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성당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언양성당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에 있는 천주교 부산교구 소속 성당이다. 1926년 12월 5일 부산(범일) 본당에서 분리·설립된 본당으로 주보는 그리스도 왕이며, 1936년 10월 25일 봉헌된 성당과 사제관은 울산 지역에 건립된 최초의 천주교 성당으로서 2004년 국가등록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교우촌과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경상도 남부 지역에 신앙 공동체가 형성된 것은 1815년 을해박해 이후로 추정되며 언양 지역은 그보다 늦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 지역에는 경남 최초의 공소인 내간월 불당골 공소가 있었는데, 불당골은 김재권(프란치스코)이 박해를 피해 이주해 와 다른 신자들과 신앙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최양업(토마스) 신부와 다블뤼 주교가 차례로 방문하던 1850년대 말에는 언양 일대가 신자들의 집단 거주 지역으로 변해 간월, 죽림(대재, 죽령, 죽림골), 탑곡, 예씨네골, 진목정 등지에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 일설에는 1800년대 초에 이미 교우촌이 형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대사전은 이러한 내용이 교회 측 자료에 전혀 나타나지 않아 근거가 희박하다고 설명한다.

〔병인박해와 공소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언양 지역의 교우촌들은 병인박해 때 심한 타격을 입었다. 문헌에 나타나는 이 지역 최초의 순교자는 김사집(필립보)으로, 1866년 11월 진영 포졸에게 체포되어 이듬해 5월(음력)에 23세로 순교했다. 언양 대재 교우촌에 살던 허인백(야고보), 김종륜(루가), 이양등(베드로) 3명은 1868년 9월 14일(음력 7월 28일) 체포되어 울산 장대에서 순교했다. 박해가 끝난 뒤 1882년 대구(현 계산동) 본당 주임으로 임명되어 경상도 지역을 맡은 로베르(A.P. Robert) 신부가 1883년 살티 공소를 설립했고, 이때 신자는 38명이었다. 이듬해에는 언양읍 공소도 설립되었다. 이 지역은 조조(M. Jozeau) 신부가 1890년 초 부산 절영도에 정착해 부산(초량) 본당을 세우면서 새 본당 소속이 되었고, 1898년 1월경 명례 임시 본당(현 밀양 본당)으로 잠시 이관되었다가 1901년 부산 본당 관할로 돌아갔다. 1904년 6대 주임 르 장드르(L. Le Gendre) 신부 때 살티 공소와 언양읍 공소 외에 순정 공소가 설립되었고 세 공소의 신자는 153명이었다.

〔본당 설립의 준비〕 언양 본당 홈페이지의 연혁에는 1884년 김문옥(요셉)과 김승연(아우구스티노)이 영남 지방에서 처음으로 페낭 신학교에 유학했고, 1886년 대구 본당 창설로 대구 본당 소속 시대가 되었으며, 1888년 언양 본당 설립 기성회가 조직되었고, 1889년 언양 본당과 부산 본당 설립을 논의해 부산(범일) 본당 설립으로 결정되었다고 올라 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박우양(가브리엘)과 김문익(안드레아) 등 지역 신자들의 노력으로 언양 본당이 설립되었다고 적는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26년 12월 5일 언양 본당이 부산(현 범일) 본당에서 분리·설립되고 초대 주임으로 보드뱅(E. Beaudevin) 신부가 부임했으며, 보드뱅 신부가 이듬해 4월 4일 정식 임명을 받고 5월 14일 본당에 부임했다고 적는다. 울산역사문화대전과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1927년 5월 14일 에밀 보드뱅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했다고 적는다. 본당 홈페이지 연혁은 1926년 12월 5일 보드뱅 신부가 초대 신부로 내정되고, 1927년 4월 4일에는 보드뱅 신부의 사제 임명과 본당 창설(공소 16개소)이, 5월 25일에는 언양본당 창설(공소 16개소)이 각각 올라 있다.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언양성당이 부산교구에서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이라고 적는다.

〔성당 신축〕 울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보드뱅 신부는 성전 건축 계획을 밝혔고, 1928년 언양 지역 공소 대표들이 언양지방천주교공교협회를 조직해 모금 운동에 나섰다. 건축 공사는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며 6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착공 시기는 출처마다 다르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와 본당 홈페이지는 1928년 5월 25일 성전 및 사제관 신축 기공식을 열었다고 적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29년 봄 공사에 착수했다고 적는다. 본당 홈페이지 연혁에는 1928년 3월 3일 언양본당 천주공교협회가 창립되었고 1932년 8월 15일 언양성당 준공 기념 대미사가 있었다고도 올라 있다. 1936년 10월 25일 성당과 사제관이 완공되어 드망즈(F. Demange) 주교의 집전으로 봉헌식이 거행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 홈페이지 연혁은 이 축성식을 ‘주례 안주교’로 적는다.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성당이 1936년 10월 26일 완공되었다고 적고 같은 항목에서 10월 25일 축성식을 언급한다.

〔1940~1960년대의 본당 활동〕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40년 10월 성가대, 1952년 8월 성모회가 조직되었고, 1954년 1월 소화유치원을 개원했다. 1956년 4월에는 울산(현 복산) 본당을 분리하고 356명의 교적을 이관했다. 1957년 강당을 마련했고 1962년 성모상을 건립했으며, 같은 해 7월 삼정·유촌·중리·소호 공소의 강당을 신축했다. 본당 홈페이지 연혁에는 1958년 구포 본당을 분립하고 공소 11개를 새로 설립해 총 23개 공소가 되었으며 레지오 마리애 19개 쁘레시디움과 꾸리아가 조직되었다고 올라 있다.

〔1970년대 이후의 시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4년 8월 25일 안나유치원(옛 소화유치원) 건물을 완공했고, 1976년 11월 5일 수녀원을 완공해 축복식을 거행했다. 1979년 11월 18일에는 세 명의 동정녀가 기증한 부지에 기증자의 이름을 따 안나 데레사 회관을 건립했고, 1981년 5월 24일 신용협동조합을 창립했다. 1986년 11월 9일 죽림굴 사적지를 발견했고, 1989년 7월 20일 사제관을 완공한 뒤 이듬해 12월 4일 옛 사제관 자리에 신앙 유물 전시관을 개관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주임 신부의 잦은 이동으로 본당 공동체가 다소 침체했고, 1998년 2월 26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상운 신부가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힘썼다고 대사전은 적는다.

〔본당 홈페이지 연혁의 후속 내용〕 본당 홈페이지 연혁에는 1988년 3월 10일 범굴 발견, 2001년 3월 4일 안나 데레사 교육관 증축 완공, 2001년 11월 11일 성모동굴 봉헌미사, 2007년 1월 14일 인보공소의 본당 승격 첫 미사, 2007년 5월 본당 설립 80주년 기념행사와 뱃머리 복원공사 준공, 2013년 12월 16일 순정공소 100주년 기념미사와 기념비 제막식, 2017년 5월 본당 설립 90주년 기념행사와 성인유해 참배실 개관, 2018년 십자가 동산 석축공사와 성전 지붕 보수 및 도색, 2019년 울주군 천주교 순례길 조성이 올라 있다.

〔교세와 관할〕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57년 1,438명, 1963년 2,188명, 1970년 1,984명, 1976년 1,500명, 1982년 1,729명, 1989년 1,950명, 1994년 2,535명, 1999년 2,916명이다. 당시 관할 구역은 언양읍, 상북면, 삼남면, 두서면, 두동면 전 지역과 양산시 하북면·삼동면 일부였고, 공소는 삼정, 배내, 두동, 전업, 미호, 사촌, 내와, 봉계, 임보, 하선필, 상선필, 직동, 길천, 순정, 궁근정, 살티, 소호 등 17곳이었다.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성당이 건립될 당시 16개 공소를 관할했으나 폐쇄·흡수되어 지금은 살티, 궁근정, 길천, 순정 4개 공소만 남았고, 신자는 남자 1,405명, 여자 1,785명으로 합계 3,190명이라고 적는다.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언양성당이 처음에는 울산 지역 성당의 모성당 역할을 했으며 1956년 울산성당(현 복산성당)을, 최근에는 언양성야고보성당과 인보성당 등을 분리시켰다고 설명한다.

〔역대 주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적힌 역대 신부는 초대 보드뱅(E. Beaudevin) 에밀리오(1926.12~1939.5), 2대 코르데스(M. Cordesse) 마리오(1939.5~1940.4), 3대 프루아드보(R. Froidevaux) 라이문도(1940.4~6), 4대 정수길 요셉(1940.6~1943.2), 5대 유흥모 안드레아(1943.2~1947), 6대 이성만 이냐시오(1948.8~1952.9), 7대 최병선 요한(1952.9~1953.11), 8대 김재석 요셉(1953.11~1956.4), 9대 김영제 요한(1956.4~1962.6), 10대 이돈우 레오(1962.6~1967.1), 11대 신윤우 갈리스도(1967.1~9), 12대 배상섭 요한(1967.9~1971.1), 13대 이동훈 안토니오(1971.10~1972.4), 14대 김성도 모세(1972.11~1976.11), 15대 최영철 알로이시오(1976.11~1979.2), 16대 권지호 프란치스코(1979.2~1980.2), 17대 김승주 요한 그리소스토모(1980.2~1981.2), 18대 하용달 안드레아(1981.2~1983.2), 19대 염봉덕 프란치스코(1983.2~1986.2), 20대 김영곤 안드레아(1986.2~1991.2), 21대 김창대 임마누엘(1991.2~1992.2), 22대 김영규 안셀모(1992.2~1993.2), 23대 황태웅 요셉(1993.2~1994.2), 24대 김정욱 바오로(1994.2~1996.2), 25대 강호성 바오로(1996.2~1998.2), 26대 박상운 바오로(1998.2~)로 이어진다.

건축과 공간

울산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언양성당은 보드뱅 신부가 설계했고 명동성당을 건립한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당 건립을 파리외방선교회가 지원했기 때문에 건축 양식은 파리외방선교회의 도움으로 지은 다른 성당처럼 종탑을 가진 고딕 형식이다. 평면은 측랑 없이 장방형의 신랑만으로 이루어진 단랑식이고, 정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그 위에 종탑을 올렸다. 양쪽 벽에는 5곳에 버팀기둥을 세워 횡압력에 대응했으며 버팀기둥 사이마다 원형 창과 두 개의 아치형 창을 설치했다. 정면과 측면은 석재로 마감했지만 뒷벽은 벽돌로 처리했는데, 이는 신자 수 증가에 대비해 증축하기 쉽도록 배려한 것이며 건축 당시의 열악한 재정 사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이 항목은 설명한다.

굿뉴스 가톨릭정보는 보드뱅 신부가 직접 설계를 맡고 명동 성당을 지은 중국인 기술자들과 6년에 걸친 신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언양 성당(사제관 포함)이 고딕식 형태로 부산교구의 유일한 석조 건물이라고 적는다. 성당 뒷산에서 채취한 화강암으로 벽을 구성했다.

사제관은 평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좌우에 방을 둔 형식이며 현관의 계단으로 2층에 오른다. 건물 전면에 기둥을 세워 삼면이 개방된 베란다를 설치했고 상부 처마가 길게 돌출되어 있다. 앞이 낮고 뒤가 높은 경사지에 자리잡아 정면 1층은 반지하 창고로 쓰였으며, 외벽의 아치형 창은 본당과 같은 형태이고 지붕 위에 돌출된 3개의 지붕창과 굴뚝이 특징적이다(울산역사문화대전). 굿뉴스는 신앙유물 전시관으로 쓰는 이 건물을 성당과 같은 형태의 석조 슬레이트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45평 규모라고 적는다.

문화재 경과로,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소유자가 천주교 부산교구유지재단이며 2004년 9월 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03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고,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변경되었다고 적는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이 문화유산을 ‘울산 언양성당과 사제관’으로 올려 두고 있으며, 2013년과 2016년에 문화재 명칭을 바꾸었고 2007~2008년 본관 보수, 2009년 정밀안전진단 및 종탑 내부 보수, 지붕 도색, 창문 유리 교체, 2014년 본관 전선 정비와 사제관 안전진단 및 보수, 2018년 노후 지붕 도장이 이루어졌다고 적는다. 같은 자료에는 1990년까지 8동의 건물이 신·증축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신앙유물 전시관: 옛 사제관을 1990년 12월 4일 개관한 전시관으로, 언양 지역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해 열었다. 신앙유물과 민속유물 700여 점을 전시하며 1800년대 초기의 천상 모후상, 초기 천주교 포교 서적과 교리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성 앵베르 주교·성 샤스탕 신부의 유해 등이 있다(굿뉴스).
  • 오상선 순교자 묘: 성당 뒷산에 있는 병인박해 순교자 오상선(오한우의 증손자)의 묘소이다(굿뉴스). 굿뉴스는 2010년 설치된 십자가의 길 14처를 따라 화장산 정상 부근에 오르면 성모동굴이 있다고 적는다.
  • 죽림굴 신앙사적지: 1986년 11월 9일 발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본당 홈페이지). 울산역사문화대전은 울주군 상북면에 김아가다묘, 김영제묘, 살티신앙사적지, 죽림굴신앙사적지가 있고 언양읍에 언양성당과 언양신앙사적지유물전시관이 있다고 적는다.
  • 울산(복산) 본당·구포 본당·인보 본당·언양성야고보 본당: 언양 본당에서 분리된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울산역사문화대전, 본당 홈페이지).
  • 보드뱅(E. Beaudevin) 신부(한국명 정도평): 초대 주임으로 성당 신축을 이끌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언양 본당”. 1926년 설립, 관할과 교세, 역대 신부, 공소 시대, 병인박해 순교자, 본당 설립과 성당 봉헌, 이후 시설.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4313
  2. 한국학중앙연구원, 울산역사문화대전 “울산 언양성당과 사제관”. 성당 건립 경과, 건축 형태, 현황과 관할, 문화재 지정과 재지정.
    https://www.grandculture.net/ulsan/toc/GC80050859
  3. 국가유산청,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 “울산 언양성당과 사제관”. 보드뱅 신부 부임, 1928년 기공식, 1936년 축성식, 보수·명칭 변경 연혁.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No=4412601030000&ctptUid=13898859680446301251
  4. 굿뉴스 가톨릭정보, 부산교구 언양 성당. 본당 설립과 성당 건축, 석조 고딕 성당, 신앙유물 전시관, 오상선 순교자 묘.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ctxtOrgNum=2328&menugubun=holyplace
  5. 천주교 언양성당, 성당연혁. 1884~2023년 연혁: 본당 설립 기성회, 1927년 본당 창설, 성당 신축과 축성, 분립 본당, 시설과 행사.
    http://eonyang.pbcbs.co.kr/pbcbs_community_html/program/content.asp?BDIV=%EC%84%B1%EB%8B%B9%EC%97%B0%ED%98%81&MENUDIV=3&PCODE=41
  6. 한국학중앙연구원, 울산역사문화대전 “천주교”. 울산 최초의 성당으로서의 언양 본당, 울주군의 성지·사적지.
    https://www.grandculture.net/ulsan/toc/GC8000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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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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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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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언양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20:05. https://missamap.com/ko/kr/busan-eonya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