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구포성당은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으로, 1958년 5월 범일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다. 수호성인은 성녀 소화 데레사이며, 낙동강 수로 교통의 중심지였던 구포 지역의 복음화를 이끌어 왔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세기 박해 때마다 서울·경기·충청 등 중부 지방에서 남쪽으로 피신해 온 신자들 가운데 일부가 밀양·양산·김해·진영 등지로 피신했고, 수로 교통의 중심지이자 상업 도시였던 구포에도 많은 신자가 정착해 공소를 이루었다고 설명한다. 구포공소가 범일본당에 속해 있던 1932년의 신자 수는 44명이었으며, 범일본당 주임 줄리앙 신부가 1년에 두 번씩 방문해 공소 예절을 거행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구포 지역이 낙동강 수로 교통의 중심지였으므로 병인박해 이전부터 신자들이 정착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하고, 개항 이후 음정골과 숙등 등지에 살던 신자들이 공소 예절을 시작했다고 적는다. 1945년 해방 뒤 일본에서 귀환한 동포 신자들이 구포 연동에 자리 잡으면서 공소가 활발해졌고(부산역사문화대전), 연동의 교우 김 안나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거행하던 윤신술, 이상만 등이 대구교구 서정길 주교를 찾아가 건물 구입 자금을 요청한 끝에 심상태의 협조로 현 구포1동 453-1의 대지 200여 평을 매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6·25 전쟁 이후 피란 온 신자들이 합류해 신자가 늘었고 1956년경 구포동 453-1번지의 대지 660㎡, 건평 132㎡ 기와집을 사들여 공소로 썼다고 전한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57년경 본당 승격을 청원해 1958년 5월 29일 범일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다고 적고,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958년 5월 31일 유봉운(야고보)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함과 동시에 구포성당이 설립되었다고 적어 설립 날짜 표기가 다르다. 설립 당시에는 공소 건물을 본당 건물로 쓰며 미사를 봉헌했고, 부산교구청의 지원을 받아 구포동 417-2의 농경지를 본당 부지로 매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 부지를 약 3,960㎡의 대지라고 설명하며, 구포성당이 양산·물금·김해 지구까지 포함해 부산 서쪽 지역 복음화의 전진기지가 되었다고 적는다.

〔김해본당 관할 공소 시기와 성전 건립〕 1960년 1월 초대 주임 유봉운 신부가 전임되면서 구포는 약 3년 동안 김해본당 소속 공소가 되었다가 1963년 1월 윤예원(토마스) 신부가 부임하면서 본당으로 환원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윤예원 신부는 성당 건립 기반이 필요하다고 보고 교구장 최재선(요한) 주교에게 건의하고 각계의 지원을 받아 전 신자와 합심해 1965년 성당을 완공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주변 공군 부대의 도움과 교육청의 지원으로 1965년 9월 25일 현 성전이 완공되었다고 적고, 부산광역시 북구청 관광 안내도 신자들과 주변 공군 부대, 교육청의 지원으로 1965년 지금의 성전이 완공되었다고 소개한다.

〔사업과 분가〕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1966년 지역 문화 사업과 복음 전파의 방편으로 방울유치원과 구포신용협동조합을 설립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71년 5월 포항 예수성심수녀회 분원을 개설하고 지역 문화 사업의 일환으로 방울유치원을 설립했으며, 전교 활성화를 위해 사상·화명·대동·만덕 등에 공소를 세웠다고 적는다. 광범위한 관할 지역과 늘어나는 신자 때문에 1967년 양산성당, 1969년 물금성당, 1975년 사상성당, 1981년 만덕성당, 1986년 주례성당이 분리되었고, 1987년 교육관과 사제관, 수녀원을 신축한 뒤 1992년 화명성당, 1998년 금곡성당이 분리되었다(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7년 3월 교육관 건립을 시작해 9개월 만에 완공했고, 1990년 9월 화명 지역에 새 성당 공사를 시작해 1992년 2월 화명본당을 분리했으며, 1992년 6월 교육관에 ‘나눔의 집’을 설치해 인근 행려자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 왔다고 적는다. 구포성당은 성소의 못자리로서 20여 명의 사제와 수십 명의 수녀를 배출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본당의 관할 구역이 구포1~3동, 덕천1~3동, 모라1·2동, 대저1·2동, 경남 김해군 대동면이었다고 적고(1993년까지의 서술), 신자 수가 1959년 1,161명, 1968년 758명, 1978년 1,376명, 1986년 3,743명, 1993년 5,212명이었다고 전한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2008년 본당 설립 50주년을 계기로 신앙 성숙과 지역 복음화에 매진하고 있으며 영화 상영, 연극 공연, 음악회 등 문화 행사로 지역민과 함께하고 있다고 적는다. 2013년 현재 신도 수는 4,655명, 대지 면적은 4,026㎡, 건평은 1만 617㎡ 정도이며 주요 건물은 성당과 교육관, 사제관, 수녀원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건축과 공간

부산광역시 북구청 관광 안내는 구포성당이 특히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유명하며, 독일의 신부이자 건축가인 알빈이 배를 본떠 만든 성당이라고 소개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역대 주임신부(한국가톨릭대사전, 1993년 서술 기준): 초대 유봉운(야고보, 1958.5~1960.1), 2대 윤예원(토마, 1963.1~1965.12), 3대 이영식(히지노, 1965.12~1972.2), 4대 이상호(라이문도, 1972.2~1975.5), 5대 이옥군(타대오, 1975.5~1976.11), 6대 송기인(베드로, 1976.11~1978.6), 7대 양덕배(요한, 1978.6~1981.2), 8대 김유재(그레고리오, 1981.2~1984.7), 9대 박오현(실베리오, 1984.7~1985.9), 10대 김평겸(타대오, 1985.9~1992.2), 11대 이기정(안드레아, 1992.2~1993.2), 12대 안효성(시몬, 1993.2~).
  • 범일본당: 구포가 공소로 속해 있다가 1958년 분리된 모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양산성당, 물금성당, 사상성당, 만덕성당, 주례성당, 화명성당, 금곡성당: 구포성당에서 분리된 본당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구포성당”. 공소 시대, 본당 설립과 성전 완공, 분가 과정,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0731
  2. 한국가톨릭대사전, “구포 본당”(2권). 설립일, 주보성인, 공소 시대, 역대 신부, 교세 통계, 관할 구역.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60
  3. 부산광역시 북구청, 관광 안내 “구포성당”. 성당 설립(1958), 1965년 성전 완공, 알빈 신부의 건축.
    https://www.bsbukgu.go.kr/tour/index.bsbukgu?menuCd=DOM_000000404003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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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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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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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구포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3:10. https://missamap.com/ko/kr/busan-gupo-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