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진도성당은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4년 11월 산정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이 되었고 초대 주임은 장옥석 루치오 신부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주보는 천상 천하의 모후이며, 2002년 1월 진길 본당이 진도 본당에서 분리되었다.

역사

〔진도의 복음 전래〕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진도 지역에 복음이 전래된 것이 1870년경 제주도 전교를 담당하던 한 프랑스 신부가 목포로 항해하던 중 풍랑을 만나 조도 동구리에 상륙해 전교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적는다. 전교의 결과 1900년부터 1904년까지 조도와 지산면 인지리 지역에 3개의 공소가 설립되었고, 초기 공소들은 민가를 매입해 사용했으며 모두 목포(현 산정동) 본당이 관할했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이 프랑스 신부가 상조도 동구리에 안착했으며, 30년 뒤인 1900~1904년에 동구리공소·창유리공소·인지리공소가 차례로 문을 열었고, 목포 산정동 본당의 드애(조유도) 초대 주임 신부가 1909년까지 3개 공소를 관할하며 세례와 예비자 교리를 시작했다고 적는다.

〔목포 본당 관할 시기〕 대사전은 목포 본당 4대 주임 카넬(간홍모) 신부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동원되어 본국으로 돌아가자 제주 본당의 라크루(구마슬) 신부가 1년여 동안 임시로 목포 본당을 맡았으며, 이러한 주임 신부의 부재가 관할 공소들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1915년 이후 다시 목포 본당에 신부가 파견되면서 신앙 활동이 활발해졌다고 적는다. 목포 본당 11대 주임 최덕홍(요한) 신부는 군내면 둔전리의 신동 지역에 전교를 시작했고, 이 지역은 1951년 8월 목포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으며 공소 건물은 1952년 8월 헨리 주교가 축성했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1951년 8월 군내면의 신동공소가 산정동 본당의 네 번째 관할 공소로 개설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 준비〕 디지털진도문화대전에 따르면 1951년 9월 산정동 본당의 안(토마스 모란) 신부가 고광민(베드로)을 진도 전교회장으로 파견해 현 진도성당 자리의 한옥을 구입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산정동 본당 14대 주임 모란 신부가 본당 분할에 대비해 1952년 9월 진도읍 남동리 586번지의 한옥을 매입하고 지산면 소포리에도 한옥을 매입해 공소를 개설했으며, 16대 주임 새비지(원) 신부도 군내면 월가리에 공소를 개설했다고 적는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고광민이 지산면 소포리에서 한옥을 구입해 공소를 개설하고 초대 공소회장으로 김베네딕뜨를 선임했으며 현 소포리 출신 오요한 신부의 부친 오기섭(베드로)과 함께 전교에 힘썼다고 적는다.

〔본당 설립〕 광주 교구장 헨리 주교는 진도군 내의 모든 공소를 1954년 11월 산정동 본당에서 분리해 진도 본당으로 승격시키고 초대 주임으로 장옥석 신부를 임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설립일을 1954년 11월 7일로,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승격일을 1954년 11월 17일로 적어 출처마다 다르다.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당시 진도 본당의 신자가 52명, 공소 신자가 53명이었고 예비신자가 1백여 명이었다고 적는다.

〔성당 신축과 초기 공소〕 장옥석 신부는 모란 신부가 이미 매입해 둔 부지에 52평의 성당을 신축해 1956년 10월 봉헌식을 거행했다(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1956년 10월 18일로 적는다). 재임 중 미국 원조 사업인 구호 양곡으로 가난한 지역민들에게 박애 사업을 실시했고, 오산·나리·명금·정자리 공소가 1957년 개설되었으며 소포·월가리 공소는 1958년 신축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이 시기에 고군면 오산리, 군내면 나리·정자리·월가리, 지산면 소포리, 의신면 명금리에 공소가 개설되었다고 적는다.

〔1950년대 말~1970년대〕 2대 주임 코터(주) 예레미야 신부는 신동 공소와 의신면 응덕 공소를 개설하고 구호 사업과 함께 신동 간척 사업에 많은 소백분을 원조했으며 새로 생긴 농토를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3대 주임 멀둔(조) 파트리치오 신부는 공소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고 1959년 50평 규모의 사제관을 완공했다. 5대 주임 이상철 힐라리오 신부는 1966년 신동 공소에 본당 부지 1,200평을 마련하고 공소 자립 기금의 기틀을 세웠다. 6대 주임 이천수 라자로 신부는 본당의 장궤틀을 마련했고, 7대 주임 서상채 유스티노 신부는 11월 5일을 본당의 날로 제정해 군 전체 신자들 간의 친목과 일치를 도모했다(이상 한국가톨릭대사전).

〔1980년대~2000년대〕 10대 주임 최형락 바오로 신부는 본당과 12개 공소의 사목을 돕기 위해 수녀원 건립을 추진해 1980년 6월 수녀원 건물(20평)을 완공하고 거룩한 말씀의 회 분원을 마련했다. 11대 주임 조철현 비오 신부는 본당의 종탑을 건립하고 사제관을 수리했으며 신동 공소에 성모상을 건립했다. 12대 주임 장지권 요한 신부는 1985년 10월 석교 공소 강당을 완공하고 사제관을 수리하고 성당의 제대를 구입했다. 15대 주임 김종복 이냐시오 신부는 1995년 7월 3층 성당(322㎡)을 완공해 봉헌식을 거행했다. 16대 주임 김정현 요한 신부는 2000년 4월 사제관과 수녀원을 완공해 축복식을 가졌고, 17대 주임 김종주 루가 신부는 2002년 1월 진길 본당을 분리·설정했다(이상 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석교공소를 1985년 임회면에 개설한 주임을 11대 조현철 신부로 적고, 2002년 1월 22일 유진길본당이 진도본당에서 분리되어 이준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고 적는다. 이후 의신면 돈지리에 의신공소, 고군면에 가계공소가 개설되었다(디지털진도문화대전).

〔현황〕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2개의 본당과 산하 14개소로 늘었던 공소가 진도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 경제적 곤란으로 점차 어려움에 처했고 신자 수는 줄고 낡은 건물은 복구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적는다. 2006년 현재 진도본당은 석교공소·인지공소·소포공소 3곳을 관할하고, 유진길본당은 나리·신동·오산·가계·연주·돈지·명금·창유·동구 9개 공소를 관할한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3년 2,197명, 1978년 2,400명, 1983년 2,695명, 1988년 3,023명, 1992년 3,146명, 1996년 2,913명, 2001년 2,307명이다. 관할 구역은 진도읍, 임회면, 지산면 전 지역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장옥석 루치오(1954.11~1959.6), 2대 코터(주) 예레미야(1959.6~10), 3대 멀둔(조) 파트리치오(1959.10~1965.5), 4대 라반(심) 라우렌시오(1965.11~1966.10), 5대 이상철 힐라리오(1966.10~1968.6), 6대 이천수 라자로(1968.6~1970.11), 7대 서상채 유스티노(1970.11~1973.6), 8대 박영웅 가브리엘(1973.6~1975.9), 9대 송현섭 베드로(1975.9~1978.2), 10대 최형락 바오로(1978.2~1981.8), 11대 조철현 비오(1981.8~1984.1), 12대 장지권 요한(1984.1~1987.1), 13대 박희동 요한(1987.1~1991.2), 14대 서성래 아우구스티노(1991.2~1994.2), 15대 김종복 이냐시오(1994.2~1998.1), 16대 김정현 요한(1998.1~2001.1), 17대 김종주 루가(2001.1~)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건축과 공간

1956년 10월 봉헌된 52평 성당과 1959년 완공된 50평 사제관이 초기 건물이다. 1995년 7월에는 3층 규모(322㎡)의 성당이 완공되어 봉헌식이 거행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1980년 6월 수녀원 건물(20평)이 완공되었고, 2000년 4월 사제관과 수녀원이 새로 완공되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산정동 본당(목포): 진도 지역 공소들을 1954년 11월까지 관할했던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진길 본당(유진길본당): 2002년 1월 진도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으로, 디지털진도문화대전은 나리·신동·오산·가계·연주·돈지·명금·창유·동구 공소를 관할한다고 적는다.
  • 석교·인지·소포 공소: 2006년 현재 진도본당이 관할하는 공소이다(디지털진도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도 석교·인지·소포 공소 3개소를 관할 공소로 적는다.
  • 장옥석(루치오) 신부: 진도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1956년 성당을 신축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진도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진도 본당”(10권). 1954년 11월 7일 산정동 본당에서 분리 설립, 복음 전래와 공소 형성, 성당 신축, 주임별 사업, 교세, 관할 구역과 공소,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842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진도문화대전 “성당”. 진도 천주교 전래, 신동공소와 한옥 구입, 1954년 본당 승격, 1956년 성전 신축, 공소 개설, 2002년 유진길본당 분리, 2006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jindo/toc/GC00501766
문서 정보
문서 크기
10,171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7일 02:44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44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2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be3eb955-acb0-489d-947b-708ea882f01e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gwangju-jindo-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진도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44. https://missamap.com/ko/kr/gwangju-jindo-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