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 성당
개요
삼덕성당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33년 10월 18일 일본인 신자들의 사목을 위해 삼립정성당(삼립정 본당)으로 설립되었으며, 광복 후 지역 주민을 위한 본당으로 전환되어 삼덕동 본당(삼덕천주교회)으로 바뀌었다. 2008년 10월 1일 이름을 삼덕젊은이성당으로 바꾸었다. 주보성인은 성녀 소화 데레사이고 초대 주임은 앙상(힐라리오) 신부이다.
역사
〔일본인 사목의 시작〕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10년 한일합병으로 일본인 신자들이 대구 대목구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살게 되자 드망즈(F. Demange) 주교는 일본 나가사키 교구와 도쿄 교구에서 22년간 사목한 경험이 있는 페랑(F. Ferrand) 신부를 초청해 일본인 전담 사제로 임명했다. 페랑 신부는 우선 부산 대청동에 거처를 정하고 1913년 봄부터 각지를 순회하며 사목했고, 대청동 2가 15번지의 부지 136평을 매입해 1914년 6월 18일 사제관을 건립했다. 1916년 2월 21일 대구에도 일본인 신자들을 위한 집회소를 마련하기로 결정해 3월 5일 대구(현 계산동) 본당 인근에 목조 가옥을 신축하고 일본인 전교 회장의 사택으로 썼다. 1920년에는 부산 대청동의 건물과 대지를 팔고 부민동에 새 집회소를 마련해 전교 회장에게 맡긴 뒤 4월 30일 거처를 대구로 옮겼다. 페랑 신부가 1930년 10월 5일 사망하자 이듬해 3월 3일 하코다테 교구에서 28년간 사목한 앙상 신부가 후임으로 임명되었다.
〔삼립정 본당 설립〕 대사전은 대구 대목구가 일본인 본당을 설립한다는 계획 아래 1932년경 삼립정 64번지에 500평의 부지를 마련했고, 성당 신축 공사를 위임받은 앙상 신부가 1933년 6월 11일 성당을 완공했으며 그해 10월 18일자로 삼립정 본당이 설립되고 앙상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임명되었다고 적는다. 삼립정 본당은 8·15 광복 때까지 일본인 사목의 중심지였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31년 3월 3일 대구에 부임한 앙상(Pierre Hilarion Anchen) 신부와 일본인 신자들이 일본인 주거지이며 관사와 기관의 사택이 많던 삼립정 64에 성전과 부속 건물을 착공하고 개축했으며 1933년 10월 18일 ‘삼립정성당’이라는 명칭으로 일본인을 위한 성당으로 설정되었다고 적는다. 설립일 1933년 10월 18일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에도 올라 있고,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에도 같은 날짜가 올라 있다.
〔광복 이후〕 대사전에 따르면 광복으로 삼립정 본당의 명칭이 삼덕동 본당으로 바뀌었고 일본인들이 귀국하면서 지역민을 위한 본당으로 전환되어 1945년 12월 15일 첫 한국인 사제로 신순균 신부가 부임했다. 신 신부는 2년 6개월여 만인 1948년 4월 10일 병사했고, 후임 3대 주임 유흥모 신부도 7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18일 사망해 11월 전석재 신부가 4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으로 행정구역 명칭이 삼립정에서 삼덕동으로 바뀌어 1945년 12월부터 삼덕천주교회로 개칭하고 중앙통을 경계로 동부 지역을 관할하는 성당이 되었다고 적는다.
〔성장과 시설〕 대사전에 따르면 1952년 4월 7일 삼덕유치원을 개원하고 소피아회(고등학생회)를 설립했으며, 1956년 성체회(중학생회), 1959년 소화 클럽(대학생회)를 조직했다. 1960년 11월 19일에는 건평 328평의 삼덕 가톨릭 문화관을 완공해 지성인 모임, 가톨릭 학생 연합, J.O.C 등에 문화 공간을 제공했다(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60년 착공해 1961년 완공했다고 적는다). 9대 주임 김영옥 신부는 신자가 늘자 1963년 5월 31일 성당 공사에 착수해 그해 12월 25일 연건평 1,0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했고, 1965년 10월 성당 안에 무료 진료소를 개설했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53년 안토니오 무료시약소를 개소했고, 1954년 성당 확장 공사를 시작해 1955년 축성식을 거행했으며, 1964년부터 주일탁아소를 운영했고, 1971년 5월 10일 데레사신용협동조합을 발족했으며, 1976년 도시계획으로 성당 동편에 도로가 개설되어 사제관과 성당 일부를 개축했다고 적는다.
〔사목 활동〕 대사전은 김영옥 신부가 1978년 13대 주임으로 다시 부임해 전 신자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화 운동을 펼치고 1980년 6월 시장 교리반을 개설하는 등 지역 선교 활동을 적극 추진했다고 적는다. 1988년 6월 15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판석 신부는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소책자를 발행하고 1990년 4월 15일 부활 대축일을 기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가두 선교를 시작했으며, 전국은 물론 해외 한인교회들로부터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자본당과 사제 성소〕 대사전은 삼덕동 본당이 1951년 범어동 본당을 분리한 것을 비롯해 1955년 대봉동 본당, 1964년 수성동 본당, 1965년 대안동 본당, 1970년 신천동 본당, 1973년 동인동 본당, 1983년 옥산 본당 등 모두 7개의 자본당을 두었다고 적는다. 박춘택(베드로) 신부와 이길준(바오로) 신부를 비롯해 20여 명의 사제를 배출했다고도 적는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1951년 범어성당 신설로, 1955년 대봉성당 신설로 일부 지역을 이관했다고 적는다.
〔명칭 변경과 사목 방향〕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2008년 10월 1일 삼덕성당에서 삼덕젊은이성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성당 주변이 도심 상업지구로 변모하면서 공동화 현상이 생기고 관할 주민 수가 줄어 도심 속 특수 사목지로 기능을 전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명칭 변경도 그 노력의 일환이라고 적는다. 대사전도 같은 변화를 적는다.
〔관할 구역과 현황〕 관할 구역은 대사전과 대구역사문화대전이 삼덕동 1·2가, 동인동 1·2가, 공평동, 동문동, 동성로, 문화동, 봉산동, 사일동, 완전동 일대로 적고,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삼덕동 1·2가, 동인동 1·2가, 성내1동(봉산동·공평동·동성로) 전역으로 적으며 수녀회를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로 적는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2022년 1월 현재 주임신부 원유술(야고보), 보좌신부 제현철(베드로), 등록 신자 1,826명이라고 적고, 생태환경위원회의 생태걷기 행사와 주일학교의 ‘그대 어디로 가는가?-한티 가는 길’ 행사, 사회복지위원회 중심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을 든다. 조직으로 사목평의회, 평신도협의회, 구역협의회, 전례위원회, 주일학교, 생태환경위원회, 요한회, 윤일회, 산악회, 대건회, 위령회 등을 든다. 대사전의 교세는 1954년 2,450명, 1965년 6,473명, 1973년 7,609명, 1980년 8,068명, 1986년 8,685명, 1991년 9,129명, 1996년 7,880명이다.
〔역대 신부〕 대사전은 초대 앙상 힐라리오(1933.10~1945.12), 2대 신순균 바오로(1945.12~1948.4), 3대 유흥모 안드레아(1948.6~11), 4대 전석재 이냐시오(1948.11~1949.8), 5대 박상태 루도비코(1949.8~1955.5), 6대 이철희 바오로(1955.5~9), 7대 신상도 프란치스코(1955.9~1959.10), 8대 이명우 야고보(1959.10~1961.12), 9대 김영옥 요한(1962.1~1967.12), 10대 강찬형 파스칼(1967.12~1972.10), 11대 이종흥 그리산도(1972.10~1973.10), 12대 박병원 필립보(1973.10~1978.7), 13대 김영옥(1978.7~1984.1), 14대 정재완 니콜라오(1984.1~1988.6), 15대 이판석 요셉(1988.6~1992.7), 16대 최봉도 프란치스코 사베리오(1992.7~1997.9), 17대 허연구 모이세(1997.9~서술 시점)를 적는다.
〔주보성인과 의의〕 주보성인은 대사전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이 성녀 소화 데레사로,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가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적는다. 대구역사문화대전은 삼덕성당이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의 천주교 전파 과정과 지역사회에서 천주교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일본 천주교회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가톨릭교회라고 평가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대구(현 계산동) 본당: 1916년 3월 일본인 전교 회장의 사택으로 쓸 목조 가옥이 이 본당 인근에 신축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범어성당·대봉성당·수성성당·대안성당·신천동 본당·동인동 본당·옥산 본당: 삼덕동 본당이 각각 1951년, 1955년, 1964년, 1965년, 1970년, 1973년, 1983년에 분리해 낸 자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앙상(힐라리오) 신부: 삼립정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대구역사문화대전).
- 신순균(바오로) 신부: 광복 후 부임한 첫 한국인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대구역사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삼덕동 본당”(6권). 일본인 사목의 시작, 1933년 삼립정 본당 설립, 광복 이후 변화, 시설과 사목 활동, 자본당,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031 - 한국학중앙연구원, 대구역사문화대전 “삼덕성당”. 설립과 개칭, 증축·시설, 2008년 삼덕젊은이성당 개칭, 2022년 1월 현황과 의의.
https://www.grandculture.net/daegu/toc/GC40004649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삼덕”(대구대교구). 설립일 1933.10.18, 주보 성녀 소화 데레사, 수녀회, 관할지역.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c&gubn=4&gyogu=201000021&code=201000826&gubn2=all&char=all -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삼덕 성당”. 설립일자 1933년 10월 18일, 주보성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53&premenu&srl=church_search
문서 정보
- 문서 크기
- 11,165 바이트
- 판 수
- 1
- 기여자
- 1명
- 만들어진 날
- 2026년 10월 19일 20:01
- 마지막 수정
- 2026년 10월 19일 20:01
- 본문 연결
- 0개
- 출처 링크
- 4개 · 제출 출처 있음
- 작성 상태
- 보완 권장
- 장소 ID
2ba47e64-c49d-4a02-843c-424b5320528b- 고정 주소
- https://missamap.com/ko/kr/daegu-samdeok-catholic-church/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삼덕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20:01. https://missamap.com/ko/kr/daegu-samdeok-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