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양산성당은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이다. 1967년 12월 27일 양산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물금·웅상·덕계 성당 등을 분리시킨 양산 지역의 모 본당이다.

역사

〔전사와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기해박해와 병오박해 때부터 소수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지금의 양산 본당 관할 구역에서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고, 병인박해로 탄압이 심해지자 많은 신자들이 원효산 동쪽 범실(현 양산읍 호계리) 등 깊은 산간 벽지로 이주해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1884년에는 병인박해 때 대구에서 피난 온 남 가롤로 일가와 김 요한, 박 마리아 등 60여 명의 신자들이 범실 공소를 설립했다. 이어 1896년 11월 대석 공소(현 양산읍 상북면)가 설립되었고, 1923년에는 남부동 변한준(프란치스코)의 집에서 양산 공소가 설립되었다. 1927년 5월 언양 본당이 설립되면서 부산진 본당 관할이던 이 공소는 언양 본당 관할이 되었다. 이후 신자 수가 늘자 대구 대목구는 양산 지역에 본당을 세우기로 계획하고 1936년 양산읍 중부동에 성당 부지 902평을 마련했으나 일제의 종교 탄압으로 성당을 설립하지 못했다. 양산신문은 양산성당이 1921년 양산 공소 개설을 시작으로 한다고 적어 한국가톨릭대사전의 1923년과 다르게 서술한다.

〔본당 승격 준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광복 후 1947년 강태원(빈첸시오)이 양산읍 북부동의 건물을 매입하고 다시 공소의 본당 승격을 시도했으며, 1957년에는 공소를 양산읍 북부리로 이전함에 따라 공소가 삼랑진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50년대 말 부산 대목구가 ‘1군 1교회 정책’을 추진하자 1958년 당시 양산 공소를 관할하던 동래 본당 3대 주임 김준필(아우구스티노) 신부는 현 본당 소재지의 가옥을 매입하는 등 본당 설립을 추진했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도 1958년 양산읍 북부리(현 본당 자리) 가옥을 매입해 기존 공소를 이전했으며, 사제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본당 설립이 지연되었고, 1963년 공소에 인보성체회 수녀가 부임해 전교활동을 시작했다고 적는다.

〔본당 승격과 성당 신축〕 1967년 12월 27일 양산 공소는 본당으로 승격되어 초대 주임으로 박유식(안드레아) 신부가 부임했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공소 회장 황진영을 비롯한 신자들이 협력하고 동래 본당 김준필 신부의 도움을 받아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당시 성당 건물과 사제관이 없어 박유식 신부는 1968년 4월 1일 신축 공사 착공식을 거행해 같은 해 11월 3일 완공했으며,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를 2층 성당(117평)으로 적는다. 1969년 11월에는 양산 본당 관할이던 물금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물금, 가산, 석산 등이 물금성당으로 분리되었다(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11월 19일로 적으며, 당시 양산성당 신자는 총 421명이고 대석 공소와 호계 공소가 소속되어 있었다고 적는다). 양산신문은 1970년에 현 위치의 양산성당 성전을 준공했다고 적는다.

〔1970~1980년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3대 주임 유창호 신부가 1973년 2월 성당 건물 안에 어린이집을 설립했으나 같은 해 12월 신병 치료로 전임했다. 이갑수(가브리엘) 주교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수녀 3명을 파견해 신부 공석인 본당과 공소, 어린이집을 돌보게 했고, 이듬해 6월 6대 주임으로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속 에스피노자 신부가 부임하면서 1975년 9월 수녀원은 폐쇄되었다. 에스피노자 신부는 1974년 6월 부산교구 성년 대회를 양산에서 개최했다. 1980년부터 양산 지역에 공단이 조성되면서 인구가 급증하자 7대 주임 이옥군 신부는 가정 방문 등으로 냉담자를 회두시키고 사목 협의회·성모회·레지오 마리애 등 여러 단체를 조직했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1980년 이옥군(다태오) 신부가 주임으로, 박태식(프란치스코) 신부가 보좌로 부임해 양산성당에서 처음으로 신부 2명이 일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8대 주임 박태식 신부는 1981년 2월 사제관 및 교리실 공사를 시작해 9월에 2층 건물(53평)을 완공했고(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9월 25일 완공으로 적는다), 10대 주임 박제원 신부는 1984년 1월 예수 성심 전교 수녀회 분원을 마련했다. 11대 주임 이기정 신부는 1988년 6월 교육관 공사를 시작해 11월에 2층 건물(224평)을 완공했고 교육관 동쪽에 성모 동굴도 완공했다.

〔199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92년 7월 역대 신부와 수녀들을 초청해 본당 설립 25주년 행사를 열었다. 15대 주임 장효강 신부는 1996년 9월 성당 신축을 계획하고 이듬해 4월 사제관·수녀원 공사를, 9월에 교육관 공사를 시작해 1998년 8월 사제관·수녀원 건물(132평)과 교육관(73평)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어 새 성당 신축 공사를 시도했으나 재정상의 어려움으로 하지 않기로 했다. 대사전은 1999년 6월부터 양산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신자 수가 급격히 늘 것에 대비해 대책을 마련해야 할 전망이라고 적는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에 따르면 1996년 웅상성당, 1999년 덕계성당이 분리되었고, 건물이 노후하고 협소해지자 2005년 7월 9일 새 성전 기공식을 거행해 2006년 12월 17일 새 양산성당 봉헌식을 가졌다. 양산신문은 2011년 남양산성당, 2014년 북양산성당이 분리되었다고 적는다.

〔신앙 활동〕 디지털양산문화대전에 따르면 2000년 4월 순교자 김종권 시몬 단비 제막식을 거행했고, 양산성당은 매년 성지순례를 실시해 순교 정신을 고양하며 순교자 현양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양산 지역에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성당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교구가 중점 사업으로 펼치는 소공동체 모임은 11개 구역 50개 반에서 매월 열리며, 청년회·자모회·삼덕회·장년회·M.E·성령기도회·셀기도회·연도회·예수성심회·군종후원회·성소후원회·복사단자모회·복사단·예비자교리반·꾸리아·반석축구회·성가대·제대회·성모회 등의 단체가 활동한다고 적는다. 양산신문은 2025년 6월 29일 양산성당이 ‘제58회 본당의 날 축제 한마당’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관할과 교세〕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67년 489명, 1972년 284명, 1978년 520명, 1982년 729명, 1989년 1,432명, 1993년 2,104명, 1999년 2,804명이다. 당시 관할 구역은 상북면 전 지역과 하북면, 동면 일부 지역이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의 “양산성당” 항목은 현재 관할구역을 양산시 강서동·삼성동·중앙동·동면·상북면·하북면 등으로, 신자 수를 4,428명으로 적고, “천주교” 항목은 2007년 12월 31일 현재 신자 수를 4,139명으로 적는다. 대사전은 주보를 성모 성심으로,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성모 신심’을 주보 성인으로 모신다고 적는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박유식 안드레아(1967.12~1971.10), 2대 왕영수 프란치스코(1971.10~1972.11), 3대 유창호 토마스(1972.11~1973.1), 4대 이홍기 요한(1973.7~11), 5대 김만수 요한 보스코(1973.11~1974.6), 6대 에스피노자 요셉(1974.6~1980.2), 7대 이옥군 타데오(1980.2~1981.2), 8대 박태식 프란치스코(1981.2~1982.2), 9대 이병만 요셉(1982.2~1983.2), 10대 박제원 알베르토(1983.2~1986.2), 11대 이기정 안드레아(1986.2~1989.1), 12대 이옥군(1989.1~1990.2), 13대 한영일 니콜라오(1990.2~1992.2), 14대 김옥수 도미니코(1992.2~1995.2), 15대 장효강 안토니오(1995.2~1999.1), 16대 김종엽 바르나바(1999.1~)가 부임했다.

건축과 공간

현 성당은 2006년 12월 17일 봉헌되었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양산성당이 부지 면적 3,033㎡, 연면적 2,709㎡ 규모의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이라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본당 시설로 1968년 건립한 2층 성당(117평), 1981년 완공한 사제관 및 교리실(53평), 1988년 완공한 교육관(224평)과 교육관 동쪽의 성모 동굴, 1998년 완공한 사제관·수녀원(132평)과 교육관(73평)을 적는다.

양산성당에는 순교자 김종권 시몬 단비가 세워져 있다(디지털양산문화대전).

관련 장소와 인물

  • 물금성당: 1969년 11월 양산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양산문화대전).
  • 웅상성당(1996)·덕계성당(1999)·남양산성당(2011)·북양산성당(2014): 양산성당에서 분리된 본당이다(디지털양산문화대전, 양산신문).
  • 김종권(시몬): 양산 지역 최초의 신자로 병인박해 때 희생된 인물이다. 디지털양산문화대전은 동면 금산리 곰말마을에서 공소를 열고 천주교를 전파하다 병인박해 때 참수되었다고 적는다.
  • 범실 공소(1884)·대석 공소(1896): 양산 지역의 초기 공소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언양성당·동래성당·삼랑진성당: 양산 공소를 각각 1927년 이후, 1958년경, 1957년 이후 관할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양산 본당”. 1967년 본당 승격, 전사와 공소 시대, 성당·시설 신축 과정,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287
  2.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양산문화대전 “양산성당”. 설립연도와 설립자, 변천, 신축 연도, 분리된 본당, 활동과 현황.
    https://yangsan.grandculture.net/yangsan/toc/GC01400424
  3.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양산문화대전 “천주교”. 양산 천주교의 시작과 공소 설립, 김종권 순교, 관할 교구 변천, 주요 성당.
    https://yangsan.grandculture.net/yangsan/toc/GC01400418
  4. 양산신문, “양산성당 제58회 본당의 날 축제한마당”(2025.06.30). 양산공소 개설부터 본당 승격, 성전 준공, 분리된 본당 서술.
    https://www.yangsa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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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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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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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양산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0:44. https://missamap.com/ko/kr/busan-yangsa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