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산 성당
개요
운산성당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74년 서산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설립되었고,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주보는 성 안드레아 사도이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현재의 서산 지역 공소 가운데 가장 먼저 성당으로 승격된 곳이라고 적는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박해가 끝나자 내포 지역에 다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해 1880년대 초에는 약 1천 명의 신자가 거주했다고 적는다. 1881년부터 이 지역을 담당한 두세(C.-E. Doucet) 신부는 공동체들을 방문한 뒤 각처에 공소를 설립했고, 1889년 당시 신자 수가 120명이던 운산면 용현리에 ‘강당리’ 공소를 설립했다. 충청도의 남쪽과 동쪽을 관할하던 퀴를리에(Curlier) 신부는 1894년 당시 신자 수 90명이던 운산면 용장리에 ‘미럭벌’ 공소를 신설했다. 미럭벌이라는 이름은 마을 중앙의 작은 동산에 미륵불이 있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미럭벌 공소가 설립된 해에 강당리 공소의 신자 수가 1892년의 228명에서 62명으로 급격히 줄어든 것으로 보아, 두 곳의 신자들이 처음에는 강당리에서 함께 공소 예절을 하다가 이때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미럭벌 공소의 신자 수는 점차 늘어 1917년에는 212명이 되었고 강당리 공소는 45명으로 줄었다. 이때까지 합덕 본당 소속이던 운산리 공소는 서산 본당이 설립되면서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19년 강당리 공소는 미럭벌 공소에 통합되었고, 1966년 60평 규모의 공소 강당이 신축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운산성당의 관할지에 속하는 강당리공소와 미럭벌공소의 신자 수가 19세기 말 공소로 설정될 당시 200여 명에 달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 1974년 11월 30일 운산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김기룡 신부가 부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설립 시기를 1974년 11월 20일로 적어 출처마다 날짜가 다르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운산성당이 조선 후기부터 이어진 교우촌의 신자를 돌보기 위해, 그리고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설명한다. 운산 지역에는 천주교회 유지재단 명의로 1958년 개교한 대철중학교가 있었고, 2008년 이전까지 운산성당의 주임 신부나 보좌 신부가 대철중학교의 교목을 겸직했다.
〔발전〕 김기룡 신부는 공소 강당을 성당으로 사용하며 본당의 기틀을 마련했고 1979년에는 신자 재교육과 회합에 쓰기 위한 교육 회관을 건립했다. 5대 주임 정지풍 신부 재임 중인 1986년 9월 14일 수녀원을 신축했고, 이듬해 12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 분원을 마련했다. 1987년 6월에는 본당 관할의 탑곡 공소 강당 공사를 시작해 8월에 완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현재의 성당〕 정지풍 신부는 신자가 늘어 미사 봉헌이 불편해지자 1990년 3월 3층 규모의 신축 성당(380평) 공사를 시작해 1992년 11월 4일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산문화대전). 1993년 12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가 철수한 뒤 1995년 2월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7대 주임 김홍천 신부는 1999년 11월 본당 설정 25주년 행사를 마련했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2008년 1월 23일 대철중학교에 신부가 따로 파견되어 운산성당과 학교의 운영이 분리되었다고 적는다.
〔사목과 현황〕 대사전에 따르면 8대 주임 한동성 신부는 관할 구역이 농촌 지역이고 주민 대부분이 연로한 점을 감안해 노인 교육과 신앙 지도에 역점을 두고 노인 대학과 한글 학교 운영을 추진했으며, 성서 교육과 복음 나누기를 활성화하고 ‘복음과 함께 기도 안에서’를 사목 지표로 삼았다. 평신도 단체로는 레지오 마리애와 봉사 활동 중심의 요셉회, 빈첸시오회, 성심회, 성모회, 대건회, 안드레아회 등이 있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오래된 교우촌과 공소가 많았으나 현재 탑곡공소 하나만 유지되고 있고 대부분의 공소는 폐쇄되었거나 성당으로 흡수되었다고 적는다. 관할 구역은 서산시 운산면과 음암면, 당진군 정미면 수당리와 대운산리 지역이며, 소속 신자는 2010년 말 기준 834명으로 관할지 인구 대비 14.2%이다. 별관의 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분원에는 2명의 수녀가 상주한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4년 485명, 1979년 576명, 1985년 626명, 1989년 840명, 1992년 1,086명, 1996년 756명, 2000년 570명이다. 관할 구역은 정미 수당리, 안호리, 여미리, 수당리, 용장리 1구, 미평, 갈산리, 수평리, 상성리, 고풍리 전 지역과 시장 일부 지역으로 기록되어 있고 관할 공소는 탑곡리 1개소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김기룡 사도 요한(1974.11~1976.2), 2대 김영교 베드로(1976.2~1977.2), 3대 송갑의 사도 요한(1977.2~1981.9), 4대 권태웅 안셀모(1981.9~1986.3), 5대 정지풍 아퀼레오(1986.3~1992.8), 6대 이준화 로베르토(1992.8~1997.1), 7대 김홍천 베드로(1997.1~2001.3), 8대 한동성 갈리스도(2001.3~)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건축과 공간
지상 3층 규모에 연건평 1,250㎡의 성당 및 교육관 시설을 갖추고 있다(디지털서산문화대전). 1992년 11월 4일 완공된 성당은 3층 규모(380평)로 1990년 3월에 공사를 시작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관련 장소와 인물
- 강당리 공소·미럭벌 공소: 1889년 용현리에 강당리 공소가, 1894년 용장리에 미럭벌 공소가 설립되었고 1919년 강당리 공소가 미럭벌 공소에 통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탑곡 공소: 운산성당이 관할하는 공소로, 1987년 8월 강당 공사가 완공되었으며 현재 유지되는 유일한 공소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산문화대전).
- 서산(동문) 본당: 운산리 공소가 설립과 함께 관할을 받게 된 본당이자 1974년 운산 본당이 분리된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산문화대전).
- 대철중학교: 천주교회 유지재단 명의로 1958년 개교한 학교로, 2008년 이전까지 운산성당 신부가 교목을 겸직했다(디지털서산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운산 본당”(9권). 1974년 11월 30일 서산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 강당리·미럭벌 공소, 성당 신축, 교세, 관할 구역,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783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서산문화대전 “운산성당”. 1974년 서산성당에서 분리 설립, 설립 목적과 대철중학교, 1992년 11월 4일 현 성당 완공,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seosan/toc/GC04101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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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운산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56. https://missamap.com/ko/kr/daejeon-unsa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