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대산성당은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대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 소속 성당이다. 1967년 서산 동문동 성당 소속의 대산 공소로 설립되었다가 1989년 8월 19일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다. 대산읍과 인접 지역에 석유화학 공업 단지가 들어서며 신자가 늘어난 것이 설립 배경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67년 5월 15일 서산 동문 본당 소속 대산 공소를 중심으로 이 지역 신앙 공동체가 설립되었으며 당시 동문 본당 보좌 이계창 신부의 지도로 대산중학교에서 예비자 교리 등을 실시했다고 적는다. 1968년 5월 30일 당시 대산중학교 교장으로 있던 초대 공소 회장 김기풍(베드로)의 노력으로 지곡면에 거주하는 김수연으로부터 부지 1,200평을 기증받아 30평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을 신축하고 학교 강당에서 이곳으로 공소를 이전했다. 교구에서는 대산 공소 강당 신축 기념으로 대산중학교에 20평 규모의 과학실을 신축해 기증했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도 1967년 5월 15일 서산 동문동 성당 소속의 대산공소로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20여 년 동안 공소로 유지되던 이 지역이 임해 공업 지역으로 발전하며 인구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자 동문 본당은 대산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키기로 계획했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대산 지역에 석유 화학 전문 공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유입 인구가 늘어 천주교 신자도 증가했고, 1967년에 이미 공소가 설정되어 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증가하는 신자들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천주교 대전교구가 서산 동문동 성당 공소였던 대산공소를 대산성당으로 분리 승격시켰다고 적는다. 대산 공소는 1989년 8월 19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두 출처 공통),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그해 12월 첫 영세자 12명을 배출한 데 이어 꾸준히 교세가 증가했다고 적는다. 초대 주임은 이광근(베드로) 신부(1989.8~1994.8), 2대 주임은 고영환(타데오) 신부(1994.8~, 대사전 편찬 당시 재임 중)이다.

〔초기 시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에 따르면 설립 초창기에는 약 100㎡ 규모의 공소 강당을 성당으로 이용하다가 1991년 12월 20일 약 300㎡ 규모의 조립식 성당을 신축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91년 12월 20일 90평 규모의 조립식 성당 신축으로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어 1992년 5월 주일학교 6개 교실과 신협 사무실, 창고 등을 갖춘 60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 2동을 신축했고 1993년 5월에는 98평 규모의 사제관을 신축했다고 적는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1993년에 2층 구조의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했다고 적는다.

〔신협과 신자 단체〕 1993년 2월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해 신자 간의 경제적 협력을 도모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같은 출처에 따르면 현대정유와 현대석유화학 내의 직장 선교 및 친목 도모를 추구하는 해성회·교우회를 비롯해 레지오 마리애·연령회·헌화회 등 18개 단체가 조직되어 활동했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지역 내에 공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까닭에 직장교우회가 많이 조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LG교우회·호남교우회·해성회 등 각 직장에 조직된 신자 단체를 중심으로 사회봉사와 친목 도모 활동을 전개한다고 적는다.

〔현재의 성당 건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전 신자를 회원으로 하는 성전 건립위원회가 조직되어 1996년 완공 예정으로 성당 건립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적는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1997년 2월 27일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분원이 설립되었고, 1998년 8월 19일 새 성전 기공식을 했으며 1999년 10월 4일 대산읍 대산리 149-141번지에 현재의 성당을 완공했다고 적는다.

〔관할과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설립 당시 관할 구역을 대산면과 지곡면 일대로 적고,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대산읍을 중심으로 지곡면 등 서산의 해안 지역을 관할한다고 적으며 대산성당 항목에서는 관할 구역을 서산시 대산읍 전 지역으로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89년 491명, 1992년 1,058명, 1994년 1,205명이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소속 신자는 1,408명으로 관할지 인구 대비 5.8%이며 신부 1명과 수녀 2명이 있다.

〔평가〕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대산성당이 공업 단지의 조성과 함께 성당으로 승격·설립되었고, 기존 신자가 적은 곳임에도 인구 유입이 예상되는 지역에 성당을 설립하고 직장 교우회와 같은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사목을 한 점이 박해와 교우촌을 배경으로 설립된 이전의 서산 지역 천주교와는 색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서산 동문동 성당: 대산 공소가 소속되어 있던 모본당이다. 디지털서산문화대전은 동문동 성당의 신자가 늘면서 소속 공소들이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다고 설명하며 1964년 8월 4일 태안성당, 1974년 11월 20일 운산(공소→본당), 1985년 4월 10일 해미성당, 1987년 8월 17일 석림동성당, 1989년 8월 19일 대산성당, 2004년 1월 8일 예천동성당이 분리·설립된 것으로 적는다.
  • 대산중학교: 1967년 대산 공소 설립 후 예비자 교리가 이루어진 곳이며, 초대 공소 회장 김기풍(베드로)이 당시 교장이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서산 예천동 성당: 2004년 1월 8일 서산 동문동 성당과 석림동 성당에서 마지막으로 분리된 성당이다(디지털서산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대산 본당”(3권). 1989년 8월 19일 동문 본당에서 분리·설립, 공소 시대, 본당 승격, 초기 시설, 신협과 신자 단체,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274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서산문화대전 “대산성당”. 설립 배경, 공소와 본당 승격, 1999년 10월 4일 새 성당 완공, 직장 교우회, 관할 구역과 교세.
    https://www.grandculture.net/seosan/toc/GC04101280
  3.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서산문화대전 “성당”. 서산 지역 성당 개관, 대산성당의 관할과 1999년 10월 4일 준공, 동문동 성당에서 분리된 성당들.
    https://www.grandculture.net/seosan/toc/GC04101296
  4.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서산문화대전 “천주교”. 서산 동문동 성당에서 1964년 8월 4일 태안성당이 분리되고 1974년 11월 20일 운산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된 경위.
    https://www.grandculture.net/seosan/toc/GC04100046
문서 정보
문서 크기
7,775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7일 03:44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3:44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4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81ce160d-eb3a-4aaa-a298-46d80ace084e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daejeon-daesan-catholic-church/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대산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3:44. https://missamap.com/ko/kr/daejeon-daesa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