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곡 성당
개요
감곡성당은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 있는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 성당으로 매괴성당이라고도 한다. 1896년 9월 17일 장호원 본당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충청북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천주교회이며, 주보는 매괴의 성모이다. 현재의 성당 건물은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6년에는 매괴 성모 순례지로 승인되었다.
역사
〔부엉골 본당에서 장호원으로〕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장호원 지역은 본래 부엉골 본당 관할이었다. 부엉골은 현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에 있던 산간 마을로 1885년 예수 성심 신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우촌이 조성되었고, 1887년 신학교가 서울 용산으로 옮겨 간 뒤에도 얼마 동안 본당으로 남아 있었다. 1894년 봄 부엉골 본당에 부임한 부이용(C. Bouillon, 임가밀로) 신부는 본당 위치가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전할 장소를 찾던 중 1896년 5월 장호원 매산 언덕에 있던 한옥을 사들였다. 이 집은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잠시 피신했던 민응식의 집으로, 1895년 말 의병과 일본군의 전투 속에서 불타 폐허가 된 상태였다.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1895년 10월 12일 명성황후 시해 뒤 의병이 일어났고, 장호원에서는 의병이 민응식의 집을 본부로 삼았다가 일본군이 이를 습격해 집과 인근 마을에 불을 질렀다고 적는다.
〔본당 설립〕 부이용 신부는 뮈텔 주교의 허락을 얻어 이 집터를 사들였고 불탄 집을 수리하다가 일이 여의치 않자 예정을 앞당겨 1896년 9월 17일 장호원으로 본당을 이전했으며, 이로써 부엉골 본당은 폐지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감곡 본당은 처음 장호원 본당이라고 불렸다.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의 박물관 항목은 9월 17일에 본당을 이전한 데 이어 매괴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했다고 적는다. 당시 장호원의 신자는 5~6명에 불과했지만 본당 관할 지역은 경기도 여주·이천, 충청도 단양·제천·충주·음성·괴산·진천·청주·보은 등에 걸쳐 공소 27개, 총 신자 1,300여 명에 이르렀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이용 신부는 사제관과 소성당 공사를 계속해 1896년 12월 5일 완공했다.
〔부이용 신부의 기도〕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부이용 신부가 사목 방문 길에 장호원에서 산 밑의 대궐 같은 집을 보고 그 자리에서 성모께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했다고 적는다. 그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 민응식의 109칸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했던 곳이다. 같은 항목은 불과 1년 4개월 만인 1896년 5월 부이용 신부가 민씨 문중이 소유한 집터와 산을 사들였다고 적는다.
〔첫 성당과 학교〕 신자가 늘어나자 부이용 신부는 1903년 성당 신축을 시작해 이듬해 9월 완공했고, 1904년 10월 2일 뮈텔 주교의 집전으로 축성식을 가졌다. 이 성당은 한옥과 양옥의 절충식으로 총 80평이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정면 3칸, 측면 10칸의 장방형 3랑식 단층 기와지붕 목조 한옥 성당이었다고 적는다. 교육 사업으로는 1907년 남학교인 매괴학당을 설립하고 1912년에는 여학교를 설립했는데, 여학교는 그해 본당에 부임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맡았고 두 학교는 이듬해 6년제 보통학교로 과정이 바뀌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1907년 매괴학당의 학생이 5명이었다가 매괴학교로 개칭되었고, 1916년 사립학교 요람에 학교명이 공교매괴, 설립자 겸 교장이 부이용 신부, 학생 수가 35명으로 올라 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학교 건물은 1922년 1차 개축되었다가 1936년 정식 인가를 받아 3층 교사로 증축되었다. 1914년부터는 매산(장미의 언덕)에서 성체 거동을 시작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현재 성당의 신축〕 1930년 10월 7일 종각 높이가 130척이 넘는 현재의 고딕 연와조 성당을 신축했고(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의 박물관 항목은 이 대성당이 건평 200평이며 이때 남은 석재로 1934년 3층 석조 사제관과 학교 교사를 새로 지었다고 적는다. 1933년에는 본당 성가집을 편찬·간행했다. 이러한 성장으로 1937년 총 신자 수는 2,150명이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일제강점기 말〕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일제 말기에 일본인들의 감시와 간섭이 계속되었고 1942년에는 보좌 조인환 신부가 사소한 일로 투옥되었으며, 일제 당국이 매산 언덕에 신사를 세우려 한 일도 있었다.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1943년 일제가 매산 언덕에 신사를 건립하려 하자 부이용 신부가 터를 닦던 곳에 「무염시태 기적의 패」를 묻고 공사 중단을 청하며 기도했고, 공사 중 여러 기상이변으로 공사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고 적는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의 교서도 매괴성모광장이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터로 지정되어 공사를 계획했으나 천둥과 소나기, 벼락으로 계획이 무산된 일을 은총의 표징으로 든다(디지털음성문화대전 인용). 부이용 신부는 프랑스 선교사라는 이유로 용산 신학교에 연금되었는데,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를 1942년,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의 박물관 항목은 1943년 7월로 적는다. 이에 장금구 신부가 2대, 이어 유영근 신부가 3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광복을 맞았을 때 신자들은 부이용 신부가 제대 밑에 숨겨 두었던 태극기를 게양하고 부이용 신부를 맞이했으며, 부이용 신부는 1945년 11월 4대 주임으로 다시 부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이용 신부의 선종과 이후〕 부이용 신부는 1947년 10월에 선종했고(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그 날짜를 10월 25일로 적는다. 뒤를 이어 보좌였던 박고안 신부가 주임에 임명되어 6·25전쟁을 겪었고, 1953년 3월 매괴학교는 매괴상업학교로 바뀌었다. 이 학교는 1966년 여자 중학교를 병설해 매괴여자중·상업학교로 인가받았으며 국민학교는 1972년에 폐교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1953년 감곡성당이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관할하는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로 설정되면서 그해 9월 파디(James Pardy) 신부가 메리놀회 신부로는 처음 부임했고, 1958년 6월 청주교구가 설정되기 이전까지 감곡성당은 서울교구에 속했다(디지털음성문화대전). 1986년 본당 설립 90주년에는 성모 동산을 정비하고 부이용 신부 입상을 제작·축성했으며 《감곡 본당 90년사》를 편찬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8호 지정은 본당 설립 100주년이던 1996년이다(디지털음성문화대전).
〔충청북도의 모본당〕 감곡 본당은 충청북도의 모본당으로 여러 본당을 낳았다. 1920년 고마리 본당(증평 본당의 전신), 1932년 청주 본당(수동 본당의 전신), 1945년 충주 본당, 1957년 무극 본당(현 금왕 본당)이 분할·설립되었고, 이로부터 다시 여러 본당이 갈라져 나갔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음성문화대전은 이 성당이 1896년 프랑스 부이용(임가밀로) 신부에 의해 충청북도에서 첫 번째, 국내에서 18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며 신부·수녀·수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당으로 알려져 있다고 적는다.
〔부이용 신부〕 디지털음성문화대전에 따르면 부이용 신부는 1869년 프랑스 남서부 타르브교구 비에유 아듸르에서 태어났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3년 서품을 받고 곧바로 입국했으며 1894년 여주 부엉골에 부임했다. 1896년 감곡 본당을 세워 1대 신부가 된 이래 1947년까지 51년 동안 사목했다. 같은 항목은 그가 한불조약 이후 입국해 고종에게서 직접 태극기를 하사받았다고 적으며, 이 감곡성당 소장 태극기는 사진만 남아 있고 원본은 1950년경 충북도청에서 빌려 간 뒤 행방을 알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 말은 “성모여, 저를 구하소서”였고, 묘소는 성당 안에 마련되었다.
〔성모 순례지 승인〕 디지털음성문화대전에 따르면 2006년 10월 7일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가 감곡 본당의 주보인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을 맞아 교서를 발표하고 교회법 제1230조와 제1232조에 따라 본당 설정 110주년을 맞은 감곡성당을 매괴 성모 순례지로 승인했다. 이는 1991년 10월 1일 성모께 봉헌된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에 이어 한국 천주교 사상 두 번째 성모 순례지이다. 청주교구는 2006년 10월 19일 감곡성당 매괴성모광장에서 성모 순례지 선포식과 성체거동, 성체강복을 진행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청주교구가 2006년 감곡성당을 성모순례지성당으로 지정했다고 적는다.
〔교세와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896년 1,375명, 1924년 1,911명, 1937년 2,150명, 1983년 2,514명, 1993년 3,433명이다. 관할 구역은 음성군 감곡면·생극면과 중원군 앙성면으로 적혀 있다. 역대 신부는 초대 부이용 가밀로(1896.9~1942), 2대 장금구 그리소스토모(1942~1943), 3대 유영근 요한(1943~1945.11), 4대 부이용 가밀로(1945.11~1947.10), 5대 박고안 프란치스코(1947.10~1953.9), 6대 파디(J. Pardy) 제임스(1953.9~12), 7대 레이(J. Ray) 제임스(1953~1959), 8대 리안(F. Ryan) 프란치스코(1959~1963), 9대 아헤른(W. Ahearn) 윌리암(1963~1968), 10대 김병철 베네딕도(1968.10~1969), 11대 플레밍(A. Fleming) 알프레도(1970~1976), 12대 김광명 아우구스티노(1976.8~1979), 13대 곽동철 요한(1979~1981), 14대 정충일 안토니오(1981), 15대 윤기국 요한(1981.9~1983.5), 16대 김광혁 베드로(1983.10~1986.10), 17대 장인산 베르나르도(1986.10~), 18대 김권일 도나도(1989.6~1991.1), 19대 조성학 라우렌시오(1991.1~1993.4), 20대 손병익 루가(1993.4~)로 이어진다(한국가톨릭대사전).
건축과 공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시잘레(Chizallet) 신부가 설계한 길이 40m, 넓이 15m, 종탑 높이 36.5m의 고딕식 건축물이다. 삼랑식 장방형 평면에 열주와 천장으로 신랑과 측랑이 뚜렷이 구분되며 라틴 십자형이다. 정면 파사드는 세 개의 종탑 형태를 유지하고, 중앙 종탑의 첨탑은 매우 길며, 정면 출입구는 중앙 종탑 하부의 뾰족 아치 포치이다.
내부 공간은 종탑부 1베이와 6개의 회중석 베이, 2개의 성단 베이, 5각으로 꺾인 앱스와 그 주위로 이어지는 보회랑의 제의실로 이루어져 있다. 열주는 8각 석조기둥이고 기둥 위쪽에는 큰 사각 받침이 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대 정면에는 본당 주보인 ‘매괴 성모상’이 설치되어 있는데, 한국전쟁 때 인민군에게 총탄 7발을 맞았다고 전해지며 프랑스 루르드 성지에서 제작되어 1930년에 안치된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봉훈 주교의 교서는 공산당원들이 이 성모상에 총을 쏘았으나 7군데 탄흔이 남는 가운데도 파괴되지 않았다고 적는다(디지털음성문화대전 인용).
매괴박물관은 1934년에 지은 옛 사제관을 개축해 2002년 10월 개관한 3층 건물이다(디지털음성문화대전). 1914년 국내 첫 성체 거동 때부터 쓴 성광과 금색 제의, 정약종이 지은 「주교요지」 1906년판 등을 소장하고, 항온·항습 시설을 갖춘 수장고에 250여 점의 유물이 있으며, 3층 다락방에는 성체조배실이 있다. 박물관 항목은 다섯 개의 전시실을 소개하며, 1930년 대성당이 완공된 뒤 프랑스 루르드에서 주조해 종탑에 안치한 세 개의 종(벨라뎃다·데레사·마리아)이 일제강점기 말 쇠붙이 공출로 흩어졌다가 광복 후 모두 성당으로 돌아왔고, 현재 벨라뎃다 종은 종탑에 걸려 있고 마리아 종과 데레사 종은 박물관 1층과 2층에 보관되어 있다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매괴박물관: 감곡성당 안에 있는 박물관이다(디지털음성문화대전).
- 매괴학교: 1907년 부이용 신부가 세운 매괴학당에서 비롯되었으며, 1953년 매괴상업학교로 바뀌고 1966년 매괴여자중·상업학교로 인가받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음성문화대전).
- 부엉골 본당(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부평리): 감곡 본당 설립 이전 이 지역을 관할하던 본당으로 1896년 폐지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분가한 본당: 증평(고마리), 수동(청주), 충주, 금왕(무극) 본당(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감곡 본당”. 1896년 9월 17일 장호원 본당 설립, 부엉골 본당 이전, 1903~1904년 첫 성당, 학교 설립, 1930년 성당 신축, 일제 말기, 분가 본당, 교세와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95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음성 감곡성당”.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1903년 한옥 성당, 시잘레 신부 설계의 고딕식 성당 구조, 매괴 성모상, 2006년 성모순례지성당 지정.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001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음성문화대전 “충청북도 천주교 발상지, 감곡매괴 성모순례지성당”. 부지 확보 경위, 본당 연혁, 부이용 신부, 매괴박물관, 2006년 성모 순례지 승인.
https://www.grandculture.net/eumseong/toc/GC01102315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음성문화대전 “과거, 현재, 미래가 어우러진 음성의 박물관”. 부이용 신부와 감곡성당의 연혁, 1904년 봉헌, 1930년 신축, 1953년 이후 관할, 문화재 지정, 매괴박물관 전시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eumseong/toc/GC0110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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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감곡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9:55. https://missamap.com/ko/kr/cheongju-gamgok-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