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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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고흥성당

개요

고흥성당은 천주교 광주대교구 중남부지구에 속한 본당으로, 고흥군 고흥읍 신계학림길 20에 자리한다. 본당의 주보성인은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Maria Auxilium Christianorum)**이다. 현재의 성당은 2001년에 봉헌된 성전으로, 고흥 지역 천주교 공동체가 1950년대 공소 시기부터 성장해 본당으로 발전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흥 지역의 천주교 공동체는 1950년대 중반 소수 신자들이 정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순천본당과 벌교본당의 관할을 거쳐 독립 본당으로 성장했으며, 고흥군 내 여러 지역의 선교와 공소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90년대에는 지역 특산물인 유자를 이용한 유자차 생산·판매를 성전 건립 기금 마련 사업으로 전개한 일이 널리 알려졌고, 그 결실 가운데 하나로 2001년 현 성전이 봉헌되었다.

본당의 정확한 설정일은 교회 자료 사이에 차이가 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현재 본당 정보는 1970년 12월 24일을 설립일로 제시하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은 1970년 12월 4일로 기록한다. 반면 한국교회사연구소의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71년 1월 1일 벌교본당에서 분가하여 본당으로 설정되었다고 서술한다. 2020년 본당 설립 50주년 보도는 1970년 12월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정리한다. 이러한 자료 차이를 고려해, 이 글에서는 1970년 12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는 사실을 기준으로 서술하고 정확한 날짜는 단정하지 않는다.

역사

고흥성당의 기원은 고흥공소에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5년 당시 순천본당(현 저전동본당) 관할 지역이던 고흥에 거주하던 정계성(요셉), 김 라우렌시오, 차 이시도로 등을 포함한 6명의 신자가 본당 신부와 협의해 공동체의 기초를 마련했다. 이들은 이듬해인 1956년 고흥면 서문리 107번지에서 월 1회 주일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 2020년 본당 설립 50주년을 다룬 가톨릭신문 기사도 고흥본당의 시작을 1956년 순천 저전동본당 관할 고흥공소의 설립으로 설명한다.

1958년 고흥공소의 사목 관할은 벌교본당으로 이관되었다. 당시 벌교본당의 모리시(M. Morrissey, 모 미카엘) 신부는 고흥면 옥하리에 있는 신자 가정을 임차해 공소 공동체가 미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왔다. 이후 올리어리(A. O’Leary, 오 안드레아) 신부의 도움 아래 현재 성당이 자리한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기 시작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60년부터 1961년 6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약 690여 평의 부지를 확보했다고 기록한다.

1965년 9월에는 이 부지에 강당과 관사가 건립되었다. 이 강당은 이후 공소 공동체가 성당으로 사용했다. 고흥공소는 1970년 12월 독립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71년부터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사제들이 고흥 지역 사목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이 시기의 역대 주임 순서에는 자료 차이가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레이문도 스피스(R. Spies)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프란치스코 아리아가(Francisco Arriaga Méndez, 한국명 민호) 신부를 제2대 주임으로 기록한다. 반면 2020년 50주년 보도는 민 프란치스코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소개한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두 사제의 서열을 확정적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본당 승격 이후 시설도 단계적으로 확충되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1년 사제관이 건립되었고, 1976년에는 교육관이 마련되었다. 1981년 10월에는 기존 성당을 증축하면서 수녀원과 회의실도 함께 건립하였다. 같은 시기 고흥군 각 지역의 공소와 본당이 성장하면서 고흥본당의 관할 구조도 변화했다.

고흥본당과 관련한 중요한 분가 사례가 녹동본당이다.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의 교회사 자료에 따르면 녹동공소는 1970년 12월 고흥본당 관할로 편입되었고, 이후 성당 증축을 거쳐 1980년 12월 12일 고흥본당에서 분리되어 녹동본당으로 신설되었다. 또한 도화 지역에서도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사제들이 선교를 전개해 고흥본당 소속 도화공소가 형성되었고, 훗날 도화본당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 고흥본당은 시설 확충뿐 아니라 평신도 조직과 성서 사도직을 강화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사목협의회, 청년회, 레지오 마리애 등의 활동과 함께 1980년 6월부터 통신 성서 교실을 운영했다고 기록한다. 1983년 10월에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과 관련된 순교 복자 유해 순회 기도회가 본당에서 열렸다.

1990년대에는 성전 신축을 위한 본당 공동체의 장기적인 모금 활동이 두드러졌다. 고흥본당은 1991년부터 지역 특산물인 유자를 가공한 유자차를 생산·판매하기 시작했다. 가톨릭신문의 1997년 보도에 따르면 이 사업은 유자 농가인 본당 신자들의 소득을 돕는 동시에 새 성전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유자의 세척, 절단, 씨 제거, 설탕 혼합, 병입과 포장 등의 작업에는 많은 신자들이 직접 참여했다. 기사에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약 3억 원의 수익을 올렸고, 주문량이 1만 8천 병 수준까지 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준비를 거쳐 새 성전이 건립되었고, 2001년 4월 23일 최창무 당시 광주대교구장 대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가톨릭신문은 봉헌식에 신자와 지역 주민 약 400명이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본당 주임은 강요섭 신부였다. 새 성전은 성당뿐 아니라 교육관, 사제관, 수녀원 등의 시설을 포함해 고흥본당의 사목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5월 17일에는 김희중 당시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주례로 본당 설립 50주년 감사미사가 봉헌되었다. 이 행사에는 옥현진 당시 교구 총대리 주교와 본당 신자 등이 참여했고, 본당 발전에 기여한 신자들에게 감사패가 수여되었다. 이 50주년 행사는 고흥공소에서 출발해 독립 본당으로 성장한 공동체의 역사를 공식적으로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과 공간

현재 고흥성당의 핵심 건물은 2001년에 봉헌된 성전이다. 가톨릭신문의 당시 봉헌식 보도에 따르면 성당 부지는 약 1,250평, 전체 연건평은 약 275평이었으며, 성당·교육관·사제관·수녀원 등이 함께 조성되었다. 총 공사비는 약 8억 5천만 원으로 보도되었다.

현 성전의 가장 분명한 건축적 특징은 외형에 부여된 상징성이다. 봉헌 당시 가톨릭신문은 새 성전을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 형태”**의 건물로 설명했다. 달걀은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교 문화에서 새 생명과 부활을 연상시키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고흥성당의 건축 형태 역시 이러한 의미를 의도적으로 반영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신뢰도 높은 공개 자료에서는 설계자의 이름, 구조 형식의 세부 명칭, 시공사, 내부 성미술 작가,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자 등에 관한 일관된 공식 기록을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러한 세부 사항은 확인되지 않은 개인 블로그나 사진 설명을 근거로 단정하지 않는 것이 적절하다.

고흥성당의 공간사는 한 차례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공소 시기의 소규모 시설에서 출발해 점진적으로 확장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1965년 강당과 관사 건립, 1970년대 사제관과 교육관 확충, 1981년 성당 증축과 수녀원·회의실 건립을 거친 뒤, 1990년대의 성전 건립 기금 조성과 2001년 새 성전 봉헌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현 성전은 단순히 새로운 건물을 세운 결과라기보다,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된 고흥 지역 신자 공동체의 활동과 시설 확장의 최종적인 결실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갖는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고흥성당의 주보성인은 그리스도인의 도움이신 마리아이다. 이 호칭 아래 성모 마리아를 본당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으며, 이는 광주대교구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공식 본당 자료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고흥성당의 신앙적 의미를 이해할 때에는 건물 자체보다 지역 공동체의 형성 과정을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흥 지역 천주교 공동체는 처음부터 큰 본당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1950년대 소수의 신자들이 정기적인 미사를 마련한 공소에서 시작했다. 이후 신자들의 토지 마련과 시설 건립, 외방선교회 사제들의 사목, 평신도 단체와 성서 사도직의 성장 등을 거쳐 독립 본당으로 발전했다.

특히 유자차 사업은 고흥본당의 공동체 역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사업은 단순한 판매 활동이 아니라 본당 신자들이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성전 건립 기금을 마련하고, 신자 농가의 소득에도 도움을 주려 했던 공동 작업이었다. 작업 과정에 여러 신자가 직접 참여했고, 그 수익은 새 성전 건립의 기반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01년 성전 봉헌은 이러한 장기간의 공동체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방문자는 현재의 성전이 2001년에 봉헌된 비교적 현대적인 성당이라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고흥성당은 중세나 근대 초기의 건축유산을 보존한 성당이라기보다, 1950년대 이후 고흥 지역 천주교 공동체의 성장사와 20세기 후반 농촌 본당의 공동체 활동을 보여주는 장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성당을 신앙 목적으로 방문할 경우 미사와 전례가 우선되는 종교시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미사 시간은 시기와 사목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광주대교구 본당 안내나 고흥성당에 직접 확인하는 것이 안전하다. 성전 내부를 둘러보거나 사진을 촬영할 때에도 미사, 고해성사, 개인 기도 등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방문하는 것이 적절하다.

관련 장소와 인물

**저전동성당(옛 순천본당)**은 고흥공소의 초기 역사와 직접 연결된다. 고흥 지역 신자 공동체가 형성되던 1950년대 중반 고흥은 순천본당의 관할 지역이었고, 고흥공소의 출발도 이 본당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다. 순천시가 공개한 지역 천주교사 자료에서도 고흥공소가 1956년 설립되어 1970년 본당으로 발전한 계통이 확인된다.

벌교성당은 고흥공소의 본당 승격 이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고흥공소의 관할권은 1958년 순천본당에서 벌교본당으로 이관되었고, 공소는 벌교본당 사제들의 지원 아래 토지를 마련하고 시설을 건립했다. 고흥본당은 이후 벌교본당에서 분리되어 독립 본당으로 성장했다.

과역공소는 고흥 지역의 천주교사와 연결되는 공소이다. 광주대교구의 현재 공소 안내는 과역공소를 고흥본당 소속으로 표기하며, 설립일을 1965년 1월 1일로 기록하고 있다. 주소는 고흥군 과역면 송학샘길 24-29이다. 과역공소는 고흥군 북동부 지역의 신앙 공동체 형성과 고흥본당의 지역 사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장소다.

녹동성당은 고흥본당에서 분리되어 성장한 본당이다. 녹동공소는 고흥본당 관할 아래 발전한 뒤 1980년 12월 독립 본당으로 승격했다. 따라서 고흥본당과 녹동본당의 관계는 고흥군 내 천주교 공동체가 하나의 중심 본당에서 지역별 본당으로 분화된 과정을 보여준다.

도화성당 역시 고흥본당의 지역 선교와 관련이 있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관련 교회사 자료에 따르면 선교사들이 당시 고흥본당 관할이던 도화 지역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도화공소가 형성되었고, 이후 독립 본당으로 발전했다.

고흥본당의 초기 성장에는 여러 외국인 선교사들이 관여했다. 벌교본당의 모리시(M. Morrissey, 모 미카엘) 신부와 올리어리(A. O’Leary, 오 안드레아) 신부는 공소 시절 고흥 공동체의 미사와 토지 마련을 도왔다. 본당 승격 전후에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사제들이 고흥 지역에서 사목했다.

그 가운데 **민호 프란치스코 신부(Francisco Arriaga Méndez, 1926~2022)**는 고흥본당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선교사다. 광주대교구는 그가 1964년 한국에 파견되어 소록도·벌교·고흥·구례·선원동·매곡동·쌍촌동·신기동·도화 등 여러 본당에서 사목했다고 기록한다. 민호 신부는 이후에도 고흥군 도화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목했으며 2022년 멕시코에서 선종했다.

최창무 대주교는 2001년 4월 23일 현 고흥성당의 봉헌미사를 주례한 당시 광주대교구장이다. 김희중 대주교는 2020년 5월 17일 고흥본당 설립 50주년 감사미사를 주례해 본당의 반세기 역사를 기념했다.

참고자료 및 출처

아래 자료 가운데 교구·주교회의·한국교회사연구소의 자료를 기본 자료로 사용하고,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의 당시 보도를 연혁 확인에 교차 활용했다. 개인 블로그나 출처가 불분명한 건축 설명은 본문 근거로 사용하지 않았다.

  1. 천주교 광주대교구, 「고흥 성당」 본당 안내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 고흥」
  3.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 고흥 본당」
    • 1950년대 고흥공소 형성, 토지 매입, 1965년 강당·관사 건립, 본당 승격, 초기 역대 사제와 시설 확충 과정 확인.
    • 본당 설정일을 1971년 1월 1일로 기록.
    •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74
  4. 가톨릭신문, 「광주대교구 고흥본당 50주년 감사미사」, 2020년 5월 20일
  5. 가톨릭신문, 「[새성당 봉헌식] 광주대교구 고흥본당」, 2001년 4월 29일자
  6. 가톨릭신문, 「[특별기획 ‘우리 먹을거리, 우리가 먹읍시다’] 전남 고흥본당 ‘유자차’」, 1997년 1월 26일자
  7. 천주교 광주대교구, 「과역 공소」 안내
  8.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오늘의 소사 – 광주대교구 녹동본당 신설」
  9. 가톨릭평화신문,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한국 진출 50돌」 관련 자료
  10. 천주교 광주대교구, 「과달루페외방선교회 민호 프란치스코 신부 선종」, 2022년 6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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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9월 25일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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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5일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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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고흥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9월 25일 17:25. https://missamap.com/ko/kr/gwangju-goheu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