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 성당
개요
동명성당은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79년 12월 칠곡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으며 주보성인은 사도 성 야고보이다. 인근 한티 일대에 박해를 피한 신자들의 교우촌이 형성되었으며, 본당은 한티 성지와 흙다리 성지 개발에 힘쓰고 있다.
역사
〔교우촌과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상주·점촌 등지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한티(현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로 이주하면서 교우촌이 형성되었고, 한티를 중심으로 학명동·상하동(동명면 송산3동)·흑가리골(가산면 다부동과 금화동 부근) 등에도 교우촌이 생겼으나 병인박해(1866~1873)로 거의 괴멸되었다고 적는다. 이 출처는 1893년 대구(현 계산동)본당 소속으로 발족한 남원 공소가 1949년 날뫼(현 비산동)본당 관할로 이관되었고, 이 무렵 개설된 삼산 공소는 6·25전쟁으로 1954년 폐쇄되었으며, 이어 생긴 박옥(학명) 공소도 1959년 폐쇄되었다고 적는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한티 지역 신자촌이 1876년에서 1910년경에 상주, 점촌 등지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정착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적는다(두 출처의 시기 서술이 다르다).
〔동명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9년 현재 본당 소재지의 부지를 매입해 1960년에 동명 공소로 발족했고(디지털칠곡문화대전도 부지를 매입하고 1960년 동명공소가 발족했다고 적는다), 같은 해 가산면의 다부동 공소와 금화동 공소가 생겼는데 모체는 동명 공소였다. 1970년 왜관 감목대리구의 보조금으로 공소 건물을 신축했고 그해 11월 은퇴한 이기수(야고보) 신부가 이곳에 거주하며 성사를 집행했다. 1976년 5월 자치 공소로 인정받았으나 다시 칠곡 관할이 되자 공소 회장 김업(베드로)을 비롯한 신자들이 1978년 3월 유치원을 개원하고 전주의 성체 수녀회에 분원 설립을 요청했다. 신자 배가 운동 등으로 1978년 7월 준본당이 되었고, 1979년 12월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동명본당이 칠곡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고 적고,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1979년 12월 칠곡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초대 정성우(바오로) 신부가 부임했다고 적는다.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에는 설립일자가 1978년 7월 5일로 올라 있다. 본당 승격 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2명의 수녀가 파견되었다(디지털칠곡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4년 4대 주임 조정헌 신부 때 서정길 대주교의 도움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2명이 정식으로 파견되었고, 조정헌 신부가 부랑인 임시 수용 보호 시설인 희망원 사목을 겸임했다고 적는다.
〔성당 신축〕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84년 이기수 몬시뇰이 기증한 1천만 원으로 대지 일부를 마련했고, 김영민(베드로)이 성전 신축 기금으로 희사한 2억 7천만 원으로 1987년 7월 기공식을 가진 뒤 이듬해 5월 봉헌식을 거행했다. 대지 1,908평, 연건평 329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에 성당·사제관·수녀원·회합실·지하 강당이 마련되었다. 이에 앞서 1983년 6월 이기수 몬시뇰의 사저(동명면 기성동)를 증여받아 한티 순례자의 집을 개원했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신자들이 헌금한 기금으로 부지를 매입해 1987년에 성당과 사제관 및 수녀원 등의 건물을 축성했다고 적는다(두 출처의 연도가 다르다).
〔역대 주임 신부와 활동〕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정성우 바오로(1979.12~1980.5), 2대 정춘석 아우구스티노(1980.5~1982.1), 3대 허용 요셉(1982.1~1984.7), 4대 조정헌 파트리치오(1984.7~1988.6), 임시 장효원 요셉(1988.6~1989.6), 5대 강찬형 파스칼(1989.6~1993.10), 6대 윤광제 다윗(1993.10~)이다. 초대 주임은 갈란투스 청년회를 조직하고 성모당을 신축했고, 2대 주임은 청장년 단체를 조직해 10~30대 신자가 전 신자의 40%를 차지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3대 주임은 레지오 마리애 중심으로 단체를 재편하고 1983년 2월 교리 교사회를 발족해 주일학교를 개교했다. 1993년 구안 국도 확장 공사로 금화 공소가 철거되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가산면에 부지를 사서 27평의 가산 공소를 신축했고, 1995년 4월 23일 서정덕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식을 거행했다.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79년 272명, 1982년 327명, 1985년 394명, 1988년 472명, 1992년 483명, 1994년 609명이다. 디지털칠곡문화대전은 2006년 2월 28일 15대 이경수(토마스 데 아퀴노) 신부가 부임했고 320여 세대 880여 명의 신자가 참여하며 금화공소와 가산공소를 관할한다고 적는다. 본당은 동명어린이집을 운영한다(디지털칠곡문화대전).
관련 장소와 인물
- 칠곡본당: 동명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칠곡문화대전).
- 한티 성지: 동명면 득명동의 교우촌 터로, 본당이 인근 한티 및 흙다리 성지 개발에 힘쓰고 있다(디지털칠곡문화대전).
- 한티 순례자의 집: 1983년 6월 이기수 몬시뇰의 사저를 증여받아 개원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이기수(야고보) 몬시뇰: 1970년 11월 은퇴 후 동명 공소에 거주했고 성전 신축 기금에 기여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칠곡문화대전).
- 가산공소·금화공소·남원공소: 동명본당이 관할하거나 관할했던 공소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칠곡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칠곡문화대전 “동명성당”. 한티 신자촌, 동명 공소, 1978년 준본당·1979년 본당 승격, 2006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chilgok/toc/GC02301432 - 한국가톨릭대사전, “동명 본당”(3권). 교우촌 형성, 공소 연혁, 본당 승격, 성당 신축(1987~1988), 역대 신부, 교세 통계.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458 -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동명 성당”. 설립일자 1978년 7월 5일, 주보성인 사도 성 야고보(小).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34&premenu=c1&srl=church_search&y_id=34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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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동명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5:05. https://missamap.com/ko/kr/daegu-dongmy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