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흥동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중흥동성당은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과 디지털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1972년 7월 1일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효죽동공소에서 출발하였다. 본당의 주보는 103위 한국 순교 성인이다.

역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북동본당 23대 주임 오닐(천 노엘) 신부는 관할 구역이 방대하여 사목 활동에 어려움을 겪자 본당 분할을 계획하여, 1960년경 효죽동에 10평가량의 건물을 완공하고 공소를 개설하였다. 공소 신자들은 「루르드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창단하는 등 활발한 신심 활동을 하였다. 1964년 8월 계림동본당이 북동본당에서 분리·신설되자 효죽동공소는 신설 본당의 관할이 되었다. 이후 초등부 주일학교와 레지오 마리애 등 여러 단체의 활동으로 교세가 확장되자 효죽동공소는 1972년 7월 중흥동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맥카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중흥동성당이 1960년 효죽동공소에서 시작하여 1972년 7월 1일 계림동성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고 기록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맥카시 신부는 1972년 9월부터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612평)에서 공사를 시작하여 12월에 성당(154평)과 사제관(26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12월 8일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어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기록한다. 본당 승격 초기에는 관할 구역이 방대하고 지리적으로 광주 시내 외곽에 치우쳐 있어 사목 활동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맥카시 신부는 신자 배가 운동을 꾸준히 전개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2대 주임 브랜던 신부도 전교 활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3대 주임 오코너 신부는 1979년 9월 수녀원(19평)과 사무실(11평)을 신축하고 이듬해 2월 인보 성체 수녀회의 분원을 마련하였다.

4대 주임 맥마흔 신부는 기존 성당이 낡고 늘어나는 신자 수를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성당 신축 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 교구 내에서 처음으로 외부의 도움 없이 지상 2층 규모의 신축 성당(295평)을 지어 1981년 11월 22일 봉헌식을 거행하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신자 수의 증가와 성당의 노후화로 1981년 7월 기공식을 거쳐 새로이 성당이 설립되었다고 기록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시내 외곽에 있던 본당은 지역 발전과 함께 관할 구역이 도시의 중심지로 바뀌면서 신자가 늘었다. 5대 주임 버크 신부는 1984년 6월 195세대(540명)의 교적을 두암동본당으로, 이듬해 11월에는 165세대(440명)의 교적을 오치동본당으로 이관하여 분리하였다. 7대 주임 김무웅 신부는 1989년 3월 교육관, 사제관, 사무실로 쓸 건물을 마련하기 위해 「종합 교육관 신축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지하 1층·지상 2층의 교육관(328평)을 완공하고 1990년 4월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8대 주임 김홍언 신부는 1991년 9월 한마음 한몸 운동의 일환으로 결식노인, 지체 부자유자, 무의탁 행려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급식소 「만나의 집」을 마련하였으며 이 시설은 2003년 2월까지 운영되었다. 1994년 3월에는 공부할 방이 없고 학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는 우산동 빈민촌 등의 초등학생·중학생을 위해 우산동 411번지 주택을 임대하여 「성모 공부방」을 개원하였고(1995년 3월까지 운영, 이후 본당 안에서 운영), 1994년 4월부터는 성체 조배실을 개설하였다. 9대 주임 장용주 신부는 1999년 6월 영·호남 간 지역 갈등 극복과 신자들 간 이해와 화해를 도모하기 위해 마산교구 구암동본당과 자매결연을 맺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2014년 3월 1일 성당을 다시 신축하여 옥현진 주교의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중흥동성당이 광주광역시 북구 중흥동을 중심으로 우산동, 풍향동, 용봉동, 문흥동, 오치동, 신안동 일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설명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관할 구역을 중흥동, 풍향2동 전 지역과 우산동, 용봉동, 문흥동 일부 지역으로 적고, 관할 공소로 창평공소 1개소를 적고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록된 교세는 1973년 880명, 1978년 1,439명, 1983년 3,144명, 1988년 4,821명, 1993년 5,132명, 1997년 5,015명, 2001년 4,741명이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본당의 수녀회는 인보 성체 수도회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북동성당: 중흥동 지역에 효죽동공소를 개설한 오닐 신부가 주임으로 있던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계림동성당: 1964년 8월 북동본당에서 분리·신설되어 효죽동공소를 관할하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두암동성당: 1984년 6월 중흥동본당에서 교적을 이관받아 분리된 본당이다.
  • 오치동성당: 1985년 11월 중흥동본당에서 교적을 이관받아 분리된 본당이다.
  • 마산교구 구암동성당: 1999년 6월 자매결연을 맺은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다음과 같다. 초대 맥카시 미카엘(1972.7~1974.12), 2대 브랜던 파트리치오(1974.12~1978.3), 3대 오코너 마우리시오(1978.3~1980.6), 4대 맥마흔 후고(1980.6~1982.12), 임시 오고만 다니엘(1982.12~1983.1), 5대 버크 마르티노(1983.1~1985.9), 6대 쉬한 다윗(1985.9~1986.2), 7대 김무웅 율리오(1986.2~1991.2), 8대 김홍언 요한 보스코(1991.2~1995.2), 9대 장용주 알베르토(1995.2~2000.1), 10대 정규완 토마스 아퀴나스(2000.1~2002.8), 11대 배행기 모세(2002.8~, 사전에는 「현재」로 기재).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가톨릭대사전, 「중흥동 본당」. 1972년 7월 1일 효죽동공소에서 본당 승격, 주보 103위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과 공소, 교세, 역대 신부, 1972년 성당 완공, 1981년 신축 성당 봉헌, 두암동·오치동 분리, 교육관과 사회 사업, 구암동본당 자매결연을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792
  2. 디지털광주문화대전, 「중흥동성당」. 1960년 효죽동공소 시작과 1972년 7월 1일 설립, 초대 주임, 1972년 12월 8일 첫 미사, 1981년 기공, 2014년 3월 1일 새 성당 봉헌, 관할 지역을 확인하였다.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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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11:01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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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ssamap.com/ko/kr/gwangju-jungheungdong-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중흥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1:01. https://missamap.com/ko/kr/gwangju-jungheung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