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에목 성지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멍에목성지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구병리 일대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의 성지로, 조선 박해 시기 교우촌이 있던 곳이자 2014년 시복된 복자 박경화(바오로)·박사의(안드레아) 부자 등의 고향이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 순방 중 성사를 주고 미사를 봉헌한 곳으로, 청주교구가 2016년 8월 12일 성지로 지정했다.

역사

〔멍에목 교우촌〕 굿뉴스(청주교구 선교사목국 리플렛 기반)에 따르면 멍에목[駕項里]은 ‘멍어목이’라고도 하며 윗멍에목(속리산면 구병리)과 아래멍에목(속리산면 삼가리)으로 나뉘고, 19세기에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은 윗멍에목이다. 정감록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라는 전승이 있으나 굿뉴스는 이를 잘못된 것으로 보고,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비밀 신앙 공동체인 교우촌으로 일군 마을이라고 설명한다. 가톨릭신문은 이곳에 정확히 언제부터 신자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고, 교회사 기록에 멍에목이 등장하는 것은 1827년 정해박해 때부터라고 적는다.

〔정해박해(1827)와 복자들〕 1827년 상주 포교들이 앵무당(현 상주시 화남면 평온리의 앵무동) 교우촌에 살던 복자 안군심(리카르도)과 김사건(안드레아), 그리고 ‘상주 멍에목’ 즉 보은 멍에목에 살던 복자 박경화(바오로)·박사의(안드레아) 부자를 체포했다. 이들은 상주 진영으로 압송되었다가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박경화는 형벌로 인한 장독 때문에 옥중에서 순교했고, 안군심은 1835년에 옥사했으며, 김사건과 박사의는 오랜 옥살이 끝에 1839년 대구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굿뉴스).

〔병인박해(1866~1868)〕 굿뉴스는 천주교 신자들이 다시 멍에목에 모여 살게 된 것은 박해의 위협이 사라진 뒤였으나 1866년의 병인박해로 평화가 깨졌다고 설명한다. 공주 땅에 살던 복자 김종륜(루카)이 이곳으로 피신해 생활하다 울산 죽령리(현 울산시 상북면 이천리)로 이주했고, 박경화·박사의 부자와 김종륜은 2014년 8월 16일 교황 프란치스코의 집전으로 시복되었다. 1867년 10월 청주 포교들이 금봉(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월용리) 마을을 습격해 멍에목 회장 최용운(암브로시오)의 처남인 맹인 전 야고보를 체포했고, 이듬해 서울 포교들이 멍에목 교우촌을 급습해 여 요한과 최조이 부부, 안 루카, 여규신, 최운흥 등을 체포했으며, 상주 장재동(현 상주시 화남면 동관리의 장자동)에 피신해 있던 최용운 회장도 체포했다. 전 야고보는 맹인이라 석방해 주려 하자 “제가 비록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맹인이지만, 마음으로는 한결같이 천주를 받들어 공경하고 있습니다.”라고 신앙을 증거했고, 최용운 회장은 문초와 형벌 속에서도 교우들에게 신앙을 굳게 지키도록 권면하며 순교했다. 굿뉴스는 최용운과 전 야고보가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순교한 사실이 기록에 나타나는 유일한 ‘하느님의 종’들이라고 적는다. 가톨릭신문은 박해자들이 들이닥치면 신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여러 차례 되풀이했다고 설명한다.

〔최양업 신부의 사목 순방지〕 굿뉴스는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1851년 10월 15일자 서한에 따르면 이해 멍에목 교우촌의 집들이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신자들이 힘을 모아 교우촌을 재건했고, 소식을 들은 최양업 신부가 교우촌 순방 도중 멍에목 신자들을 방문해 성사를 주고 함께 미사를 봉헌했으며 예비신자였던 양반 출신 조 바오로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적는다. 이때부터 멍에목 신자들은 조 바오로 동생의 위협과 횡포에 시달려 어렵게 지은 공소집을 허물고 농토를 잠시 버려야 했다. 가톨릭신문은 최 신부가 세례를 준 장소와 사연, 세례받은 이의 이름까지 상세히 기록한 것은 멍에목이 유일하다고 설명하며, 이 서한에서 최 신부가 “멍에목이라는 한 산골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전했다고 소개한다. 가톨릭신문은 조 씨가 화재로 모든 것이 타 버린 마을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하려 찾아갔다가 마을 사람들의 평온함에 이유를 물어 신앙을 알게 되었고, 집과 위패를 불태운 뒤 멍에목에서 세례를 받아 ‘바오로’가 되었다고 적는다. 병인박해 시복 재판 기록인 「병인치명사적」에는 조 바오로, 최용운, 전 야고보 등 멍에목 교우촌 신자들이 최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기록이 남아 있다(가톨릭신문 2026.8).

〔성지 지정과 조성〕 청주교구는 2016년 8월 12일 제3대 교구장 장봉훈(가브리엘) 주교가 멍에목 교우촌의 교회사적 의미를 반영해 성지로 지정하고 담당 신부를 임명했다(굿뉴스, 가톨릭신문). 2026년 8월 15일 담임 권상우(베드로) 신부 주례로 성지 선포 10주년 기념미사가 봉헌되었다. 성지는 10주년을 맞아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동상을 제작해 6월 21일 축복식을 했고, 배티 순교 성지 내 동상과 같은 모습으로 제작했다. 이 밖에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 바뇌 성모상’과 촛불 봉헌대를 안치했고 십자가의 길 14처를 야외에 조성했다(가톨릭신문).

건축과 공간

가톨릭신문은 성지의 세례성당이 정팔각형 벽면 위에 팔각뿔 지붕을 얹은 형태이며, 교회 전통에서 ‘8’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시작된 ‘새 창조’를 상징한다고 설명한다. 팔각뿔 꼭짓점으로 모이는 천장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표현한 성화가 있고 그 바로 아래에 세례대가 있으며, 성당 지하의 세례동굴에서는 산자락에서 사시사철 흐르는 자연수로 세례갱신식을 할 수 있다. 성지는 인근 펜션을 매입해 순례자의 집을 조성했다. 담당 권상우 신부는 최양업 신부처럼 화려하고 커다란 구조물이 아닌 소박한 건물로 조성했다고 밝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복자 박경화(바오로)·박사의(안드레아) 부자: 멍에목 교우촌에 거주했고 2014년 8월 16일 시복되었다(굿뉴스).
  • 복자 김종륜(루카): 병인박해 때 멍에목에서 생활하다 울산으로 이주했다(굿뉴스).
  • 최용운(암브로시오) 회장과 전 야고보: 최양업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순교한 하느님의 종이다(굿뉴스).
  •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 멍에목을 사목 방문해 성사와 미사를 집전했다(굿뉴스, 가톨릭신문).
  • 배티 순교 성지: 최양업 신부의 또 다른 사목지로, 이곳 동상과 같은 모습의 동상이 멍에목에 세워졌다(가톨릭신문).

참고자료 및 출처

  1. 가톨릭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멍에목 성지”(청주교구, 보은 멍에목 성지 리플렛 기반). 교우촌 유래, 정해·병인박해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방문, 2016년 성지 지정.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4378
  2. 가톨릭신문, “[순례 걷고 기도하고] 청주교구 멍에목성지”. 1827년 이후 교우촌의 변천, 최양업 신부 서한과 조 바오로의 세례, 세례성당.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61005500087
  3. 가톨릭신문, “청주교구 멍에목 성지 선포 10주년 기념미사 봉헌”. 2016년 8월 12일 성지 지정, 10주년 기념사업.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60817500013
문서 정보
문서 크기
8,443 바이트
판 수
1
기여자
1명
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3일 23:39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23:39
본문 연결
0개
출처 링크
3개 · 제출 출처 있음
작성 상태
보완 권장
장소 ID
cc3e6891-bfcf-4f1a-96ab-59e57172e564
고정 주소
https://missamap.com/ko/kr/cheongju-meongemok-shrine/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멍에목 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23:39. https://missamap.com/ko/kr/cheongju-meongemok-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