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만덕성당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으로, 1981년 5월 31일 구포 본당에서 분리·신설되었다. 수호성인은 성령(성령강림)이며, 1975년경 초량동 철거민이 만덕동에 이주해 온 데서 시작되어 공소 시대를 거쳐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역사

〔공소의 시작〕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부산시가 구포 본당 관할이던 만덕동에 1975년경부터 초량동 철거민들을 입주시켰고, 신자가 40여 명에 이르자 구포 본당의 이옥군(타대오) 신부가 신자 가정을 방문해 미사를 집전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75년 말 초량동 철거민이 이주해 오면서 신자가 생겼다고 적는다.

정착 지역이 넓어지고 신자도 늘자 1976년 11월 17일 이 지역 신자들은 구포 본당의 송기인(베드로) 신부를 주축으로 신덕동 이주민과 도시 확장에 따른 교세 신장에 대비해 성당 신축 허가를 교구청에 요청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교구는 1977년 2월 만덕동의 토지 400평을 성당 부지로 매입하고 그해 6월 공소 건물을 완공했다. 같은 해 8월 15일 첫 미사를 봉헌한 뒤 전용주(베드로)를 회장으로 만덕 공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같은 시기를 1977년으로 적으며 교구가 성당 부지 1,320㎡를 매입하고 대지 관리를 위해 125㎡의 콘크리트 건물을 지어 공소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주임 신부가 매주일 공소를 찾기 어려워지자 부산교구장 이갑수(가브리엘) 주교는 당시 김해 공군 군종 신부였던 백남용(바오로) 신부에게 1978년 5월 1일부터 이듬해 8월 23일 예편할 때까지, 이어 강영돈(라우렌시오) 군종 신부에게 1980년 7월 예편할 때까지 공소를 맡겼다. 그 뒤에는 교구청의 해양 사목 지도 신부였던 파이퍼(파명건) 신부가 본당 승격 때까지 매주 미사를 집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같은 출처에 따르면 1977년 9월 레지오 마리애 상아 보탑 쁘레시디움이 창단된 뒤 이듬해 11월 청년회, 애덕의 모후 쁘레시디움, 1980년 8월 인자하신 모후 쁘레시디움 등이 차례로 조직되었다.

〔본당 설립〕 만덕동을 중심으로 주택가가 형성되고 인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신자가 급증하자 1981년 5월 31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날 성 골롬바노 외방선교회 소속 호반 브렌단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했다고 적는다. 본당의 관할 구역은 만덕동 전역과 덕천동 일부였다(한국가톨릭대사전).

〔첫 성당〕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초대 주임 호반 신부는 1982년 4월 성당과 사제관 신축 공사에 착공해 그해 12월 대지 400평에 건평 87평의 성당을 완공했고, 이듬해 3월 6일 부활 대축일에 축복식을 거행했다. 호반 신부는 본당 사목 협의회의 민주적 운영을 유도했고, 근로 학생을 위해 봉사하는 대학생들에게 지하 교리실을 빌려 주었으며 장례 미사 때 스님의 독경을 허용하기도 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신자 증가로 성당 신축이 필요해져 착공했고 1983년 3월 6일 신축 성당 축성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역대 주임의 사목〕 2대 윌리엄 신부는 신심 단체 활성화와 신자 재교육에 힘썼다. 3대 윌름슨(진만복) 제라르도 신부는 전 신자의 모금으로 1985년 8월 사무실과 수녀원을 각각 신축했고, 한국 전통 명절 예식을 존중했으며 한국 순교 성인 공경에도 힘썼다. 또 1986년 9월부터 지역 주민과의 유대를 위해 한마당 놀이를 계속 열고, 물물 교환 바자회로 남은 의류를 산청 나환자촌에 전달했으며 병원·고아원·월남 난민촌을 자주 방문하고 연극 공연을 통한 전교 활동도 했다. 첫 한국인 사제로 부임한 4대 박제원 알베르토 신부는 구역별 반 모임의 활성화를 꾀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새 성당 신축〕 신만덕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 신자가 늘면서 성당이 다시 좁아졌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93년 11월 현 성당 부지 2,340㎡ 정도를 매입하고 이듬해 3월에 착공했으나 IMF 영향으로 건축 회사가 부도가 나 공사가 일시 중단되었으며, 신자들의 단결로 1997년 2월 16일 새 성전 축성식을 가졌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1990년대 중반 서술)은 8대 주임 김현영 신부가 1993년 7월 현 성당 인근 부지 650여 평을 마련하고 1995년 3월 15일 이갑수 주교의 주례로 성당 신축 기공식을 가졌으며, 1996년 초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신자들의 노력으로 8월 재개되었고 공사비 절감을 위해 신자들이 직접 공사 현장에 참여하기도 했다고 적는다. 두 출처는 착공·기공 시점이 다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완공 예정인 새 성당이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사제관, 수녀원, 교리실, 주차장, 영안실을 갖출 계획이라고 적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의 기관 항목에는 이 신축 성당으로의 이전일이 1997년 2월 13일로 기재되어 있다.

〔교세와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의 교세는 1981년 710명, 1985년 1,464명, 1988년 2,103명, 1991년 3,286명, 1994년 4,363명이다. 같은 출처는 관할 구역 신자 대부분이 철거 이주민이며 인근 사상 지역 공단의 공장 근로자도 많다고 적는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새 성당 신축의 여파로 오랫동안 지역 복음화 사업보다 본당의 내실화에 중점을 두었다. 2013년 현재 교우 수는 4,950명이고, 연도회, 안나회, 모니카회, 제대회, 반석회, 대건회 등 단체가 있으며, 대지 2,350㎡ 정도에 성당·강당·사제관·수녀원 등의 건물 면적이 1만 5,810㎡ 정도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90년대 중반 신심 단체로 대건회, 교사회, 청년회, 안나회, 모니카회, 제대회, 성가대, 전례 봉사자회, 복사단, 빈첸시오 아 바울로회, 연령회, 성모회, 울뜨레야, M.E., 교황청 전교회와 레지오 마리애 2개 꾸리아 50개 쁘레시디움을 든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구포 본당: 만덕 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호반(Hoban) 브렌단 신부: 성 골롬바노 외방선교회 소속으로 만덕 본당의 초대 주임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역대 주임(한국가톨릭대사전, 1990년대 중반 서술 기준): 초대 호반 브렌다노(1981.5~1984.5), 2대 윌리엄 요셉(1984.5~1985.4), 3대 윌름슨 제라르도(1985.4~1988.1), 4대 박제원 알베르토(1988.1~1990.2), 5대 정환국 알로이시오(1990.2~1991.2), 6대 김승주 요한 그리소스토모(1991.2~1992.2), 7대 이기정 안드레아(1992.2~1993.2), 8대 김현영 마태오(1993.2~).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만덕성당”.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1981.5.31.), 신축 성당 축성식(1983.3.6., 1997.2.16.),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0772
  2. 한국가톨릭대사전, “만덕 본당”(4권). 공소 시대 전개, 본당 설립, 첫 성당 건립, 역대 주임 사목, 교세 통계와 역대 주임 명단.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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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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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만덕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3:45. https://missamap.com/ko/kr/busan-mandeok-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