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칠곡성당은 대구광역시 북구 읍내동에 있는 천주교 대구대교구 소속 성당이다. 1932년 시작된 칠곡 공소가 1957년 4월 9일 왜관 본당에서 분리되어 본당으로 승격된 성당으로, 주보성인은 성 요셉이고 초대 주임은 독일인 뮐러(모안세) 안스가리오 신부이다.

역사

〔칠곡 공소의 시작〕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32년 칠곡 읍내동에서 옹기굴 토점을 경영하던 박달용이 옹기굴 직공들과 인근 교우들을 모아 처음으로 칠곡 공소를 설립하고 초대 공소 회장을 맡았다고 적는다. 박달용은 자기 집에서 주일 예절을 올렸고 판공성사는 대구 성당에서 보았다. 1942년 조병철이 2대 공소 회장으로 선임되어 김삼조의 집에서 주일 예절을 지켰고, 1945년 해방과 함께 일본에서 귀국한 박윤준이 읍내동의 옹기굴토점을 경영하면서 3대 공소 회장이 되었다. 당시 신자는 40명 정도였고 공소는 대구 비산동 본당 소속이었다.

〔공소 건물과 본당 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신앙은 한국전쟁 중에도 성장해, 1953년 3월 10일 비산동 본당 신자들의 성금으로 칠곡 읍내동 현재의 수정약국 자리에 약 200평을 매입하고 목재 일부를 기증받아 1954년 4월 10일 건평 23평의 공소 건물을 신축했다. 비산동 본당 7대 주임 정수길(요셉) 신부의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으며 주보성인을 성 요셉으로 정했다. 같은 해 11월 성모회가 조직되어 초대 회장에 박 비리시 자매가 선임되었다. 1955년 4대 공소 회장에 선출된 서창득은 성당 부지용 대지 1,090.90㎡와 지상 가옥, 전교 회장 사택용 가옥을 기증했다. 1956년 5월 칠곡 공소는 왜관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에 소속되었고, 본당 승격을 요청해 현재의 칠곡 성당 자리(당시 칠곡면 읍내동 532-2번지 대지 330평, 밭 350평, 객사 건물 1동)를 입찰해 사용하게 되었다. 마침내 1957년 4월 9일 칠곡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독일인 뮐러 신부가 부임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왜관 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고 적고,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도 설립일자를 1957년 4월 9일, 주보성인을 성 요셉으로 적는다.

〔초기 시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뮐러 신부는 1957년 5월 성당 부지 내 인접 토지를 매입한 뒤 사제관과 강당 신축 공사에 착수해 7월 5일 사제관을 준공하고 9월에 강당 신축 미사를 봉헌했다. 2대 주임 최창성 신부가 맡은 당시 칠곡 본당은 본당 신자 464명과 동명 공소 52명, 학상 공소 123명, 도남 공소 28명, 남원 공소 58명, 학명 공소 28명, 백산 공소 108명 등이었다. 1968년 7월 15일 최 신부가 왜관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떠날 때 교세는 본당 730명과 11개 공소 508명을 합해 1,238명으로 성장했다.

〔대구대교구 이관과 1970~80년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68년 8월 1일 부임한 3대 주임 박병원 신부가 6개월 남짓 맡았던 시기에 칠곡 본당의 관할권이 대구대교구로 이관되었다고 적는다. 4대 주임 서정길 신부는 1969년 3월 칠곡 천주교회 공동묘지 허가권을 얻고 6월에 신용 협동 조합 사무실을 설치하고 성모 동굴을 준공했다. 5대 주임 이창호 신부는 1970년 3월 본당 관할 9개 공소 중 5개 공소를 왜관 본당으로 이관했고, 1972년 10월 성당 주보를 창간했으며 성당의 신용 협동 조합도 재무부의 인가를 얻었다. 6대 주임 하우프트(W. Haupt) 신부 재임기인 1976년 10월 성당 상수도가 준공되었고, 1978년 7월 동명 공소가 준본당으로 승격되어 3개 공소가 이관되었다. 7대 주임 손상오 신부는 1982년 4월 1일 요셉유아원을 열었고 같은 달 25일 ‘만남의 집’을 건립해 축복식을 가졌으며, 1985년 2월 교육관이 준공되었고 같은 해 10월 24일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 사업으로 교육관을 건립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91년 7월 11대 주임으로 부임한 정순재 신부가 본당이 35년의 역사를 가지고도 성직자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점에 관심을 기울여 어린이·학생을 대상으로 베론회를 조직해 교리를 가르쳤다고 적는다. 본당 지역은 도시 변두리의 촌락이었으나 정부의 200만 호 주택 건설 촉진 사업으로 택지 대단지가 조성되면서 신자 수가 급격히 늘어, 1990년 1,800여 명이던 신자가 12대 정성우 신부가 부임한 1995년 무렵 3,000여 명에 이르렀다. 15대 주임 최창호 신부는 2002년 1월 30일 신설된 동천 본당에 신자 1,334명을, 국우 본당에 434명을 분가시켰고 두 신설 본당의 성전 건립을 도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본당이 2007년 본당 설립 50주년을 대비해 ‘본당 50년사 준비위원회’를 발족해 운영하고 있다고 적는다.

〔관할과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관음동·동호동·읍내동 전역이다. 교세는 1957년 420명, 1967년 1,390명, 1972년 756명, 1977년 852명, 1980년 821명, 1984년 1,275명, 1987년 1,511명, 1990년 1,774명, 1995년 3,163명, 1999년 3,600명, 2003년 1,779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뮐러(A. Müller) 안스가리오(1957.4~1962.2), 2대 최창성 바오로(1962.2~1968.7), 3대 박병원 필립보(1968.8~1969.1), 4대 서정길 요한(1969.1~1970.1), 5대 이창호 안드레아(1970.1~1972.11), 6대 하우프트(W. Haupt)(1972.11~1981.4), 7대 손상오 루가(1981.4~1986.1), 8대 이상호 베드로(1986.1~1989.6), 9대 김준우 마리오(1989.6~1990.2), 10대 최용병 베네딕도(1990.3~1991.7), 11대 정순재 베드로(1991.7~1995.2), 12대 정성우 바오로(1995.2~1998.2), 13대 김영우 그리산도(1998.2~2001.2), 14대 황용식 타대오(2001.2~7), 15대 최창호 야고보(2001.7~)이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왜관성당·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1956년 칠곡 공소가 소속되었고 1957년 칠곡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대구 비산동 본당: 칠곡 공소가 초기에 소속되었고 공소 건물 신축 때 신자들이 성금을 모은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동명 공소(동명성당): 1978년 7월 준본당으로 승격되어 3개 공소가 이관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동천 본당·국우 본당: 2002년 1월 30일 칠곡 본당에서 신자를 분가시켜 신설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가톨릭대사전, “칠곡 본당”(11권). 1957년 4월 9일 왜관 본당에서 분리·설립, 칠곡 공소의 시작과 공소 건물,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분가 본당.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108
  2. 천주교 대구대교구, 본당 정보 “칠곡 성당”. 설립일자 1957년 4월 9일, 주보성인 성 요셉.
    https://www.daegu-archdiocese.or.kr/page/area.html?menu=c4&number=77&premenu=c1&srl=church_search&y_id=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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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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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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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칠곡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5:53. https://missamap.com/ko/kr/daegu-chilgok-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