을 지으러 온 계량마을 주민들에게 교리 구절을 적어 주었다고 전하며, 계량마을이 광주대교구에서 천주교 공소가 처음 들어선 곳이고 이영선 노안성당 주임신부의 말로는 전남 지역 최초의 자발적 천주교 공동체였다고 소개한다.
1904년 무안군 우적동에 부임한 투르뇌 신부는 나주에 본당을 설립하고자 나주읍과 계량에서 각 7킬로미터 거리인 노안면 용산리 남산에 부지를 마련했으나, 매매 계약이 끝난 뒤 토지의 전 소유주가 계약을 파기하였다. 결국 투르뇌 신부는 1908년 계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굿뉴스는 1910년 카닥스 신부가 넓은 부지를 매입하여 40평 규모의 십자형 초가성당을 건립하고 이어 벽돌을 찍어 2층 양옥 사제관 신축을 시작했다고 적는다. 한겨레는 1908년 프랑스인 카다르 신부가 40평 규모의 초가 성당을 마련하고 손수 벽돌을 찍어 2층 양옥 사제관을 신축했다고 전하여, 신부의 표기와 초가 성당의 시기가 두 자료에서 다르다.
박재수 신부 재임 중인 1927년 성탄 때 벽돌조 사제관을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하여 준공하였다. 1933년 광주 북동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분리시켰고, 1935년 5월 나주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분리시키면서 본당 명칭을 「계량 본당」에서 「노안 본당」으로 변경하였다. 1936년 6월에 부임한 김창현(바오로) 신부는 수천 평의 논밭을 매입하고 학교 건물 두 동을 신축하여 4년제 보통학교인 신성 학술 강습원을 개설하였다. 1944년 이민두(타대오) 신부는 농촌 계몽에 앞장서는 한편 유치원을 설립하였다.
1957년에는 신자들을 수용하기 위해 제단을 중심으로 좌우를 증축하여 현재의 라틴 십자형 성당을 완성하였고, 같은 해 3월 성모 중학원을 설립하여 1961년 성 골롬반 중학교로 정식 인가받았다. 이 학교는 노안면 유일의 중등 교육기관이었으며 1984년 2월 29일 폐교되었다. 1960년대 말부터 공업화로 이농 현상이 촉진되자 한때 4,000여 명이던 노안 본당의 신자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고 굿뉴스는 적고 있다. 1985년에는 폐교된 골롬반 중학교의 건물과 대지를 활용하여 청소년 교육장을 개장하였다.
2008년 11월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식을 가졌고, 2009년 10월 성 골롬반 중학교 출신들이 성당 입구에 봉헌한 성가정상의 축복식을 가졌으며, 2011년 4월에는 성당 옆에 은퇴 주교를 위한 새 주교관인 「베타니아의 집」을 지어 봉헌하였다. 한겨레는 이영선 신부가 2008년 8월 주임신부로 부임한 뒤 계량마을에서 유기농 농사가 본격화되었고, 노안성당이 목포 산정동 본당과 함께 광주대교구가 발전하는 데 초석을 닦은 곳으로 꼽힌다고 전한다.
건축과 공간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에 따르면 나주 노안성당은 1927년에 건립된 1동, 연면적 310.45제곱미터의 건물로, 나주 지역 최초의 천주교회이며 이 지역의 대표적 근대 성당 건축이다. 초기 평면은 장방형의 강당형 평면 구성이었으나 1957년 트랜셉트(익랑) 부분을 동·서 방향으로 증축하면서 라틴십자형 평면이 되었다. 정면의 탑신부 1층은 거칠게 표면을 다듬은 화강석을 사용하였고, 건물 곳곳에 다양한 아치를 조화롭게 배치하였다. 한겨레는 돌을 쌓아 3면에 아치를 둔 성당 출입구와 붉은색 벽돌이 어울려 단아하다고 묘사한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의 연혁은 1927년 건립, 1957년 트랜셉트 부위 증축, 1978년 내부 천장 보수, 1992년 아스팔트싱글로 지붕 개량, 2002년 문화재 등록(제44호), 2004년 지붕 누수 보수와 노후 창틀 보수, 2005~2006년 지붕 원형복원과 탈락된 외벽 붉은 벽돌 보충, 2007년 교회 보수·안내판 보수정비·외부 창호 보수, 2011년 지붕 홈통 및 배수시설 정비, 2013년 문화재명 변경(나주 노안천주교회에서 나주 노안성당으로), 2014년 문화재 특별 종합점검, 2018년 처마 홈통 및 마루 보수이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굿뉴스는 노안성당이 나주 지역 및 광주대교구 복음화의 모태라는 역사적 의의와 시대 흐름을 잘 반영한 건축 양식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 9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고 설명한다. 한겨레는 노안성당 교적을 가진 신자가 계량마을 등 15개 마을 1,000여 명이고, 계량마을은 72가구 141여 명 가운데 98%가 천주교 신자이며 1894년부터 이어 온 마을 대동계 전통이 있다고 전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계량 공소 - 노안 본당의 출발이 된 공소로, 한겨레는 나주성당과 광주 북동성당이 계량공소에서 분할해 나갔다는 이영선 주임신부의 말을 전한다.
- 광주 북동성당 - 1933년 광주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된 본당이다.
- 나주 성당 - 1935년 5월 나주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된 본당이다.
- 정락 요한 - 함평군 나산면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며 노안면 양천리 주민들에게 천주교를 알린 신자이다.
- 이진서, 이민숙, 이화서 - 교리를 공부하여 1900년 이내수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계량 공소를 시작한 신자들이다.
- 투르뇌 신부 - 1908년 계량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킨 신부이다.
- 박재수 신부 - 1927년 성탄에 벽돌조 사제관을 서구식 성당으로 확장·준공한 신부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천주교 서울대교구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 노안 성당. 계량 공소의 시작, 1908년 본당 설립, 1927년 성당 준공, 1957년 증축, 학교 설립, 2002년 등록문화재 지정, 2008~2011년의 일을 확인하였다.
https://app.catholic.or.kr/web/holyplace/?seq=2857 -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나주 노안성당. 1927년 건립, 평면 구성과 1957년 증축, 연혁 일체와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확인하였다.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4413600440000&ctptUid=13898859679959301208 - 한겨레, 호남 쏙 - 전통과 천주교가 110여 년 오손도손 빚어낸 공동체. 계량 공소의 시작, 초가 성당과 사제관, 현재 성당 건물, 계량마을 현황을 확인하였다.
http://asset.hani.co.kr/arti/SERIES/403/591148.html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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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6일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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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6일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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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노안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0:01. https://missamap.com/ko/kr/gwangju-noa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