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기 성당
개요
풍기성당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리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성당이다. 1930년대 풍기 공소에서 출발해 1980년 1월 10일 영주(현 휴천동) 본당에서 분리·승격되었으며 주보성인은 성 바오로이고 초대 주임은 베르트랑(안덕화) 베드로 신부이다. 현재의 성당은 1996년 5월 봉헌되었다.
역사
〔풍기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32년 11월 14일 대구 대목구장 드망즈(F. Demange) 주교가 풍기 공소를 방문해 전교회장을 선출하고 훗날 신자가 늘 것에 대비해 신부가 거처할 집 한 채를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1934년에는 공소 회장 전대영(베드로)이 한상오(바오로), 배석우(그레고리오), 최병룡(루가), 김철기(안드레아) 등과 함께 공소에서 주일 예절을 가졌다. 디지털영주문화대전은 같은 장면을 권대영이 한상호, 배석우, 최병룡, 김철기 등과 함께 주일 첨례를 보며 풍기공소를 지켰다고 적고, 이로 보아 풍기 공소가 영주 공소(현 휴천동성당)보다 앞선다고 설명한다. 문화대전은 풍기 공소의 건립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없다고 하며, 공소가 예천천주교회(현 예천성당)와 안동 목성동천주교회(현 목성동주교좌성당) 소속이었다가 1958년 영주 공소가 영주본당으로 승격되면서 영주본당으로 이관되었다고 적는다.
〔성당 부지와 건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50년대 후반부터 영주 본당 초대 주임 펠리스(M. Pélisse, 배세영) 신부가 매주 1~2회 풍기 공소를 방문해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풍기읍 성내동 시내의 계림병원장 부인 황영(마리아)이 서울로 이사하며 재산을 팔아 마련한 돈을 펠리스 신부에게 희사했고, 신부는 이 돈으로 성내동 209번지 730평을 성당 부지로 매입하고 프랑스 은인들의 도움으로 1965년 9월 성당 60평과 수녀원 20평을 건립했다. 디지털영주문화대전은 1963년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65년 성당과 수녀원을 건립했다고 적는다. 1966년부터 포항의 예수 성심 시녀회 수녀들이 파견되어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으나 수녀원을 운영할 경제적 여력이 없어 1970년 폐쇄되었다. 1977년 이인희(토마스) 전교회장이 5분 교리와 성가 지도에 힘쓰면서 공소가 활기를 띠었지만 1978년 안동교구의 전교사 제도가 폐지되어 그도 공소를 떠났다.
〔본당 승격〕 풍기 공소는 1980년 1월 10일 본당으로 승격되었고(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영주문화대전) 초대 주임으로 베르트랑 신부가 부임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안동교구 홈페이지의 본당 설립 순서에서 풍기는 22번째이며 설립일은 1980년 1월 10일이다. 1980년 7월 교구청의 지원과 베르트랑 신부·신자들의 힘으로 사제관과 차고를 준공해 신부의 사제 서품 25주년 기념과 함께 축하식을 가졌고, 1983년 6월 주일학교 교리실 22평을 완공했다. 1984년 3월에는 한국 가톨릭 교리 신학원장 이상훈(리오) 신부를 초청해 강좌를 열어 지역민들에게 천주교를 소개했다. 1986년 10월 국도변 도로 확장 공사로 성당 부지 일부가 편입되자 받은 보상금으로 209-10번지의 땅을 매입했고, 1988년 11월 부석 공소 부지 227평을 매입했다.
〔1990년대의 변화와 새 성당〕 1990년 7월 10년간 재임한 베르트랑 신부가 건강 문제로 은퇴하고 2대 주임으로 노엘(R. Noël, 노광명) 신부가 부임했다. 1991년 10월 성당과 사제관을 보수했고 12월 부석 공소를 휴천동 본당으로 이관했다. 노엘 신부는 1992년 2월 심장 마비로 사망했고 3대 주임으로 장현준 신부가 부임했다. 1993년 4월 수녀원을 철쭉아파트 가동 606호에 마련했고 6월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소속 수녀 3명이 본당에 파견되었다. 같은 해 7월 공소 때부터 쓰던 성당이 보수하기 어려울 정도로 낡아 ‘새 성전 건립 추진위원회’를 정식으로 발족했으며, 신부와 신자들의 모금이 결실을 맺어 1995년 3월 대지 750평에 연건평 410평 규모의 성당 건립 기공식을 가졌고 1996년 5월 안동교구장 박석희(이냐시오) 주교의 주례로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4대 주임 이춘우 신부 재임기인 1998년 1월 유아들을 위해 성모어린이집을 개원했다(디지털영주문화대전도 1998년 성모어린이집 개원을 적는다). 디지털영주문화대전은 1993년 청년회를 설립했다고도 적는다. 5대 주임 김상진 신부 재임기인 2000년 10월에는 서울에서 열린 한국 평협 주최 대희년 평신도 대회에서 풍기 본당이 선교 대상을 받았고, 2001년 6월 낡은 담장을 개선했다. 6대 주임 유재준 신부 재임기인 2004년 6월에는 농촌 복음화 운동의 일환으로 농번기에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위해 노력 봉사를 했다.
〔관할 구역과 교세, 역대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풍기읍, 봉현면, 순흥면, 단산면이다. 교세는 1981년 260명, 1985년 439명, 1990년 505명, 1995년 504명, 2000년 582명, 2004년 697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베르트랑(P. Bertrand, 안덕화) 베드로(1980.1~1990.7), 2대 노엘(R. Noël, 노광명) 로제리오(1990.7~1992.2), 3대 장현준 에프렘(1992.2~1996.6), 4대 이춘우 프란치스코(1996.6~2000.1), 5대 김상진 아우구스티노(2000.1~2002.6), 6대 유재준 타대오(2002.6~)이다.
건축과 공간
1965년 9월 건립한 성당은 60평, 수녀원은 20평이었다. 현재의 성당은 대지 750평에 연건평 410평 규모로 1995년 3월 기공식을 갖고 1996년 5월 봉헌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관련 장소와 인물
- 영주(현 휴천동) 본당: 풍기 공소가 1958년 이관된 본당이며, 1980년 풍기 본당이 이 본당에서 분리되었고 부석 공소가 1991년 이 본당으로 이관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영주문화대전).
- 펠리스(배세영) 신부: 영주 본당 초대 주임으로 풍기 공소를 방문해 교리를 가르치고 성당 부지를 매입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베르트랑(안덕화) 베드로 신부: 풍기 본당 초대 주임으로 1980년부터 10년간 재임해 본당의 기틀을 닦았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부석 공소: 1988년 부지를 매입했고 1991년 12월 휴천동 본당으로 이관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예수 성심 시녀회와 선한 목자 예수 수녀회: 각각 1966년과 1993년에 풍기에 수녀를 파견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풍기 본당”(12권). 1980년 1월 10일 분리·승격, 주보, 관할 구역, 교세, 역대 신부, 공소 시대, 성당 부지와 건립, 새 성당 봉헌, 주임들의 활동.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570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영주문화대전 “풍기성당”. 풍기 공소의 시작과 소속 변천, 1963년 부지 매입, 1965년 성당과 수녀원, 1980년 본당 승격, 1998년 성모어린이집.
https://www.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999 - 천주교 안동교구, 관할구역과 본당 분포도. 본당 설립 순서(풍기 22번째, 1980년 1월 10일).
https://www.acatholic.or.kr/sub1/sub1_4.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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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풍기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7:59. https://missamap.com/ko/kr/andong-punggi-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