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정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괴정성당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으로, 1961년 6월 1일 괴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어 설립되었다. 수호성인은 루르드의 성모이며, 사하구 괴정·하단 지역 복음화의 첫 본당으로서 여러 본당을 분가시켰다.

역사

〔지역 배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괴정’이라는 이름이 조선 후기 포악한 첨사의 폭정에 항거하던 마을 사람 8명이 체포되어 참수당한 곳에 있던 정자나무를 베어 버렸는데도 싹이 돋았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설명한다. 이 지역은 1942년 10월 1일 부산에 편입되었고, 6·25 전쟁으로 영주동·동광동 일대의 판자촌과 용두산 일대의 화재 난민이 이주해 오면서 인구가 급증해 새로 생긴 마을, 곧 신촌으로 불렸다. 부산역사문화대전도 1942년 사하면이 부산에 편입되면서 괴정·하단 지역이 점차 도시의 면모를 갖추었고, 6·25 전쟁 이후 피란민과 1960년대 아파트 개발 붐으로 인구가 밀집되면서 신자도 늘어 괴정성당이 설립되었다고 평가한다.

〔공소 시대〕 부산역사문화대전은 1890년(고종 27) 성도 서호영(토마스)이 김해군에서 사하구 하단동으로 이주하면서 이 지역의 신앙이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1926년 늘어나는 신자들을 위해 하단동 439번지 서요한의 집을 공소로 지정하고 부산진본당 주임 신부가 정기적으로 사목 방문을 했으며, 이후 공소는 회장 집으로 옮겨 갔다가 1956년 10월 약 66㎡의 공소 건물을 축성했다. 한편 신촌(괴정동)에서는 6·25 전쟁 이후 피난민으로 신자가 급증해 중앙성당 주임 곽 제르바시오 신부가 괴정동 467번지에 공소 부지를 마련하고 330㎡ 규모의 성전 건물을 세워 1958년 5월 1일 축성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괴정공소 설립을 1952년 김성곤(야고보)을 중심으로 한 신자들이 괴정동 428번지의 대지를 사들여 주택 한 동을 공소로 쓰면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신자가 늘자 1954년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공소를 신축했으며, 중앙본당의 콕센 신부가 마련한 1,131평 부지에 100평 규모의 성전을 건립해 1958년 5월 1일 축성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괴정본당이 1961년 6월 1일 서대신본당에서 분리·설립되었다고 적고,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같은 날 괴정공소를 중심으로 주변 공소를 통합해 괴정성당을 설립하고 메리놀선교회 소속 곽 제르바시오 신부가 초대 신부로 부임했다고 적는다. 이로써 사하구 괴정동·하단동 지역은 71년의 공소 시대를 마감했다(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지역 개발과 함께 신자가 급증하자 전교회장 4명을 임명해 전교와 어린이·성인 교리 지도를 분담시켰다.

〔성전 신축〕 부산역사문화대전은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한 탓에 성당이 신자 수에 비해 협소해 1969년 5월 26일 성전 신축 기공식을 열었으나 재정 사정으로 공사가 길어져 1974년 2월 10일 가까스로 축성식을 가졌고, 신축 성당 덕분에 관할 내 공소는 폐지되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협소한 성당 건물을 193평 규모로 증축해 1974년 2월 10일 축성식을 거행했다고 적는다. 이후 부산시의 도로 확장 계획에 따라 성전 일부가 철거되자 괴정동 1066-1번지에 새 부지를 매입해 성전을 신축하고 1983년 10월 1일 축성했다(두 출처 공통). 새 부지의 면적은 부산역사문화대전이 약 1만 6000㎡, 한국가톨릭대사전이 4,800여 평이라고 적는다.

〔분가〕 부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사하 지구와 다대포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신자가 크게 늘어 1988년 2월 6일 하단성당이, 1997년 2월 1일 다대성당이 분가해 나갔고, 이때 구 성전 건물에 새 성전 건물을 지어 사하성당도 분리되었다. 같은 출처는 괴정성당에서 하단성당, 다대포성당, 사하성당, 장림성당, 몰운대성당 등이 분가했다고 정리한다. 교통 불편과 성당 분가로 괴정성당은 비교적 작은 성당이 되었지만 성전 리모델링과 주변 십자가의 길 정비로 지역 복음화의 터전이 되었다고 한다.

〔본당 묘지와 사업〕 1964년 4월 8일 사하구 구평동 산21번지에 임야를 매입해 본당 묘지를 조성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 임야가 약 9,000㎡이고 사설 공동묘지 설치 허가를 받았으며 사망 신자 200여 기가 안장되어 있고 지금은 양산 천주교 공동묘지를 주로 쓴다고 적으며, 한국가톨릭대사전은 2,730평의 임야라고 적는다. 1971년 2월에는 햇빛유치원을 설립했는데(두 출처 공통), 부산역사문화대전은 이 유치원이 인근은 물론 멀리서도 찾아올 정도로 유명하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1년 5월 전교지를 발간해 지역 복음화에 주력했다고 적는다.

〔교세와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62년 1,926명, 1972년 2,682명, 1982년 6,863명, 1993년 10,223명이다. 관할 구역은 부산시 감천1동, 구평동, 괴정1~4동, 다대동, 신평동, 감천2동 일부였다(1993년까지의 서술). 부산역사문화대전은 본당 설립 50주년을 계기로 괴정성당이 새로운 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고 적고, 2013년 현재 신도 수 7,562명, 대지 면적 약 1만 6000㎡, 건평 약 3,500㎡이며 주요 건물은 성당·사제관·수녀원이라고 전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서대신본당: 괴정본당이 분리되어 나온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중앙본당: 곽 제르바시오 신부가 주임으로 있으면서 괴정공소 성전 부지를 마련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부산역사문화대전).
  • 하단성당, 다대성당, 사하성당, 장림성당, 몰운대성당: 괴정성당에서 분가한 본당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 곽 제르바시오(J. Coxen) 신부: 메리놀선교회 소속으로 괴정본당의 초대 신부이다(부산역사문화대전, 한국가톨릭대사전).
  • 역대 신부(한국가톨릭대사전, 1993년 서술 기준): 초대 곽 제르바시오(1961.6~1962.1), 2대 베니나티 프란치스코(1962.1~1963.7), 3대 석 로베르(1963.8~1967.2), 4대 안 로베르토(1967.2~1967.8), 5대 반 굴리엘모(1967.9~1968.7), 6대 구재국 도날드(1968.8~1971.7), 7대 파명건 다윗(1971.7~1978.9), 8대 이시찬 다니엘(1978.9~1984.1), 9대 정환국 알로이시오(1984.1~1989.2), 10대 박태산 요아킴(1989.2~1992.2), 11대 조용걸 아우구스티노(1992.2~).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산역사문화대전 “괴정성당”. 공소 시대, 본당 설립(1961.6.1.), 성전 신축(1974, 1983), 분가, 본당 묘지, 201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busan/toc/GC04210723
  2. 한국가톨릭대사전, “괴정 본당”(1권). 지명 유래, 공소 설립, 본당 설립, 역대 신부, 교세 통계, 관할 구역.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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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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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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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괴정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3:07. https://missamap.com/ko/kr/busan-goej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