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창 성당
개요
함창성당은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오동리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성당이다. 1937년경 퇴강 본당 관할의 함창 공소로 시작해 1942년 5월 20일 본당으로 설정되었다고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적으며(디지털상주문화대전은 1948년 승격으로 적는다), 주보성인은 그리스도 왕이다. 1956년부터 성 베네딕도회 신부들이 주임을 맡아 구호와 교육 사업을 펼쳤다.
역사
〔전사와 함창 공소〕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함창 지역에 천주교가 언제 전래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적는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무렵 경상도 서북부에서 전교하던 칼레(A.-N. Calais) 신부가 함창현 문수 마을의 이 요한의 집으로 피신한 사실로 보아 당시 이 지역에 신자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함창은 1882년부터 경상도를 전담한 로베르(A.P. Robert, 김보록) 신부의 교세 통계표에 나타나는데, 1883~1884년 사이 함창 읍내에 11명의 신자가 있었다. 함창 지역은 1894년 9월경 설립된 가실(현 낙산) 본당 관할이 되었다가 1901년 7월 김천(현 황금동) 본당이 설립된 뒤에는 김천 본당 관할이 되었다. 함창읍을 중심으로 새로 설립된 공소들 가운데 퇴강 공소와 공평 공소는 1922년 9월 각각 퇴강 본당과 공평(현 점촌동)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1924년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함창은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고 지역에 초등학교가 있어 부근의 많은 신자들이 이주해 왔다. 이에 1937년경 퇴강 본당 주임 정수길(요셉) 신부가 함창읍 오동리 729-3에 초가를 마련해 함창 공소를 설치하고 전교회장을 파견했다. 공소 집이 좁아지자 일본인 소유의 더 넓은 건물(구향리 15번지)을 매입해 공소를 옮겼다. 1940년 6월 정수길 신부가 전임된 뒤에는 공평 본당의 서형석(프란치스코) 신부가 함창 공소에 거주하며 퇴강 본당 관할 구역까지 담당하다가 1941년 6월 17일 폐결핵으로 선종했고, 이후 상주(현 서문동) 본당 신부가 이 지역을 관리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대구교구는 1942년 5월 20일자로 공평 본당을 공소로 격하시키는 동시에 지리·교통상 유리한 함창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초대 주임 이기수 신부는 함창에 거처할 곳이 없어 우선 공평에 거주했다. 광복 후 신자들의 성금과 이기수 신부의 지원으로 오동리에 성당 부지를 매입했고, 1948년 봄 성당 신축 기성회를 조직해 공소 강당으로 쓰던 건물을 성당과 사제관으로 개축했다. 디지털상주문화대전은 1937년 퇴강본당의 정수길 신부가 함창공소로 설립했고 1948년 8월 함창성당으로 승격되었다고 적는다. 안동교구 홈페이지의 본당 설립 순서에서 함창은 5번째이며 설립일은 1942년 5월 21일로 올라 있다.
〔성당 신축〕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2대 주임 김동한(가롤로) 신부는 부임 후 사목에 필요한 집기와 성구를 공평에서 함창으로 옮겼고, 교세가 급증하자 1949년 2월 23일 성당 건축 기성회를 조직해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3대 주임 강찬형(파스칼) 신부는 1949년 9월 15일 성모유치원을 개원했고 1950년 3월 교구의 도움으로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했으나, 한국전쟁으로 공사 중이던 성당이 파괴되고 쌓아 둔 건축 자재가 모두 소실되었다. 신자들은 돈이 부족해 바깥 벽만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형태로 약 55평의 새 성당을 지었고, 남은 자재로 둥근 모양의 2층 사제관을 지었다. 4대 주임 정삼규(요한) 신부는 이를 보다 완전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교구 지원과 구호 물자 판매 대금, 신자 성금으로 건축 기금을 마련해 공사를 진행했고, 1954년 11월 24일 성당의 봉헌식을 거행했다. 디지털상주문화대전도 1950년 새 성전 건축을 위한 기초 공사를 시작해 6·25전쟁 후인 1954년 11월 24일 성당을 준공하고 축성식을 열었다고 적는다.
〔왜관 감목 대리구와 성 베네딕도회〕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52년 7월 6일 왜관 감목 대리구가 설정되어 베네딕도회가 상주와 문경 지방을 위임받았고, 이에 따라 1956년 함창 본당이 왜관 감목 대리구에 속하게 되었으며 베네딕도회의 에그너(R. Egner, 왕묵도) 레오나르도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했다고 적는다(디지털상주문화대전은 왕묵도 신부의 세례명을 레지날도로 적는다). 에그너 신부는 유급 전교사를 채용해 양정·은척·예주·여물·양범 공소를 설치했고, 1959년 5월 29일 가난한 집 자녀들을 위한 성경 강습소를 설치했다. 이 강습소는 이듬해 3월 5일 교실 2개와 가사실을 갖춘 교사를 마련한 뒤 1961년 4월 성모고등공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했다. 디지털상주문화대전은 1956년 성모고등공민학교를 설립했고, 1958년 2월 공검공소 기공식을 시작으로 1959년 은척·여주·여물 공소를 설립하고 나환자 마을인 성심원을 개원했으며, 1960년 양범공소를 설립하고 성모고등공민학교의 교실과 유치원을 준공했다고 적는다. 또 1969년 성당 안에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원 분원을 설치했고, 성모고등공민학교는 1971년 12월 22일 11회 졸업식을 끝으로 폐교했다고 한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5년 4월 15일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해 11월 14일 봉헌식을 거행했고, 1969년 5월 9일 안동 감목 대리구가 교구로 승격되면서 새 교구로 편입되었으며, 같은 해 9월 성모고등공민학교 관리권이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이양되었다. 디지털상주문화대전은 왕묵도 신부를 중심으로 독일 천주교회의 재정적 후원과 가톨릭 구제회 한국지부의 원조를 받아 상주 전역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고 교육 사업에 참여해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평가한다.
〔1970년대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4년 4월 7대 주임 메시니(P. Mésini, 매기석) 신부가 이임한 뒤 8~9개월간 주임 신부가 임명되지 않아 교구청의 코요스(C. Coyos, 구인덕) 신부가 주일마다 와서 미사를 집전했고, 12월 김재문(이냐시오) 신부가 8대 주임으로 부임했다. 김재문 신부는 공소 회장단 모임을 열고 공소 재정 담당자들을 교육했으며, 1977년 2월 재정 형편상 성모유치원을 폐쇄했고 1979년 5월 성소 후원회를 발족하고 새 성모상 제막식을 가졌다. 9대 김욱태(레오) 신부는 1981년 여름 서울 돈암동 본당과 합동으로 공검면 중소초등학교에서 산간 학교를 열었고, 1982년 10월 24일 어린이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두 개(샛별·상아탑)를 구성했다. 10대 이영길(가롤로) 신부는 1988년 4월 3일 교육관(나눔의 집) 신축 공사를 시작해 10월 30일 마쳤고 11월 20일 두봉 주교의 주례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11대 정호경(루도비코) 신부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져 1990년 3월 18일 신흥에 오봉산 공동체를, 4월 1일 퇴강에 물미 공동체를 만들었고, 1992년 1월 29일 퇴강의 두 번째 공동체인 만리산 공동체를 설립했으며, 1992년 11월 15일 혼자 사는 노인들을 위한 ‘할머니 두레집’ 축복식을 거행했다. 13대 공한영(고스마) 신부는 1996년 6월 1일 성가대를 조직하고 1997년 4월 19일 주일학교 초등부 자모회를 결성했으며, 14대 전장호(프란치스코) 신부는 1999년 3월 29일 성당 안에 유아실을 설치하고 2000년 2월 20일 여성 연합회를 발족시켰다.
〔사벌 퇴강 준본당 설정과 현황〕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5대 이상복(비오) 신부 재임기인 2003년 7월 1일 함창 본당 관할의 퇴강 공소와 계림동 본당의 사벌·매협·매호·묵상·목가·삼덕 공소가 묶여 사벌 퇴강 준본당으로 설정되었고, 2004년 7월 17~18일 서울대교구와 안동교구의 ‘나눔의 묵상회’ 하계 수련회가 본당에서 열렸다. 디지털상주문화대전은 2023년 8월 현재 등록 신자 수가 2,340명이고 관리 공소로 신흥·아천·여물·하갈 공소가 있다고 적는다.
〔관할 구역과 교세, 역대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상주시 함창읍 전 지역이고 공소는 금곡·병암·성심·신흥·아천·양정·여물·역곡·하갈 9개소이다. 교세는 1965년 3,180명, 1970년 3,700명, 1975년 3,690명, 1980년 3,312명, 1985년 3,396명, 1990년 3,234명, 1995년 3,087명, 2000년 3,189명, 2003년 2,981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이기수 야고보(1942.5~1948.8), 2대 김동한 가롤로(1948.8~1949.6), 3대 강찬형 파스칼(1949.6~1952.3), 4대 정삼규 요한(1952.3~1955.5), 5대 김준필 아우구스티노(1955.5~1956.4), 6대 에그너(왕묵도) 레오나르도(1956.7~1973.4), 7대 메시니(매기석) 베드로(1973.4~1974.4), 8대 김재문 이냐시오(1974.12~1981.2), 9대 김욱태 레오(1981.2~1986.1), 10대 이영길 가롤로(1986.1~1989.3), 11대 정호경 루도비코(1989.3~1993.5), 12대 조창래 빈첸시오(1993.5~1994.8), 13대 공한영 고스마(1994.8~1999.1), 14대 전장호 프란치스코(1999.1~2003.7), 15대 이상복 비오(2003.7~)이다. 같은 사전의 가은 본당 항목은 1947년 함창 본당 소속 신부를 김동환 가롤로로 적는다.
건축과 공간
1954년에 봉헌한 성당은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공사 현장에서 신자들이 바깥 벽만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약 55평의 건물이었고, 남은 자재로 둥근 모양의 2층 사제관을 지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1965년 4월 15일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해 11월 14일 봉헌식을 거행했다. 1988년에는 교육관(나눔의 집)을 신축해 11월 20일 두봉 주교의 주례로 축성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퇴강 본당(현 사벌 퇴강 본당): 함창 공소를 설치한 정수길 신부가 주임을 맡았던 본당이며, 2003년 퇴강 공소 등이 묶여 사벌 퇴강 준본당이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공평 본당(현 점촌동 본당): 1942년 함창이 본당이 되면서 공소로 격하되었고, 그 신부가 한때 함창 공소에 거주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가실 본당·김천 본당: 함창 지역이 차례로 속했던 본당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성모고등공민학교와 상지여자중학교·상지미래경영고등학교: 성모고등공민학교는 1971년 폐교했고, 이를 모태로 한 상지여자중학교와 상지미래경영고등학교가 성당 구역 안에 있다(디지털상주문화대전).
-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1969년 성당 안에 분원을 설치했으며 지금도 활동한다(디지털상주문화대전).
- 에그너(왕묵도) 신부: 1956년부터 6대 주임으로 17년 가까이 재임한 베네딕도회 신부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상주문화대전).
- 성심원: 1959년 개원한 나환자 마을이다(디지털상주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함창 본당”(12권). 1942년 5월 20일 본당 설정, 주보, 관할 구역과 공소, 교세, 역대 신부, 전사와 공소 설립, 성당 신축과 봉헌, 베네딕도회 시대, 역대 주임의 활동.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6832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상주문화대전 “함창성당”. 1937년 공소 설립, 1948년 승격, 1954년 성당 준공·축성, 공소와 성모고등공민학교, 2023년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sangju/toc/GC09101172 - 천주교 안동교구, 관할구역과 본당 분포도. 본당 설립 순서(함창 5번째, 1942년 5월 21일).
https://www.acatholic.or.kr/sub1/sub1_4.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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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함창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17:55. https://missamap.com/ko/kr/andong-hamcha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