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성당
개요
벌교성당은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41년 설립된 벌교 공소가 1957년 9월 20일 보성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초대 주임은 골롬반 외방선교회의 모리시(M. Morrissey) 미카엘 신부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벌교 지역에는 1940년 3월경 만주 연길 지역에서 이사 온 방용원(타대오)과 양만선(사비나) 부부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다. 처음에는 벌교에 공소가 없어 순천(현 저전동) 본당 소속의 승주군 낙안 공소로 다녀야 했고, 당시 이 지역에는 방용원의 가족 외에 신자가 세 명 더 있었다. 쿠삭(T. Cusack) 신부가 순천 본당 주임으로 있던 1941년에 벌교 공소가 설립되어 방용원의 집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고, 1954년 12월 7일 보성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벌교 공소는 새 본당에 편입되었다.
〔본당 승격〕 대사전에 따르면 보성 본당의 2대 주임 모리시 신부는 관할 지역 가운데 장차 본당을 설립할 후보지로 벌교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1957년 9월 20일자로 벌교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자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모리시 신부는 1940년부터 야학으로 운영되어 오던 송명학교(현 사제관)를 인수·보수해 성당으로 사용했고 사제관도 건립했다. 이때까지 본당의 교세는 미미했으나 레지오 마리애 ‘구세주의 모친’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어 전교 활동을 벌이면서 신자 수가 늘기 시작했다. 1958년에는 순천 본당 관할의 고흥 공소를 이관받았고, 1960년 5월에는 소년 레지오 마리애 ‘인자하신 정녀’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어 미사 복사 지도, 학생 교리반 인도, 성가 지도와 학생 예비 신자 인도에 기여했다.
〔성당 건립과 공소 설립〕 대사전은 3대 주임 올리어리(A. O'Leary) 신부 때인 1961년 소신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미국인 신자의 기부와 교구의 지원으로 102평의 성당을 건립했다고 적는다. 4대 주임 돌란(J. Dolan) 신부 때 교세가 크게 확장되자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에 동강 공소를, 승주군 외서면 금성리에 금성 공소를 설립했다. 가톨릭 구제위원회(N.C.W.C.C.)의 지원을 받아 동강면 대서리에서 간척 사업을 벌였으나 자금난으로 중단했다.
〔사목자 교체와 교구 이관〕 대사전에 따르면 1968년 8월 5대 주임 아리아가(F. Arriaga) 신부를 마지막으로 골롬반 외방선교회가 철수하고 과달루페회의 페나(L. Pena) 신부가 부임했다. 1971년 1월 1일 고흥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어 이때 과역 공소가 신설 본당으로 이관되었으며, 1976년 8월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루나(A. Luna)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를 재정비하고 사도회와 성모회를 발족시키는 한편 교육관과 사제관을 건립했다. 1982년 2월 벌교 본당의 관할이 광주대교구에 이관됨에 따라 한국인 안호석 안드레아 신부가 11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성당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안호석 신부는 성심회, 요셉회, 제대회 등 여러 평신도 단체를 조직했고, 13대 주임 김재기 신부는 소성당과 도서관을 건립하고 교리실을 신축했으며 학생 성서 모임을 결성하고 학생회지 《풋보리》를 발간했다.
〔교세 변화〕 대사전은 이 무렵부터 대도시로의 이주 인구가 증가해 교세가 급격히 감소하는 실정이어서, 본당이 1996년 4월 지역 소공동체를 결성하는 등 교세 확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적는다. 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58년 189명, 1964년 617명, 1972년 718명, 1979년 822명, 1985년 1,154명, 1991년 1,267명, 1995년 1,338명이다.
〔관할 구역과 주소록의 기록〕 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보성군 벌교읍·조성면, 승주군 외서면·낙안면·송광면, 고흥군 동강면·대서면·남양면 일대이며 공소는 동강·금성 2개소이다. 대사전은 주보를 성녀 마르가리타로 적는 반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 본당을 중남부 지구 소속으로, 설립일을 1957년 9월 20일로, 주보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로 적는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모리시(M. Morrissey, 모) 미카엘(1957.9~1960.4), 2대 마이클스(J. Michaels, 권) 야고보(1960.4~8), 3대 올리어리(A. O'Leary, 오) 안드레아(1960.8~1964.8), 4대 돌란(J. Dolan, 도) 요셉(1964.8~1966.9), 5대 아리아가(F. Arriaga, 민) 프란치스코, 6대 페나(L. Pena, 배) 루도비코(1968.8~1971.9), 7대 에스피노자(J. Espinoza, 노) 요셉(1971.9~1972.9), 8대 바쿠다노(T. Baguedano, 박) 테오도로(1972.9~12), 9대 알바레즈(P. Alvarez, 안) 바오로(1972.12~1976.8), 10대 루나(A. Luna, 윤) 아우구스티노(1976.8~1982.2), 11대 안호석 안드레아(1982.2~1985.2), 12대 이재휘 시메온(1985.2~1986.2), 임시 김재기 안드레아(1986.5~8), 13대 김재기(1986.8~1989.2), 14대 김권일 프란치스코(1989.2~1992.2), 15대 정대영 모세(1992.2~1996.2), 16대 이재휘(1996.2~1997.2), 17대 고을식 토마스(1997.2~대사전 집필 당시 현재)이다.
건축과 공간
대사전에 따르면 1961년 3대 주임 올리어리 신부 때 소신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미국인 신자의 기부와 교구의 지원으로 102평의 성당을 건립했다. 초기에는 1940년부터 야학으로 운영되어 오던 송명학교(현 사제관)를 인수·보수해 성당으로 사용했다. 13대 주임 김재기 신부 때 소성당과 도서관을 건립하고 교리실을 신축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보성 본당: 1954년 12월 7일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벌교 공소는 이 본당에 편입되었다. 2대 주임 모리시 신부가 1957년 벌교 본당의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순천 본당(현 저전동 본당): 1941년 벌교 공소가 설립될 때의 본당이며, 고흥 공소를 1958년 벌교 본당에 이관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고흥 본당: 1971년 1월 1일 고흥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동강 공소·금성 공소: 4대 주임 돌란 신부 때 설립한 공소로, 각각 고흥군 동강면 대강리와 승주군 외서면 금성리에 있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벌교 본당”(광주대교구, 5권). 공소와 본당의 설립 경위, 1961년 성당 건립, 1968년 사목자 교체, 1982년 광주대교구 이관, 교세, 관할 구역,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2434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벌교”(광주대교구). 설립일 1957.09.20, 주보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중남부 지구.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1150&gubun=4
문서 정보
- 문서 크기
- 7,812 바이트
- 판 수
- 1
- 기여자
- 1명
- 만들어진 날
- 2026년 10월 20일 02:44
- 마지막 수정
- 2026년 10월 20일 02:44
- 본문 연결
- 0개
- 출처 링크
- 2개 · 제출 출처 있음
- 작성 상태
- 보완 권장
- 장소 ID
c8768611-53cf-4465-8773-164f99b8ff4d- 고정 주소
- https://missamap.com/ko/kr/gwangju-beolgyo-catholic-church/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벌교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20일 02:44. https://missamap.com/ko/kr/gwangju-beolgyo-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