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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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주문진성당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 지역에 있는 천주교 춘천교구 소속 성당으로, 1921년 12월 금광리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설립되어 1923년 11월 주문진으로 옮겨 오면서 주문진 본당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이다. 설립 시기는 한국가톨릭대사전이 1921년 12월로, 춘천교구 홈페이지가 1923년 11월 23일로 적는다.

역사

〔영동 지역의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뮈텔(Mutel, 민덕효) 주교가 영동 지역 신자가 늘자 1921년 5월 5일 상도문(현 양양)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최문식(베드로) 신부를 임명했으며, 이때 원산 대목구의 드브레(Devred, 유세준) 보좌 주교는 영동 지역에 또 하나의 본당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적는다. 1921년 6월 사제 서품을 받은 이철연 신부가 상도문 본당의 보좌 신부로 임명되었고, 강릉 이남 금광리(현 강릉시 구정면 금광리) 지역 신자들이 1921년 가을 판공성사 때 이철연 신부를 금광리로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이 지역 공소들은 신자 수가 많았고 상도문 본당과 거리가 멀었으며 공소 강당과 사제관도 갖추고 있어 요청이 타당하게 여겨졌고, 대목구는 1921년 12월 금광리 본당을 설립해 이철연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파견했다. 이때 관할 구역은 양양의 견불리, 강릉의 제비골·금광리·오일골, 정선의 느랏 등 5개 지역이었고 신자는 227명이었다.

〔주문진으로의 이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이철연 신부는 1922년 초 금광리가 발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 양양 쪽으로 본당을 옮기고자 최문식 신부와 상의했고, 주문진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해 1922년 8월 신리면 교항리 133번지의 가옥과 부지를 매입했다. 이어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11월 23일 성당을 완공하고 본당명을 주문진 본당으로 바꾸었으며, 1924년에는 인근의 770여 평 부지와 8,000여 평의 토지를 차례로 매입했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도 1923년 11월 23일 금광리에서 사목하던 이철연 신부가 주문진으로 이전한 것이 시초이며 주보는 ‘루르드의 성모’라고 적는다.

〔화재와 공소로의 전환〕 두 출처는 주문진의 전교가 활발하지 않았고 새로 개항된 주문진보다 강릉 지역이 더 발전하고 있었다고 적는다. 1929년 1월 성당이 화재로 전소되자 2대 주임 김인상(야고보) 신부는 주문진을 떠났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그가 본당을 다시 금광리로 이전하고 성당을 증축했으나 1931년 강릉(현 임당동) 본당이 신설되면서 주문진 본당이 공소로 전락했다고 적는다.

〔본당으로의 재승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맥고완(P. McGowan, 원) 파트리시오 신부가 1951년 11월 한국전쟁으로 양양에 거처할 곳이 없게 되자 주문진 공소의 3대 주임으로 임명되어 공소가 본당으로 재승격되었다고 적는다. 맥고완 신부는 20여 년간 공소였던 본당의 활성화를 위해 목조 8칸 기와집을 전면 개수해 성당으로 썼다. 4대 주임 윤예원(토마스) 신부는 1953년 시멘트 블록으로 120평의 본당 건물을 지었고, 1956년 사제관(28평)을 목조 함석으로 신축하고 현재의 성모상을 세웠다. 5대 주임 최창규(바르톨로메오) 신부는 1958년 10월 행정 공소(38평), 12월 인구 공소(26평), 이듬해 7월 삼산 공소(18평)를 신축하고 성당 전면을 개축했으며, 1957년부터 1964년 사이에 5개의 쁘레시디움과 본당 꾸리아를 발족시켰다.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1951년 11월 사제가 부임하며 본당이 다시 되었고 1955년 1월 새 성전에서 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했다고 적는다.

〔작은형제회의 사목〕 1967년 9월 3일 춘천교구와 작은 형제회 사이의 계약으로 주문진 본당은 작은 형제회가 운영하게 되었고 8대 주임으로 이바르비아(A. Ibarbia, 전필주) 안젤로 신부가 부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이바르비아 신부는 사목 협의회를 조직하고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했으며 벽돌 공장을 운영했고 행정 공소에서는 옹기를 만들었다. 9대 주임 페르난데스(M. Fernandez, 하일성) 멜키올 신부는 영동 지역 최초로 성당 안에 장궤틀을 설치했다. 1970년 9월 10대 주임으로 부임한 브리아헤레카(J. Uriagereka, 우영환) 요셉 신부는 1972년 7월 본당 청년회를 통해 주보를 창간하고 천주교 부인회를 창설해 지금의 성모회가 시작되게 했으며, 1973년 7월 본당 교우와 함께 꾸르실료 모임에 참석했고 8월에는 현 사제관을 개축했다. 1975년 1월 부임한 11대 무르구수르(J. Murguzur, 문) 요셉 신부는 청년 사목과 학생회 발전에 힘써 영동 지구 학생회 지도 신부를 역임했고 주문진 중학교에서 영동 지방 성체 대회를 개최했으며 월보 〈동해〉를 발행했다. 13대 주임 강효식(야고보) 신부는 1982년 5월 반으로 구성되었던 구역을 리별로 확대·정리하고 6월에 리별 레지오 마리애를 창단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1984년 이후〕 14대 주임 최병철(아우구스티노) 신부 재임기인 1984년 1월 전기 누전으로 사제관과 교육관이 전소되었고, 춘천교구와 작은 형제회의 도움으로 1985년 2월부터 재건축에 들어가 15대 주임 아바소로(Abasolo, 서정천) 라파엘 신부가 그해 7월 공사를 마치고 9월에 본당 보수 공사를 했다. 1987년 2월에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전교 수녀회 분원이 마련되었다. 16대 주임으로 재부임한 하라테(A. Garate, 강인조) 신부는 병자 방문에 힘썼고 1993년 3월 지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행정 공소를 수리해 6월 축복식을 했다. 17대 주임 김권순(바오로) 신부는 1994년 4월 본당 진입로를 새로 설치하고 대강당을 보수했으며 만남의 방과 성모 회관을 신축했고, 1995년 7월 바닷가 인구 공소의 캠프장에 샤워실을 갖추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로의 사목권 이양과 중창〕 작은 형제회의 본당 사목권은 1997년 9월 다시 춘천교구로 이양되어 18대 주임 박우성(사무엘) 신부가 부임했으며,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이 일을 1997년 9월 3일로 적는다. 박 신부는 1998년 2월부터 성서 백주간을 시작하고 소공동체 활성화에 주력했다. 19대 주임 김학배(안젤로) 신부는 50년 이상 된 성당을 전면 보수해 2003년 5월 장익(십자가의 요한) 주교의 주례로 봉헌식을 가졌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는 2002년 8월 태풍 루사로 성당 곳곳이 파손되었으나 사제·수도자·평신도가 힘을 합해 새로 중창했다고 적는다.

〔교세와 역대 주임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신자 수는 1964년 1,440명, 1974년 1,577명, 1981년 1,194명, 1986년 1,195명, 1991년 1,766명, 1996년 1,914명, 2001년 1,950명이며 관할 구역은 현남면, 주문진읍, 연곡면 전 지역, 관할 공소는 삼산·인구·행정 공소 3개소이다. 역대 주임은 초대 이철연 프란치스코(1923.11~1928.5), 2대 김인상 야고보(1928.5~1931.6), 3대 맥고완 파트리시오(1951.11~1953.3), 4대 윤예원 토마스(1953.3~1957.6), 5대 최창규 바르톨로메오(1957.7~1964.2), 6대 뉴젠트(W. Nugent, 유) 누젠(1964.2~11), 7대 케니(P. Kenny, 기) 바오로(1964.11~1967.9), 8대 이바르비아 안젤로(1967.9~1969.6), 9대 페르난데스 멜키올(1969.6~1970.9), 10대 브리아헤레카 요셉(1970.9~1975.1), 11대 무르구수르 요셉(1975.1~1979.2), 12대 하라테 알렉산데르(1979.2~1982.4), 13대 강효식 야고보(1982.4~1983.7), 14대 최병철 아우구스티노(1983.7~1985.5), 15대 아바소로 라파엘(1985.5~1990.3), 16대 하라테(1990.3~1994.2), 17대 김권순 바오로(1994.2~1997.8), 18대 박우성 사무엘(1997.8~2001.2), 19대 김학배 안젤로(2001.2~현재)이다. 여기서 ‘현재’는 이 사전의 서술 시점을 뜻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금광리 공소·금광리 본당: 1887년 금광리 공소가 설립되었고(한국가톨릭대사전 “임당동 본당”), 1921년 12월 금광리 본당이 설립되어 주문진 본당과 임당동 본당의 전신이 되었다.
  • 양양 본당: 1921년 5월 설립되어 이철연 신부가 보좌로 있었던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작은 형제회: 1967년 9월부터 1997년 9월까지 주문진 본당의 사목을 맡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춘천교구 홈페이지).
  • 삼산 공소·인구 공소·행정 공소: 주문진 본당이 관할하는 공소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주문진 본당”(10권). 금광리 본당 설립, 주문진 이전과 개칭, 1929년 화재, 공소 전락과 재승격, 작은 형제회 사목, 2003년 봉헌식, 교세 통계, 역대 주임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732
  2. 천주교 춘천교구 홈페이지, 본당 “주문진 루르드의성모 본당”. 설립연도 1923.11.23., 1929년 화재와 공소 전환, 1951년 재승격, 1955년 새 성전, 작은 형제회 사목, 2002년 태풍 루사 이후 중창.
    https://www.cccatholic.or.kr/parish/parish/view/34
  3.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임당동 본당”(9권). 금광리 공소(1887년)와 금광리 본당 설립, 주문진 이전과 1929년 화재.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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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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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9일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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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주문진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9일 11:56. https://missamap.com/ko/kr/chuncheon-jumunji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