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운동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학운동성당은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4년 4월 16일 방림동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주보는 한국 순교 성인이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방림동성당과 학운동 사이의 상당한 거리 문제와 적극적인 지역 복음화를 위해 학운동성당의 설립이 추진되었다고 설명한다.

역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광주시 외곽인 학운동 일대는 방림동본당의 관할 구역이었으나 본당과의 거리가 멀어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고, 주민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 본당 설립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았다. 이에 광주대교구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가 신자들의 고충을 덜고 이 지역의 복음화를 진작시키기 위해 본당 신설을 결정하였다. 1974년 4월 16일 학운동본당이 설립되어 장옥석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고, 설립 당시 신자는 방림동본당에서 분리된 185세대 577명이었다.

성당 건립 부지는 1963년 10월 당시 헨리(현해) 교구장이 매입해 둔 학운동 731-1번지의 70평과 이후 매입한 같은 번지의 또 다른 대지 및 인근 밭을 교구가 제공한 것이다. 이곳에는 본래 1972년 광주대교구가 세운 사제관이 있었는데, 1974년 4월 본당이 설립되자 이 건물과 부지를 본당에 제공하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장옥석 신부는 1974년 8월 65평 규모의 성당을 신축하였고 11월 3일 윤공희 대주교의 집전으로 봉헌 미사를 거행하였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1974년 8월 31일 본당 신축 공사를 완공하여 9월 8일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고 기록한다. 1974년 9월에는 안나회, 요셉회, 청년회 등을 조직하여 본당의 기틀을 다졌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2대 주임 돌란(도, 요셉) 신부 재임기인 1977년 8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빈첸시오회를 조직하였고, 1978년 4월 사도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을 발족하였다. 3대 주임 쉬한(간, 다윗) 신부 재임기인 1979년 3월 사랑의 씨튼 수녀회 소속 수녀가 본당에 파견되었으며, 1982년 「본당 공동체의 해」를 맞아 설립 초창기부터 해 오던 8개의 반 기도회를 21개의 반 모임으로 정비하였다.

4대 주임 오그래디(오, 미카엘) 신부 재임기인 1984년 2월, 성당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면서 전입 신자가 늘자 성당 신축을 결정하고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같은 해 5월 한국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신축될 성당의 머릿돌을 축복받았고, 7월에는 본당 재정을 자립화하여 더 이상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보조를 받지 않게 되었다. 1985년 12월 공사 시작 8개월 만에 358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되어 봉헌식을 거행하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광주문화대전도 1984년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광주 행사를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성당 머릿돌을 미리 축성받았으며, 1985년 12월 새로이 본당을 건립하였다고 설명한다.

6대 주임 김종남 신부 재임기인 1991년 6월에는 약 7개월간의 공사 끝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종합관 건물을 완공하여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7대 주임 김서규 신부 재임기인 1996년 5월 성당 옆의 3층 건물을 매입하여 1층을 신자들의 만남의 공간으로, 2층을 교육실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9대 주임 임병태 신부 재임기인 2001년에는 성당 주위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부속 건물을 철거하였고, 2003년 12월 24일에는 원불교와 불교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성당에서 「성탄 기념 무등산 풍경 소리 공연」을 열었다. 2004년 8월에는 본당 설립 3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모이면 기도하고 흩어지면 선교하라」를 주제로 선교 출정식을 갖고 선교 활동 40일 운동에 들어갔으며, 9월 30일을 「천주교회를 소개하는 날」로 정하여 본당 신자 1가구당 1명 이상 예비 신자 입교 운동을 전개하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경향신문 2005년 12월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학운동성당 주임 이성규 신부(59세)는 고향인 광산구 수완동에 성당을 짓고 싶다는 오랜 뜻에 따라, 토지 보상금과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합한 10억 원과 전남 나주 영산포의 시가 1억 5천여만 원의 땅을 광주대교구에 기증하였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학운동성당이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을 중심으로 소태동, 운림동, 월남동, 선교동, 용연동, 내남동 일대와 남구 방림동, 북구 금곡동·용산동 일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설명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관할 구역을 소태동, 용산동, 운림동, 내남동, 월남동, 선교동, 용연동과 방림동·학동 일부 지역으로 적고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기록된 교세는 1975년 522명, 1980년 839명, 1985년 2,143명, 1990년 3,496명, 1995년 4,796명, 2000년 5,136명, 2005년 5,433명이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2019년 7월 기준 신자는 5,660명이며 정기적으로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신자는 898명으로 파악된다. 이 출처는 당시 주임 신부를 이종희(요한) 신부, 보좌 신부를 손민호(요셉) 신부, 수녀회를 프란치스코전교봉사 수녀회로 적고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방림동성당: 1974년 학운동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
  • 골롬반 외방선교회: 1984년 7월 본당 재정이 자립하기 전까지 본당을 보조한 선교회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주임 신부는 다음과 같다. 초대 장옥석 루치오(1974.4~1975.5), 2대 돌란 요셉(1975.5~1979.3), 3대 쉬한 다윗(1979.3~1983.9), 4대 오그래디 미카엘(1983.9~1987.10), 5대 오리어리 안드레아(1987.10~1990.1), 6대 김종남 로마노(1990.1~1995.2), 7대 김서규 마태오(1995.2~1997.1), 8대 김종주 루가(1997.1~2001.1), 9대 임병태 시몬(2001.1~, 사전에는 「현재」로 기재).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가톨릭대사전, 「학운동 본당」. 1974년 4월 16일 방림동본당에서 분리·설립, 주보 한국 순교 성인,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부지와 사제관, 1974년 성당 신축과 봉헌 미사, 1985년 12월 성당 완공, 1991년 종합관, 2003~2004년 행사를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718
  2. 디지털광주문화대전, 「학운동성당」. 방림동성당에서의 분리 배경, 초대 주임, 1974년 9월 8일 첫 미사, 1984년 머릿돌 축성, 1985년 12월 본당 건립, 관할 지역, 2019년 신자 수를 확인하였다.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3283
  3. 경향신문, 「‘성당짓기’ 40년꿈 이룬 신부님」(2005년 12월 25일). 당시 학운동성당 주임 신부의 토지 기증을 확인하였다.
    https://www.khan.co.kr/article/200512251758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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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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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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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학운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0:48. https://missamap.com/ko/kr/gwangju-hakun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