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풍 순교 성지
개요
연풍순교성지는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의 성지로, 병인박해(1866) 때 체포되어 순교한 연풍 출신 신자들과 성인 황석두 루카의 묘소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청주교구는 연풍을 문경 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경상도로 피신하던 신자들의 길목이자 신앙을 잇는 교차로였다고 소개한다.
역사
〔연풍 지역과 신앙 공동체〕 청주교구 성지소개는 연풍이 소백산맥의 조령산(해발 1,017m)과 백화산(해발 1,064m) 사이에 있어 충청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이루며, 남쪽 주진리에서는 이화령(해발 548m)을 거쳐 문경으로, 북쪽 원풍리에서는 새재(조령, 해발 642m)와 하늘재(계립령, 525m)가 멀지 않다고 설명한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이며 조선 후기까지는 연풍현이었고, 연풍 현감이 많은 천주교 신자를 체포해 형벌로 다스렸다고 한다. 이 지역에 작은 신앙 공동체가 처음 형성된 것은 1784년 말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로,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를 거쳐 연풍까지 복음이 전해졌다고 적는다.
〔신유박해 이후〕 청주교구는 1801년 신유박해로 몇몇 교우가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되었고, 김흥금과 몇몇 교우는 경상도로 피신했으며, 이항덕은 연풍에 남아 있다가 체포되어 귀양을 갔다고 적는다. 신유박해 이후 이화령과 새재를 넘어 새 은신처를 찾아가는 신자들에 의해 복음이 경상도 지역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문경 새재 관문 한쪽의 수구문이 쫓기던 교우들을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동정 부부로 유명한 이순이(누갈다)의 어머니가 며느리·손자들과 피신해 신앙생활을 한 곳도 연풍이고, 황석두(루가)가 진리를 찾은 곳도 연풍이며, 최양업(토마스) 신부, 페롱(권 스타니슬라오) 신부,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 등이 이화령과 새재를 넘어 영남으로 전교를 다니며 쉬어 가던 곳도 연풍이었다고 설명한다. 연풍순교성지 홈페이지도 최양업 신부와 칼래 신부가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며 교우촌을 순방했다고 적는다.
〔병인박해와 순교자〕 청주교구는 1866년 흥선대원군이 일으킨 병인박해로 연풍의 복음사가 순교사로 바뀌었다고 설명한다. 교우들은 연풍 관아로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당하거나 도살장(연풍 옥터)이라 불리던 곳으로 끌려가 목숨을 바쳐야 했고, 충주·공주·서울 등지로 이송되어 처형된 이들도 있었다. 연풍 성지는 지역 사람들에게 도살장으로 알려진 그 장소에 들어서 있다. 가톨릭신문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연풍 출신 신자가 13명이라고 적는다. 청주교구의 병인박해기 연풍 출신 순교자 현황표에는 황 안드레아(1866.9, 서울, 교수, 황 루가 성인의 조카), 추순옥(1866.10, 청주, 교수, 회장), 조 아우구스티노(1867.2, 공주, 교수), 간 그레고리오(1867, 홍주, 교수), 김군심 베드로(1867.4, 공주, 장사), 황 요한(1867, 서울, 교수, 황 루가 성인의 양자), 김 마르티노와 그 아들 김 마태오(1867, 충주, 장사), 조 베로니카(1868.4, 해미, 교수), 이유일 안토니오(1868.5, 서울, 교수), 김 요셉(1868.9, 충주), 김원일(1868.윤4, 충주, 참수), 전 바오로(1869.4, 충주, 참수)가 올라 있다. 성지 홈페이지는 이 가운데 김 마르티노와 김 마태오가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고 적는다.
〔황석두 루카〕 연풍 병방골(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은 황석두 루카(1813~1866)의 고향이다. 성지 홈페이지는 과거 급제를 위해 한양으로 가던 중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그가, 부친이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고 강요하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며 목숨을 버릴 각오를 보였다고 적는다. 이후 동정 부부로 살며 전교회장으로 일생을 교회에 헌신했고,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청주교구는 프랑스 선교사들이 그를 회장으로 임명해 곁에 두었고, 그가 선교사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가르치고 교우촌 순방에 동행했으며 다블뤼 주교를 도와 한글 교리서를 편찬했고, 페롱 신부가 조선교구에서 가장 훌륭한 회장이라고 했다고 설명한다.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포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수했다고도 적는다.
〔유해 이장〕 황석두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부여군 홍산면 상천리)를 거쳐 고향 병방골로 이장되었다. 청주교구와 성지 홈페이지는 오랜 노력 끝에 1979년 그 묘소가 발견되었고 3년 뒤 연풍 성지로 천묘되었다고 적으며, 성지 홈페이지는 1982년 노기남 대주교의 예식으로 천묘했다고 밝힌다. 가톨릭신문은 병방골 평해 황씨 문중 산에 묻혀 있던 유해를 1982년 연풍순교성지로 옮겼다고 적는다.
〔성지 조성 과정〕 가톨릭신문에 따르면 청주교구는 1963년 연풍공소로 사용하기 위해 옛 향청 건물(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3호)을 매입했고, 이곳에서 박해 때 신자들을 죽이는 도구로 쓰인 형구돌 3개를 발견해 그중 2개를 성지에 안치했다. 1968년 황석두의 시복식 이후 그의 고향이 연풍으로 알려지면서 성지 개발이 가시화되었고, 1979년 순교 현양비를 세웠으며, 1982년 유해를 천묘했다. 이후 갈매못에서 함께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장주기 회장 등 다섯 성인상과 반석(오성바위)를 재현해 1986년 축복식을 열었고, 최초의 한국인 주교 노기남(바오로) 대주교의 동상과 높이 8.5m의 대형 십자가도 마련했다. 2008년에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기념해 배티성지에서 연풍순교성지를 잇는 91.5km의 도보 성지순례길을 만들었다. 2013년 3월 9일 성 황석두 루카 탄생 200주년 기념성당 기공식을 열었고 2014년 9월 20일 봉헌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황석두 루카(1813~1866): 연풍 병방골 출신으로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인이며 묘소가 성지에 있다(청주교구, 성지 홈페이지).
- 갈매못 성지: 황석두가 다블뤼 주교 등과 함께 순교한 곳이다(청주교구).
- 최양업 신부: 문경 새재를 넘나들며 연풍 교우촌을 사목 방문했다(성지 홈페이지, 가톨릭신문).
- 배티성지: 2008년 만든 91.5km 도보 성지순례길이 연풍순교성지와 이어지는 곳이다(가톨릭신문).
참고자료 및 출처
- 천주교 청주교구, “성지소개 - 연풍순교성지”. 연풍 지역 신앙사, 병인박해기 연풍 출신 순교자 현황표, 황석두 루카의 행적과 이장.
https://www.cdcj.or.kr/parish/holyland/13 - 연풍순교성지 공식 홈페이지, “연풍순교성지”. 신앙의 교차로, 시복 대상 순교자, 황석두 루카 묘소의 1982년 천묘.
https://ypshrine.com/?page_id=13 - 가톨릭신문, “[길 위의 목자 양업] (26) 최양업의 연풍성지”(2022-07-03, 제3301호). 향청 매입(1963), 형구돌, 성지 개발 과정과 기념성당 봉헌(2014).
https://simpaschal.tistory.com/12029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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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4일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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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missamap.com/ko/kr/cheongju-yeonpung-sungyo-shrine/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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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연풍 순교 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4일 04:39. https://missamap.com/ko/kr/cheongju-yeonpung-sungy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