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 성당
개요
유구성당은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석남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68년 12월 28일 공주(현 중동)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주보는 노동자 성 요셉이다. 관할 구역은 유구읍·신풍면·사곡면 일원이다.
역사
〔교우촌과 공소〕 디지털공주문화대전에 따르면 박해기에 유구성당 관할 구역에는 둠벙이(현 신풍면 조평리)·진밭(현 사곡면 신영리)·먹방이(현 신풍면 쌍대리)·관불(현 유구읍 녹천리)·만년동(현 유구읍 만천리)·용수골(현 사곡면 유룡리)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1866년 병인박해로 모두 와해되었고, 병인박해 이후 유구읍 명곡리 일대에 요골·서재·사기점골 교우촌이 새로 형성되었다. 유구성당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는 이들 교우촌은 1883년 이후 모두 공소로 설정되었고, 1897년 5월 8일 공주성당이 설립되면서 그 관할 아래로 들어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현 본당 관내에 1800년대 초부터 복음이 전래되어 수리치골·둠범이·사랑골·사기점골·요골 등의 공소가 설립되었고, 1958년 봄 현 본당 소재지에 유구 공소가 설정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4년 공주 본당 8대 주임 파일레(A. Pailler) 신부가 신자가 늘자 본당 설립에 대비해 현 본당 소재지의 부지(1,618평)를 매입했다. 1962년 공주 본당 9대 주임 퀴니(J.M. Cuny) 신부는 신자 122명의 유구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전쟁 이후 직조 공장들이 들어서며 지역 발전이 빨라지자 본당 설립의 필요성이 다시 커졌고, 공소 신자들은 교구와 교황청의 지원을 받아 파일레 신부가 마련한 부지에서 공사를 시작해 1968년 12월 20일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했다. 공소는 그해 12월 28일 유구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크랭캉(J. Crinquand)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며, 유구 본당은 공주 본당으로부터 유구면·신풍면·사곡면 지역을 인계받아 사기점골·요골·사랑골 공소 등이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은 유구공소를 현재 위치에 설립한 인물을 공주성당 8대 신부 파일러(Pailler)로, 1968년 12월 28일 유구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킨 인물을 9대 신부 퀴니(Cuny)로 적고, 초대 신부로 프랑스 선교사 크랭캉이 부임했다고 적는다.
〔초기의 발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크랭캉 신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로를 넓히고 농지를 정리했으며,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으로 35,000평의 임야를 매입해 본당에 기증했다. 이 임야에 교회 묘지를 조성했고 이후 부지를 추가 매입해 묘지를 확장해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1971년 8월 식당, 이듬해 6월 강당과 창고를 신축했다. 2대 주임 플라시에(A. Plassier) 신부는 수녀원을 신축하고 1978년 1월 거룩한 말씀의 회 분원을 마련했으며, 1979년 9월 회의실(10평)을 신축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3대 주임 백성수 신부는 재정 자립을 위해 노력했으며 1983년 1월 사제관을 증축하고 1985년 8월 새 수녀원(30평)을 지었다. 거룩한 말씀의 회가 철수하게 되어 1991년 3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5대 주임 최석영 신부는 1993년 4월 교리실을 증축했고, 6대 주임 정준섭 신부는 1995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본당 조경 및 개수 공사를 했으며 1997년 2월 전 신자를 대상으로 6개월 동안 기초 교리 강좌를 실시했다. 2001년 2월 8대 주임으로 부임한 손범규 신부는 ‘젊은 본당 만들기’를 사목 목표로 정하고 회합실용 컨테이너 3개 동을 설치했다.
〔교세와 관할〕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68년 633명, 1971년 700명, 1977년 732명, 1982년 765명, 1988년 748명, 1994년 907명, 2000년 716명이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은 2016년 현재 신자 수를 576명으로 적는다. 역대 주임은 초대 크랭캉(강진수) 요한(1968.12~1977.10), 2대 플라시에(박수범) 아우구스티노(1977.10~1982.9), 3대 백성수 시몬(1982.9~1986.8), 4대 이종린 요아킴(1986.8~1992.8), 5대 최석영 이냐시오(1992.8~1994.2), 6대 정준섭 요셉(1994.2~1999.1), 7대 풍세(G. Poncet) 질베르토(1999.1~2001.2), 8대 손범규 임마누엘(2001.2~)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관련 장소와 인물
- 요골공소: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유구성당 소속 공소이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에 따르면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신자들이 일군 교우촌에서 기원하며, 1883년 프랑스 선교사 두세(Doucet)가 설정한 최초의 공소 가운데 하나이고 1884년 이화진이 초대 공소회장으로 부임했다. 1897년 공주본당 초대 신부 기낭(Guinnand)이 이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으며, 1938년 제5대 구평서 회장 때 정기현에게서 명곡리 195번지 대지를 기증받아 공소 건물이 건립되었다. 구전회 신부(1947년 10월 28일 서품)를 비롯해 9명의 신부와 10여 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
- 공주 중동성당: 유구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기 전 속해 있던 모본당이다. 디지털공주문화대전은 1897년 5월 8일 공주성당이 설립되면서 유구 지역 공소들이 그 관할 아래로 들어갔다고 적는다.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유구 본당”(9권). 1968년 12월 28일 본당 승격, 주보, 관할 구역, 공소 시기와 본당 설립 과정, 발전과 변모,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857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공주문화대전 “유구성당”. 유구 지역 교우촌과 공소, 1897년 공주성당 관할, 1958년 유구공소 설립, 1968년 본당 승격, 2016년 신자 수.
https://www.grandculture.net/gongju/toc/GC01701685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공주문화대전 “요골공소”. 요골공소의 기원, 1883년 공소 설정, 1938년 공소 건물 건립, 사제·수도자 배출.
https://www.grandculture.net/gongju/toc/GC0170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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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유구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4:47. https://missamap.com/ko/kr/daejeon-yugu-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