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왜관성당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왜관 공소가 가실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된 이후 구미·성주·군위·칠곡·신동·약목·석전·인동 본당을 분가시켰으며, 1966년에 착공해 1967년에 봉헌한 현재의 성당 건물은 2018년 국가등록문화유산(당시 국가등록문화재 제727호)으로 지정되었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왜관 지역에 1908년경 금산동에서 이문(베난시오)이 이주해 오면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자가 생겼고, 이후 김치견(필립보, 1910년 이주)·이만원(요한, 1917년 이주)·정재문(안드레아, 1920년 이주)·서석배(프란치스코, 1921년 이주)의 가족이 이주하면서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적는다. 당시 가실본당 관할이던 왜관 공소는 1920년경 김치견의 집을 공소로 쓰다가 1923년 하포의 정재문 본가(초가 3칸)를 공소로 쓰면서 정식 공소가 되었다. 공소 회장을 맡은 정재문은 1924년 상포에 있던 자기 소유의 대지에 공소 건물을 짓고 밤에는 야학을 열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칠곡문화대전 공통).

〔본당 승격〕 정재문 회장은 왜관 공소를 본당으로 발전시킬 계획으로 1927년 왜관동 322번지에 1,700평의 대지를 매입했고, 1928년 2월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해 11월에 90평 규모의 성당을 준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가실본당의 투르뇌(Tourneux, 여동선) 신부는 공사비 일부를 부담하고 공사 현장을 자주 찾아 직접 감독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1928년 8월 청년회, 10월 성가대가 조직되었다. 본당 설립 시기는 출처마다 다르게 적는다. 왜관성당 본당연혁은 1928년 2월 가실본당 소속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고 성당 건축 공사에 착공했으며 초대 주임이 여 빅톨 신부라고 적고,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1928년 5월 가실본당 관할의 왜관공소가 성당으로 승격·분리되어 초대 여동선 신부가 가실성당과 겸임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29년 5월경 분리·설립되어 카다스(강달순)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고 적으면서, 왜관본당에서는 1928년에 가실본당에서 분리되었고 가실본당의 투르뇌 신부가 왜관본당의 초대 주임을 겸임한 것으로 본다고 덧붙인다.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에는 설립일자가 1928년 4월 30일로 올라 있다.

〔성당 봉헌과 초기 활동〕 1932년 11월 3일 왜관 신축 성당의 축성(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왜관성당 본당연혁은 안 필로리아노 주교가 준공 축성했고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라고 적으며, 한국가톨릭대사전과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드망즈 주교가 봉헌식을 집전했다고 적는다. 본당 신부 부임과 함께 1929년 사제관이 신축되었고, 1933년 수녀원과 시료소 건물이 신축되었으며, 1935년 유치원 과정인 ‘천신 유년부’가 설치되었다. 1936년 4월에는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소녀들을 위해 ‘소화여자학원’이 개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연혁에 따르면 1936년 4월 10일 성 바오로 수녀원 분원(초대 분원장 하 데레사 수녀)이 설립되고 같은 해 5월 15일 소화여자학원이 개원했다. 이 시기에 예수성심회·복자 안드레아 청년회·성모부인회·데레사 소녀회 등 신심 단체가 만들어졌고, 1939년 5월 구미 지역에 공소가 설치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연혁은 1942년 5월 30일 본당 출신 첫 사제 정행만(프란치스코) 신부가 본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고 적는다.

〔일제강점기 말과 해방 이후〕 1945년 4월 일제에 의해 주임 신부가 강제 연금되었다. 본당연혁은 4월 3일 5대 주임 한 유리오 신부가 남산본당에 강제 연금되었다고 적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4대 주임 베르트랑(Bertrand, 한) 율리오 신부가 연금되었다고 적는다. 광복 이후 1945년 12월 9일 순심 여자 초급중학교가 설립되었고(본당연혁),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46년 1월 등사판 주보를 발행하고 5월에 순심여자초급중학교 설립 인가를 받았다고 적는다. 1947년 4월 ‘천신 유년부’를 승격시켜 순심유치원을 개원했다. 1950년에는 정행돈(미카엘)이 교회 묘지를 위해 창마 임야 7천여 평을 헌납했고(본당연혁),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에 따라 같은 해 11월 ‘창마 교회 묘지’가 조성되었다고 적는다. 본당연혁은 1950년 3월 19일 상주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설립 이래 분리한 본당에 성주본당(1950.3)을 든다.

〔6·25전쟁〕 왜관성당 본당연혁에 따르면 1950년 9월 23일 3대 이로벨도 신부와 4대 노베르도 신부가 공산군에 피납되어 순교했고, 같은 해 12월 18일 2대 강요셉 신부가 공산군에 피납되어 북한 하장리에서 72세로 순교했다. 1951년 6월에는 전화를 입은 성당과 사제관의 수리 공사를 마쳤고, 같은 달 9대 주임 이기수 신부의 사제서품 은경축 행사가 열렸다. 1952년 3월 30일 순심고등학교의 설립이 인가되었다(10대 노규채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정착과 공소·본당 분가〕 1952년 6월 성 베네딕도수도원이 왜관에 정착했고, 이때부터 왜관본당과 가실본당은 베네딕도회의 관할로 위촉되어 본당 주임을 베네딕도회 신부들이 맡게 되었으며 왜관본당은 왜관 감목대리구의 주교좌 성당이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연혁은 1952년 10월 선산공소가 설치되고, 1954년 한티공소가 대구 비산동본당에서 왜관본당 관할로 이양되었다고 적는다(한국가톨릭대사전은 한티공소 이관을 1954년 12월로 적고, 용대·금구 공소를 1953년 5월 이관한 것으로 적는다). 1953년 5월 24일에는 대구교구장 최덕홍 주교의 집전으로 사제 서품식이 거행되어 김영근(베다)·김성도(모이세)·이경우(가벨) 신부가 서품되었다. 1955년 9월 삼청동에 나환우를 위한 정착지(베타니아원)를 마련했다. 1956년 1월 구미공소가 본당으로, 같은 해 12월 8일 군위공소가 본당으로 분리 승격되었으며, 본당연혁은 1957년 4월 9일 칠곡공소가 본당으로 분리 승격되었다고 적는다(한국가톨릭대사전은 칠곡본당 분리를 1959년 4월로 적는다). 1957년 1월 13일 대구대교구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종도의 모후 쁘레시디움)가 설립되었고 8월 2일 꾸리아가 설립되었다. 1958년 5월 25일 연화·웃전 공소를 병합해 신동에 강당을 건축했고, 1959년 12월 6일 신동성당과 삼청동 베타니아원 성당의 준공 축성식이 열렸다. 1961년 8월 23일 순심중학교가 성 베네딕도 수도회 재단에 이양되었다.

〔새 성당 신축〕 1965년 말 신자 수가 5,000명을 넘자 새 성당 신축이 논의되었고(한국가톨릭대사전), 1965년 사순절부터는 우리말로 미사를 봉헌했다. 본당연혁은 1966년 12월 23일 12대 장열마노(장휘) 신부 때 새 성당 신축공사가 준공되었고 1967년 5월 17일 새 성당의 축성 낙성식을 가졌으며 이때 주보성인이 ‘천주성령’이 되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66년 12월 현재의 위치에 새 성당을 신축해 12월 24일 본당을 이전했고, 1967년 5월 천주성령에게 봉헌된 새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했다고 적는다. 1967년 4월에는 왜관신용협동조합 창립총회가 열렸고 본당 회보가 창간되었다. 새 성당을 지은 뒤 1967년 10월 28일 신동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다(본당연혁). 디지털칠곡문화대전에 따르면 왜관성당 관할에서 1968년 2월 1일 신동성당, 1973년 11월 약목성당이 분리·독립했고, 1965년 신자 수가 5천 명을 돌파하자 왜관읍 석전리에 석전성당을 신설·분리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석전본당(1978.7)과 인동본당(1979.1)도 왜관본당에서 분리되었다고 적는다.

〔1970년대 이후〕 1970년 9월 아동 주일학교가 발족했고, 1973년 10월 성모상 제막식이 있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연혁에 따르면 1972년 4월 1일 토요 특전미사를 실시했고, 1977년 7월 11일 신나무골 성지 기념비를 건립했으며, 1978년 9월 20일 《왜관천주교회 50년사》(《왜관 반세기》)를 발간하고 9월 24일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행사를 열었다. 1981년 12월 25일 본당 자체 주보를 626호로 종료하고 대구대교구 공동 주보를 채택했다. 1984년 7월 8일 순교자 이선이 엘리사벳의 유해를 관곡에서 신나무골로 이장했다. 1986년 11월 30일 수녀원 신축 공사가 준공되었으며, 왜관감목대리구가 해체되어(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6년 3월 1일로 적는다) 본당은 대구대교구 직할이 되었다(본당연혁은 1987년 1월 1일 편입으로 적는다). 1997년 10월 1일 교구 편제가 6지구에서 3지구로 바뀌었고, 2001년 9월 16일 본당 홈페이지를 개설했으며, 2001년 12월 25일 교육관 신축 축성식을 했다. 2008년 5월 11일 본당 설립 80주년 행사, 2013년 5월 19일 85주년 본당의 날 행사가 열렸다(본당연혁).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29년 282명, 1940년 1,190명, 1950년 1,009명, 1960년 3,352명, 1965년 5,086명, 1980년 2,745명, 2000년 3,907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카다스(Cadars, 강달순) 요셉(1929.5~1931.6), 2대 리샤르(Richard, 이동헌) 로베르토, 3대 를뢰(Leleu, 노) 베드로, 4대 베르트랑(Bertrand, 한) 율리오, 5대 이명우 야고보, 6대 김영제 요한 등으로 이어져 2001년 9월 부임한 19대 최연환 이시도로까지 적혀 있다(대사전의 대수는 투르뇌 신부를 초대로 세는 본당연혁의 대수와 다르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2010년 2월 5일 제22대 고건상(멜키올) 신부가 부임했고 신자 수는 약 3,200명, 삼청공소를 관할한다고 적는다. 본당소개는 2015년 본당 설립 86주년을 기준으로 본당이 18명의 성직자와 28명의 수도자를 배출했다고 적는다.

건축과 공간

현재의 왜관성당은 알빈(Alwin) 신부가 설계했다. 왜관성당 본당소개에 따르면 이 성당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독일인 신부 알빈(1904~1978)이 설계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정신인 ‘평신도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가 반영되어 있다. 외관 형태보다 전례 기능에 따른 공간 배열을 우선해 회중석을 제대와의 길이보다 가로 폭을 더 넓게 배치했고, 감실도 제단에서 완전히 분리해 설치했다. 본당소개는 이런 양식이 역사적인 양식과 바실리카식 공간 구성을 따르는 보통의 성당 구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에 따르면 제12대 장휘(Elmar Lang) 신부 때 성당과 사제관, 각종 회의실, 유치원을 망라한 약 1,500㎡의 단일 건물이 1966년 4월에 착공되어 7개월 만인 11월에 완공되었다. 평면은 타원형을 기본으로 제단부와 현관부를 부가한 형태이고, 일반 본당으로는 드물게 2층에 성당이 있다. 국가유산포털에는 지상 2층 1동, 건축면적 731.31㎡, 연면적 1,372.54㎡, 1960년대 건립, 지정(등록)일 2018년 8월 6일로 올라 있으며,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2018년 8월 6일 국가등록문화재 제7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으며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고 적는다.

1928년에 지은 옛 성당 건물은 현재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안에 있으며 ‘칠곡 구 왜관성당’으로 2025년 국가등록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건립 1928년, 지정 2025년, 1동 487.45㎡).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유산해설문은 이 건물을 준 고딕식의 붉은 벽돌 건물로 설명하며, 가실성당을 지은 여 빅토르(여동선) 신부가 설계와 공사 감독을 맡고 한국인과 중국인 벽돌 기술자가 공사를 담당했다고 적는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이 성당의 건축 양식을 신고딕 양식을 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설계자를 프랑스인 박도행 신부로 적는다. 6·25전쟁 때는 벽과 천장에 총탄 구멍이 나고 포탄이 마루와 시멘트 바닥을 뚫고 지하실에서 폭발하는 등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벨기에 공병 부대 등의 도움으로 원상회복되었다. 성 베네딕도회는 1955년 수도원 본관을 새로 짓기 전까지 이 건물을 수도원의 주된 공간으로 썼고, 1966년 성당이 현재 자리로 옮겨 간 뒤에는 주요 행사용 강당으로 쓰고 있다(문화유산해설문).

관련 장소와 인물

  • 가실성당(낙산): 왜관 공소가 속해 있다가 본당으로 분리된 모본당이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가실본당을 1924년 건립된 경상북도 최초의 천주교 본당으로 설명하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29년 5월 가실(현 낙산)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고 적는다.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952년 6월 왜관에 정착했으며, 디지털칠곡문화대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1952년 7월 6일 함경도 덕원수도원과 중국 연길수도원의 수도자들이 다시 모여 설립했다고 적는다. 구 왜관성당 건물은 이 수도원 안에 있다.
  • 분가한 본당: 성주(1950.3)·구미(1956)·군위(1956)·칠곡(대사전 기준 1959.4)·신동(1967.10)·약목(1973.11)·석전(1978.7)·인동(1979.1) 본당(한국가톨릭대사전).
  • 신나무골 성지·한티 성지: 칠곡 지역의 천주교 유적지로, 한티공소는 1954년 왜관본당 관할로 이양되었고 신나무골에는 1977년 성지 기념비가 건립되었다(본당연혁). 한국학중앙연구원 문화유산해설문은 초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지천 신나무골, 동명 한티, 왜관 장자골 등에 숨어 살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고 적는다.
  • 여동선(Victor Louis Tourneux) 신부: 가실본당 주임으로 왜관 성당 신축 공사비 일부를 부담하고 공사를 감독했으며, 디지털칠곡문화대전과 본당연혁은 왜관본당의 초대 신부로 적는다.
  • 정재문(안드레아): 왜관 공소의 초대 회장으로 공소 건물을 짓고 본당 설립을 위해 대지를 매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칠곡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천주교 왜관성당, 본당연혁. 1928~2014년 연혁: 본당 승격, 1932년 성당 축성, 6·25전쟁 때 사제 순교, 분가 과정, 1967년 새 성당 축성, 창립 기념행사.
    https://www.wgc.or.kr/history.php
  2. 천주교 왜관성당, 본당소개. 1928년 승격, 주보성인(루르드의 성모, 1967년 이후 천주성령), 알빈 신부 설계와 전례 중심 공간 배열.
    https://www.wgc.or.kr/welcome.php
  3.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칠곡문화대전 “칠곡 왜관성당”. 공소·본당 설립, 1932년 봉헌, 1966년 신축 성당, 분가, 문화재 지정 경과,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440
  4. 한국가톨릭대사전, “왜관 본당”(9권). 1929년 분리 설립 서술, 지역 신자 이주, 역대 신부, 교세 통계, 분가 본당.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677
  5.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칠곡 왜관성당”.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등록)일 2018.08.06, 건축면적과 연면적.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79%2C07270000%2C37
  6.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칠곡 구 왜관성당”. 1928년 건립, 2025년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정.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4412502130001&ctptUid=13983497825458047355
  7. 한국학중앙연구원, 헤리티지위키 “칠곡 구 왜관성당”. 준 고딕식 붉은 벽돌 건물, 설계·감독, 6·25전쟁 피해와 복구, 수도원 초기 사용.
    https://dh.aks.ac.kr/~heritage/wiki/index.php/%EC%B9%A0%EA%B3%A1_%EA%B5%AC_%EC%99%9C%EA%B4%80%EC%84%B1%EB%8B%B9
  8.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칠곡문화대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952년 7월 6일 덕원수도원·연길수도원 수도자들이 왜관수도원을 설립한 경위.
    https://www.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435
  9.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왜관 성당”. 설립일자 1928년 4월 30일, 주보성인 천주의 성령.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102&premenu=c1&srl=church_search&y_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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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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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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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왜관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4:49. https://missamap.com/ko/kr/daegu-waegwa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