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서천성당은 충청남도 서천군 서천읍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36년 금사리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어 1943년 12월 장항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67년 12월 29일 다시 본당으로 설정되었으며, 주보는 예수 성심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서천 일대는 일찍부터 복음이 전파된 지역으로, 산막골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성 황석두(루가)와 김 요셉 회장 등이 거처했고, 공주 순교자인 박 요한 회장과 아들 박운서(바오로)도 서천 정수동 출신이었다. 이웃 비인 출신의 임 바오로가 공주에서, 김 펠릭스와 김 가브리엘·요셉 형제 등이 서울에서 순교했다. 이처럼 순교자가 나오면서 서천의 신앙 공동체는 일시 와해되었으나, 박해가 끝난 뒤 다른 지역 신자들이 이주해 오고 순교자 후손이 교회로 돌아오면서 여러 곳에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 가운데 1884년 공소로 설정된 독뫼(문산면 수암리)와 작은재(판교면 금덕리), 1890년 공소로 설정된 용아실(마서면 덕암리) 등이 유명했는데 이 공소들은 1897년 이래 공주 본당 소속이었다. 1901년 4월 27일 공주에서 부여 본당이 분리·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공베르(J. Gombert) 신부가 임명되면서, 서천 지역 공소들은 모두 부여 금사리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서천의 공소들은 일제 시대 초까지 유지되다가 신자들의 이주로 폐쇄되었고, 대신 서천읍의 신자가 늘면서 1934년 금사리 본당 관할 ‘서천 공소’가 설립되었으며 2년 뒤인 1936년 ‘서천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조인원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디지털서천문화대전은 서천공소가 1934년 5월 15일 설립되고 1936년 5월 본당으로 승격해 성당 주변의 본당 구역과 7개 공소를 관할했다고 적으며, 철도 부설로 예상되는 신자들의 이동과 역 소재지의 인구 집중에 대응하기 위해 서천읍 일대에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장항으로의 본당 이전과 재설정〕 2대 주임 김영식 신부는 장항이 교회 발전에 더 요지라고 판단해 그곳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려 노력했고, 1941년 부지 2,400평을 매입해 작은 건물을 신축했으나 이듬해 1월 강릉(현 임당동) 본당으로 전임되었다. 이후 1943년 12월 15일자로 장항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서천 본당은 그 관할 공소가 되었고, 성당 부지는 매각되었으며 사제관은 공소 건물로 쓰였다. 1955년 서천 공소 신자들이 공소 강당을 건립한 뒤 이듬해 라리보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당시 장항 본당 주임은 유봉운 신부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서천 공소 신자 수가 1950~1960년대에 꾸준히 늘자 신자들은 본당 승격을 추진했고, 1967년 8월 10일 사제관을 신축했다. 그 결과 그해 12월 29일자로 본당으로 다시 설정되어 조병기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천문화대전은 1967년 당시 서천성당의 신자 수가 1,352명으로 장항성당의 757명보다 월등히 많았으며, 장항성당이 해안으로 치우친 반면 서천성당은 이전의 유서 깊은 공소들을 아우르기에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고 설명한다.

〔1970년대 이후〕 5대 주임 윤인식 신부 때인 1976년 5월 23일 성모상을 축성했고 6월 9일 수녀원을 건립했다. 6대 주임 김기 신부 이후 성당 신축 계획을 세워 신자들의 노력으로 1984년 7월 2일 현재의 성당을 신축·봉헌했으며, 이에 앞서 1981년에는 사제관과 교리실(60평)이 완공되었다. 1985년 4월 20일 성당 복도를 확장하고 8월 20일 성당을 증축했으며 10월 15일 조경 공사를 했고, 1992년 6월 30일에는 교리실로 쓸 15평 조립식 건물(2층)을 건립했다. 1996년 이후 매년 관할 구역의 노인들을 위한 경로 잔치를 열고 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분리와 성지 선포〕 디지털서천문화대전에 따르면 서천성당은 비인과 서면의 공소들을 묶어 2011년 서면성당을 분리 설립했고, 2016년에는 마산·한산·화양 등을 한산성당으로 분리 승격시켰다. 2023년에는 대전교구를 통해 독뫼·작은재·산막골 등의 성지가 순례지로 선포되었다. 이 문서는 서천성당이 장항·서면·한산 등의 본당을 분리 설립시킨 서천 지역 본당들의 모본당이라고 평가한다.

〔건물과 현황〕 디지털서천문화대전은 현재의 서천성당 건물이 2006년 4월 9일 건축되었으며 연면적 1,781㎡의 철근 콘크리트조 3층 구조로 500석 규모의 집회장과 교리실을 갖추었다고 적는다(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4년 7월 2일 성당을 신축·봉헌했다고 적어 건축 시기를 달리 기록한다). 2022년 말 현재 신자는 872세대 1,706명이며 주임 사제 1명과 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전교 수녀 2명이 활동하고 있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68년 1,500명, 1973년 1,360명, 1978년 1,441명, 1982년 1,451명, 1987년 1,573명, 1991년 1,516명, 1994년 1,494명, 1996년 1,498명이다. 공소는 월산·한산·마산·수암·신농·비인·판교·도둔·부사·원두 등 10개소로 기록되어 있다. 역대 신부는 초대 조인원 빈첸시오(1936~1939), 2대 김영식 베드로(1939~1942.1), 3대 조병기 바오로(1967.12~1971.7), 4대 김기룡 요한(1971.7~1974.11), 5대 윤인식 바오로(1974.11~1980.9), 6대 김기 바오로(1980.9~1984.11), 7대 백승옥 이시도로(1984.11~1989.8), 8대 방윤석 베르나르도(1989.8~1992.3), 9대 쿠브레르(P. Coumeur, 고광의) 바오로(1992.3~1993.8), 10대 나기순 루도비코(1993.8~)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관련 장소와 인물

  • 장항 본당: 1943년 12월 15일 장항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서천 본당이 그 관할 공소가 되었던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천문화대전).
  • 금사리 본당: 서천 지역 공소들이 속했고 1936년 서천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독뫼(문산면 수암리)·작은재(판교면 금덕리)·산막골: 서천 지역의 옛 공소와 신앙 유적으로, 2023년 순례지로 선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서천문화대전).
  • 성 황석두(루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인물로, 서천 산막골에 거처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서면성당(2011 분리)·한산성당(2016 분리): 서천성당에서 분리 설립된 본당이다(디지털서천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서천 본당”. 서천 지역 공소 시대, 1936년 본당 설립, 장항 관할 공소와 1967년 재설정, 1984년 성당 신축,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190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서천문화대전 “서천성당”. 1934년 공소 설립과 1936년 본당 승격, 1967년 재설립, 2011·2016년 분리, 2023년 성지 선포, 2006년 건물과 2022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seocheon/toc/GC0950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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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7일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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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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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ssamap.com/ko/kr/daejeon-seocheon-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서천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2:08. https://missamap.com/ko/kr/daejeon-seocheo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