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당진성당은 충청남도 당진시 읍내동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합덕 본당에서 분리되어 1939년에 설립되었고, 초대 주임은 프로망투 신부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주보는 모든 성인의 모후이다. 2003년 기지시 성당, 2011년 수청 성당을 분가시켰고 2016년 11월 19일 새 성당의 봉헌식을 가졌다.

역사

〔설립 배경〕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 따르면 당진에 새 성당을 설립하는 방안은 1930년대 중반부터 구상되었다. 당진의 모(母) 성당인 합덕 성당은 1927년 예산 성당을 분가해 주었음에도 교세가 빠르게 늘어 새로운 성당을 분가할 필요를 느꼈고, 군청 소재지라는 이유로 당진이 새 성당의 입지로 선택되었다. 인근 군청 소재지인 서산과 예산에는 오래전에 읍내에 성당이 자리했으나 당진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본당 설립 전 당진 지역에 당시 서울교구 소속 합덕(현 구합덕) 본당 관할 공소가 10여 개 있었다고 적는다.

합덕 성당은 1938년부터 새 성당 분가를 준비했다. 현재 당진성당 자리에는 당진초등학교가 있었는데 1938년 4월 다른 곳으로 교사를 이전했고, 초등학교 교사로 쓰이던 2칸짜리 건물을 성당으로 쓸 수 있었으며 당진 읍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이어서 성당을 세우기에 적합했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본당 설립〕 1939년 합덕 본당에서 분리되어 프로망투(E. Fromentoux)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39년 5월 사제 피정이 끝난 뒤 본당으로 분리되었다고 적고,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설립일을 초대 주임 신부가 임명된 날인 1939년 4월 30일로 적는다. 대사전에 따르면 당진읍 읍내리 507-2번지의 옛 당진국민학교 부지와 교사 2동을 매입해 전교 사업을 전개했다.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설립 초기 관할 구역이 당진읍, 석문면, 고대면, 송산면, 송악면 일부, 순성면 일부, 면천면 일부와 서산시 운산면까지 포함했으며, 이는 1957년 행정 개편 뒤 그해 11월 당진성당과 서산 성당 간의 관할 구역이 조정될 때까지 이어졌다고 적는다. 설립 초기에는 성당을 지을 여건이 못 되어 초등학교로 쓰이던 2칸짜리 건물의 내부를 고쳐 사용했다.

〔6·25전쟁과 사회사업〕 한국가톨릭대사전은 6·25전쟁 때 4대 주임 코르데스(M. Cordesse) 신부가 납치·살해되었다고 적는다. 5대 주임 유인성 신부는 1952년 4월 3일 전쟁 고아를 수용하는 고아원(소화 보육원)을 설립했고, 이듬해 10월 15일 읍내리 570-2번지의 목조 함석집(70평)을 매입해 주민 환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주고자 소화의원을 설립했다.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 따르면 소화 보육원의 처음 이름은 합덕 육아원 분원이었으며, 합덕 성당이 오래전부터 운영하던 고아원이 한국전쟁으로 늘어난 아이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분원을 낸 것이고 1953년에는 원아가 48명이었다.

1956년 9월 24일 감리교에서 설립했던 운산고등공민학교를 인수해 교사를 신축하고 1958년 3월 6일 대철중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아 개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보육원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의 학업 문제가 대두된 가운데 운산의 학교를 천주교가 인수하도록 제안이 들어와 대전교구가 받아들여 1958년 3월 6일 서산시 운산면에 대철중학교를 설립했고, 입학한 보육원 아이들은 학교 근처에 마련된 집에서 수녀와 함께 기거하며 공부했다고 적는다. 소화유치원은 대사전이 1957년 6월 15일 개원으로,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이 1956년 8월 14일 인가를 받아 당진성당 구내에 개원한 것으로 적어 출처마다 다르다. 1958년 6월 대전교구가 설정되면서 소속이 서울교구에서 대전교구로 바뀌었다(대사전).

〔성모의원〕 소화의원은 1973년 10월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의 도움으로 건물을 신축하고 당진 성모병원으로 이름을 바꿔 1975년 9월 축성·개원했으며, 1992년 11월 28일 성모의원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성모병원이 1975년 완전히 독립할 때까지 당진성당 주임 신부가 병원장을 겸임하며 운영했다고 적는다.

〔1960년대의 성당 신축〕 1966년 1월 18일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고, 같은 해 9월 옛 성당을 헐고 성당을 수녀원 안으로 임시 이전한 뒤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했다. 자금 부족으로 공사가 중지되기도 했으나 변갑선 신부가 다른 본당을 주일마다 순회하고 캐나다·미국 등지에서도 건축 기금을 모금해 공사를 진척시켰다. 1967년 12월 10일 미비한 시설 속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고, 1968년 4월 30일 황민성 주교의 주례로 건평 110평 규모의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 따르면 1964년 신자가 2,615명에 달해 초등학교 교사를 개축한 옛 기와집 성당이 너무 좁아졌고, 1960년대 초부터 새 교회 건립 움직임이 있었으나 성과가 없다가 1965년 6월 새 신부가 부임하면서 7월부터 모금이 본격화되었다. 공사는 1967년 6월에 시작되었고 총 공사비 640만 원이 들었다.

〔1970년대 이후〕 성가 수녀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를 거쳐 1976년 7월 거룩한 말씀의 회 분원이 설치되어 사목에 협력했고, 1985년 3월부터는 당진 성모의원이 거룩한 말씀의 회로 이관되었다. 1985년 3월 10일 강당·온돌방·주방 등을 갖춘 교육 회관(130평)을 완공해 교육 장소와 지역 사회를 위한 강연회장·예식장·피로연장 등으로 개방했다. 1986년 7월 본당 사무실을 신축했고 8월에 유치원을 증축했으며, 1988년 12월 성당 증축에 이어 1990년 12월 사제관 및 교육 회관을 증축했다. 20개소에 달하는 공소를 관할하는 본당은 1982년부터 주일마다 전교사 양성 모임을 열어 공소 지도자 부족을 해결하고 공소 공동체의 활성화를 도모했으며, 공소 자립을 위해 공소 교무금도 공소로 환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분가〕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1979년 삽교천 방조제가 완공되어 교통의 흐름이 바뀌고 산업화가 진행되며 당진 지역 인구와 당진성당 신자가 비약적으로 늘었다고 적는다. 2000년대에 신자가 4천 명을 넘자 2003년 기지시 성당을 분가해 기지시·송산·방계·부곡·복운·당산 지역을 관할하게 했는데, 분가 후 당진성당 신자는 3,594명, 기지시 성당은 754명이었다. 2009년에는 설립 70주년 경축 행사를 가졌고 『천주교 당진본당사』가 발간되었다. 2011년에는 수청동에 또 하나의 성당을 분가해 주었으며 신설된 수청 성당의 신자는 1,154명이었다. 분가 후 당진성당은 읍내동 전체와 원당동 일부를 관할하고 2012년 기준 신자 수는 4,198명이다.

〔새 성당〕 디지털당진문화대전에 따르면 50년 전에 지은 성당이 낡아 안전상의 문제가 대두되고 신자에 비해 협소해지자 기존 성당을 허물고 2015년 3월 7일 두 번째 성당 건립 기공식을 가졌다. 9개월의 공사 끝에 같은 해 12월 24일 새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고, 이듬해 2016년 11월 19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와 함께 봉헌식을 가졌다. 같은 시기에 사제관과 수녀원도 2층으로 건축했다.

〔현황〕 당진성당은 대전교구 당진 지구의 지구장 성당이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2015년 현재 읍내동 전체와 원당동 일부를 관할하고 신자 수는 4,198명이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56년 1,995명, 1960년 2,761명, 1966년 2,674명, 1970년 2,300명, 1975년 2,275명, 1980년 2,467명, 1985년 2,437명, 1993년 3,248명이다. 대사전에 기록된 관할 구역은 당진군 전역과 송악면·송산면·고대면·석문면·대호지면·정미면·면천면·순성면이고, 관할 공소는 복운·부곡·방계·송산·당산·금암·항곡·옥현·고산·삼봉·초락도·사성·마중·천의·도산·산성·봉성·사기소·성북·구룡 등 20개소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프로망투 에밀리오(1939.5~1940), 2대 박원영 프란치스코(1940~1946), 3대 이복영 요셉(1946~1948.8), 4대 코르데스 마리오(1948.8~1950.9), 5대 유인성 프란치스코(1952~1967.12), 6대 변갑선 치릴로(1967.12~1968.7), 7대 김순호 프란치스코(1968.7~1969.12), 8대 구자오 베네딕도(1969.12~1971.7), 9대 조병기 바오로(1971.7~1976.9), 10대 김병재 바오로(1976.9~1981.1), 11대 장영식 토마(1981.1~1986.4), 12대 김동억 바오로(1986.4~1988.2), 13대 김기 바오로(1988.2~1992.8), 14대 정호영 로베르토(1992.8~)이다(대사전 작성 시점 기준).

건축과 공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새 성당의 동쪽에 2002년 완공한 대건관이 있어 신자들의 모임과 교육 공간으로 쓰이며 같은 건물 안에서 1956년 설립된 소화유치원이 운영되고 있다고 적는다. 성당 남쪽의 성심관에는 주방 시설이 갖춰져 있어 행사와 모임을 가질 수 있다.

성당 구내에는 1982년 당진시 보호수로 지정된 800년 된 은행나무와 150년 된 느티나무가 있으며,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이곳이 당진의 옛 관청이 있던 역사적 장소임을 말해 준다고 적는다.

1968년 4월 30일 봉헌된 옛 성당은 건평 110평 규모였고, 2015년 안전상의 이유로 철거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

관련 장소와 인물

  • 합덕 성당(구합덕 본당): 당진 지역의 모 성당으로, 1927년 예산 성당을, 1939년 당진 성당을 분가시켰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
  • 기지시 성당·수청 성당: 각각 2003년과 2011년에 당진성당에서 분가한 성당이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 대철중학교: 1958년 3월 6일 서산시 운산면에 개교한 학교로, 당진성당 소화 보육원과 관련을 맺고 설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
  • 당진 성모의원(성모병원): 당진성당의 소화의원에서 비롯된 의료기관으로, 당진성당 바로 아래에 자리한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당진문화대전).
  • 프로망투(E. Fromentoux) 신부: 1939년 당진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 코르데스(M. Cordesse) 신부는 4대 주임으로 6·25전쟁 때 납치·살해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당진 본당”(3권). 1939년 5월 합덕 본당에서 분리 설립, 6·25전쟁과 사회사업, 1968년 성당 봉헌, 교육 회관, 교세, 관할 공소,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234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당진문화대전 “당진성당”. 1939년 4월 30일 설립, 설립 배경, 보육원·병원·학교, 2003년·2011년 분가, 2015~2016년 새 성당 건립,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dangjin/toc/GC06400957
문서 정보
문서 크기
12,303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7일 03:02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3:02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2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a1a5bd36-9c72-45d5-8190-1707f498af1b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daejeon-dangjin-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당진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3:02. https://missamap.com/ko/kr/daejeon-dangji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