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암동 성당
개요
두암동성당은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과 디지털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1984년 6월 24일 중흥동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두암동공소에서 출발하였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본당의 주보를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적고 있다.
역사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두암동, 각화동, 우산동, 문화동에 사는 신자들이 중흥동성당과 거리가 멀어 미사 참례에 어려움이 컸고, 두암동 일대가 신 주택 단지와 아파트 단지로 계획되어 신자 수가 날로 늘고 있었다. 이에 1983년 6월 10일 두암동 841-12번지의 지하실 30평을 전세 내어 공소를 설립하기로 하고, 6월 25일 저녁 모본당인 중흥동본당의 부케(Martin Bourke) 신부의 주례로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 미사에는 중흥동성당의 차 헬레나 수녀와 김 요한 비엔나 수녀를 비롯한 120여 명이 참석하였고, 공소 회장으로 정상기(시몬)가 임명되었다. 같은 출처는 두암동본당의 역사가 1983년 6월 24일 두암동공소의 설립에서 시작된다고 적고 있으며,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1983년 6월 10일 두암동공소로 시작했다고 기록한다.
공소로 쓰던 지하실이 신자 수 증가로 비좁아지고 습기가 차는 등 불편해지자 새 공소 자리를 물색하였고, 7월 29일 당시 호남동성당에 교적을 둔 이건수(요셉)가 운영하던 혜성 유치원으로 공소를 옮겨 미사를 봉헌하였다. 공소 규모가 커지자 교구는 본당 승격을 위해 두암동 873-12번지에 부지를 마련하였고, 공소 설립 1년 만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84년 6월 두암동 888-18번지의 명신 빌라 맨션 103호를 임차하여 사제관으로 사용하면서 평일 미사를 이곳에서 집전하였다. 1984년 7월 현재의 성당 대지에서 성당 건축 1차 공사(지하 1층, 지상 1층, 사제관, 소성당, 수녀원 골조)를 시작하였고, 11월에는 1층 소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였다. 1986년 2월부터 인보 성체 수녀회 분원이 설치되었다. 1987년 5월 2차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11월 28일 본 성당을 완공하였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도 본당이 1987년 11월 28일 완공되었다고 기록하며, 초대 주임 신부를 돌란 요셉 신부로 적고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두암동본당은 관할 구역이 대체로 주거 지역이어서 아파트 단지가 크게 형성되었고 관할 구역도 넓은 편이었다. 택지 조성과 아파트 건립으로 신자가 늘어 자본당의 분가가 필요해지자 1990년 5월 문흥동공소를 설립하였고, 이듬해인 1991년 2월 7일 문흥동본당을 설립·분할시켰다. 1994년 4월 10일에는 사무실을 신축하고 축성하였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은 1991년 문흥동성당의 건립과 1997년 산수동성당의 건립에 따라 신자들이 분가 전출하였다고 기록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공소 시절 7개 반으로 편성했던 관할 구역은 본당 승격 뒤 늘어나 17개 반으로 확대되었다. 본당 승격 당시부터 교세 확장을 위해 예비자를 모집하고자 선교용 팸플릿 「하느님과의 만남」을 지역 주민들에게 배포하였고, 빈첸시오회를 중심으로 불우 이웃 돕기를 하였으며 연령회는 초상집 돌보기에 나섰다. 1986년과 1987년에는 경로 잔치를 열었고 교도소도 자주 방문하였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냉담자 권면, 환자 방문, 비신자 입교 권면, 교리 지도, 상가 돌보기 등을 하였으며, 각각 1명의 비신자를 입교시켜 대자 또는 대녀로 삼기로 다짐하고 실천하는 운동도 벌였다. 레지오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본당 사목협의회 회원 전원이 레지오 단체에 가입하였다.
1989년 7월 광주 지방에 큰 비가 내리자 모금 운동과 생필품 모으기 등 수재민 돕기 운동을 벌였고, 같은 해 8월에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9일 기도를 하고 범국민 서명 운동에 참여하였다. 1990년 이후에는 예비자 교리 교육을 맡을 교리 교사 양성과 단체장 교육을 위해 성지 순례와 피정 등을 실시하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두암동성당의 관할 구역을 두암동, 우산동으로 적고 있다. 기록된 교세는 1984년 511명, 1985년 1,430명, 1988년 3,037명, 1990년 3,963명, 1994년 4,525명이다.
디지털광주문화대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본당 총 신자 수는 4,978명이고 주임 신부는 김계홍(요한금구) 신부, 보좌 신부는 이상훈(파트리치오) 신부이다. 본당은 경로잔치와 식사 나눔을 통해 지역 사회와 연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중흥동성당: 1984년 두암동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모본당이다.
- 문흥동성당: 1991년 두암동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 산수동성당: 1997년 건립되면서 두암동본당에서 신자들이 분가 전출하였다(디지털광주문화대전).
- 농성동성당: 두암동본당이 신축 중이던 시기에 공사비 잔액 1천만 원을 전달한 본당이다(농성동 본당 항목,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다음과 같다. 초대 돌란 요셉(1984.6~1987.2), 2대 날론 미카엘(1987.2~1990), 3대 케니 바오로(1990~1994.2), 4대 서상채 유스티노(1994.2~, 사전에는 「현재」로 기재).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두암동 본당」. 1984년 6월 24일 중흥동본당에서 분리·설립, 주보 성 김대건 안드레아,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공소 시절과 본당 승격, 성당 건축과 완공, 문흥동본당 분할, 신자 활동을 확인하였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500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두암동성당」. 1983년 두암동공소 시작과 1984년 6월 24일 설립, 1987년 11월 28일 완공, 초대 주임, 인보성체 수녀회 분원, 문흥동·산수동 분가 전출, 2021년 신자 수를 확인하였다.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toc/GC60003266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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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두암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1:06. https://missamap.com/ko/kr/gwangju-duam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