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 성당
개요
다인성당은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서릉리에 있는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성당이다. 1957년 퇴강 본당에서 다인 공소가 설립되었고, 1961년 5월 25일 대구교구 군위 본당 관할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으며, 주보성인은 성 베르나르도이다. 1960~80년대에는 농민 사목으로 알려졌다.
역사
〔신앙 공동체의 시작〕 한국가톨릭대사전은 이 지역 신앙 공동체의 역사가 1948년 상주군 중동면 다래 공소 출신인 김시종이 다인면으로 이사 오면서 시작되었다고 적는다. 1952년경 김시종의 권유로 누나 김옥순(말지나) 부부가 이사를 왔고, 그녀는 이 마을의 권태선과 강말님을 다래 공소로 데리고 가 예천 본당 신현옥(치릴로) 신부에게서 세례를 받게 했다. 이렇게 해서 1953년에 다인면 최초의 영세자가 나왔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같은 인물들을 김시종·김옥순·강말림·권태선 가족으로 적고, 이웃한 안사면 쌍호리에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공소가 있었으므로 다인면의 전교가 그곳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한다. 두 출처 모두 가톨릭 구제회(NCWC)의 구호품 배분을 이 지역 전교와 연결해 적는다. 대사전은 김시종이 운영하는 사진관에 모여 공소 예절을 올리던 이들이 퇴강 본당(현 함창 본당 관할 공소)에서 받아 온 밀가루와 옥수수를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며 전교했다고 하고,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상주의 퇴강 성당에서 소달구지로 밀가루와 옥수수를 실어와 나누어 주자 신자가 30여 명으로 불어났다고 한다.
〔다인 공소〕 두 출처에 따르면 다인 공소는 1957년에 설립되었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퇴강 본당에서 설립했다고 적고, 이대일의 집에서 공소 예절을 시작했고 신자가 계속 늘자 1958년에 양조장을 하던 건물을 매입했다고 적는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공소 건물이 필요해지자 퇴강 본당의 지원으로 서릉1동의 옛 양조장 건물인 2층 목조 건물을 매입·개축해 1층은 구호품 보관 창고로, 2층은 첨례 장소로 썼다고 적는다. 같은 해 설립된 하광 공소는 1959년 퇴강 본당에서 헌 목재를 얻어 공소 건물을 지었으나, 공소 자리에 자기 조상의 묘가 있다는 사람이 나타나 마룻바닥을 파헤친 사건이 일어났고, 이 일로 냉담자가 늘어 끝내 공소 건물을 프로테스탄트에 넘겨주는 시련을 겪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다인 지역의 공소들은 1959년 의성 본당으로 편입되었다가 1년 뒤 다시 군위 본당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본당 설립〕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대구교구는 1961년 5월 25일 다인면·안계면·구천면·단밀면·신평면·비안면·단북면 7개 면을 관할 구역으로 안계에 본당을 설정하고 초대 본당 신부로 김규태 신부를 임명했다. 그러나 김 신부가 지금의 안계 본당 자리에 있던 허술한 공소에 머물 수 없어 다인 공소 1층을 수리해 사제관으로 삼고 다인에 머물렀다. 이에 본당 유치를 계획한 다인 신자들은 본당 부지 확보와 신축 기금 모금을 시작했고, 안계 지역 신자들과 본당 유치 문제로 한동안 갈등을 겪기도 했다. 다인으로 본당 유치가 결정된 뒤 1962년 4월 상주군과 풍양면의 공소들이 다인 본당으로 편입되었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다인 교우들이 대구 교구청을 찾아가 타당성을 설명하는 한편 부지를 확보하고 성금을 모았고, 그 결실로 1961년에 다인 성당이 탄생했다고 적는다. 안동교구 홈페이지의 본당 설립 순서에서 다인은 12번째로 올라 있고 설립일은 1961년 5월 25일이다.
〔성당 건립과 안동교구 편입〕 1962년 4월 28일 매입한 본당 부지에 성당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축성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1962년에 부지 매입을 마치고 1963년에 본당 건물과 사제관, 식당을 지었다고 적는다. 1966년에는 병인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성모상을 안치했고, 1969년 5월 29일 안동교구 설정으로 대구교구 왜관 대리구에서 안동교구로 소속이 바뀌었다. 1978년 1월 본당 입구 진입로를 매입했고 이듬해 12월 사제관을 신축했다.
〔공소 관할의 변화〕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71년 2월 신평면의 금곡 공소가 의성군으로 편입되면서 다인 본당 관할이 되었고, 같은 해 8월 수산·산광 공소를 신축하고 효제 공소와 쌍호 공소(현 안계 본당 소속)를 수리했다. 이듬해인 1972년 9월 15일 안계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분리했다. 이어 1975년 8월 10일 신산 공소, 1976년 5월 30일 산성 공소를 각각 신축했고, 1989년에는 상광 공소를 축성했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신락 공소가 1984년 12월 18일에 신축되었고 풍양 공소가 1992년 7월 17일 신축되었다고 적는다. 대사전은 1992년 7월 풍양면 안의 공덕·풍덕·효제·수산 네 공소가 이농 현상으로 유지하기 어려워지자 이들을 합쳐 면 단위의 풍양 공소를 새로 세웠고, 지역민 대다수가 노년층으로 80% 이상이 문맹자임을 감안해 1992년 12월 한글·한문 학교를, 이듬해 5월 영어 학교를 열었다고 적는다.
〔농민 사목〕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1년 2월 28일 정의의 거울 쁘레시디움을 창설하고 1983년 1월 본당 공동묘지를 매입했으며, 1983년 1월 30일 발족한 가톨릭 농민회 다인 지역 협의회를 중심으로 농정에 반대하는 단체 행동에 참여했다고 적는다. 1985년 7월 소 값 폭락에 따른 소몰이 시위, 같은 해 12월 농지 개량 조합 현물 납부 투쟁, 1986년 9월 양담배 및 농축산물 수입 반대 행진이 그 사례이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1984년 본당 9대 류강하 신부가 농민 사목을 결정해 1,500명이 참석한 추수 감사제와 경상북도 농민 대회를 열었고, 1985년에는 본당 영농회를 발족했으며, 1985년 7월 12일 소몰이 시위를 벌였다고 적는다. 이에 따른 압력으로 본당 사목 회장 김학진의 약국이 1986년 1월 19일 영업 정지를 당했고, 1986년 7월 9일에는 본당에 다니는 중·고등학생들이 학교로부터 신앙을 침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으며, 1986년 9월 3일에는 항의 행군을 한 본당 농민 회원들이 안동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안동교구 정의 평화 위원회는 “너희는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라는 성명서를, 학부모들은 “어린 십자가를 짊어지고”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러한 활동은 1990년대 초반까지 이어져 1991년에는 의성 지구 사목회 주관으로 ‘공안 통치 종식 및 민주화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시가지에서 평화의 촛불행진을 했다. 대사전은 본당이 매년 추수 감사제와 풍년 기원 미사 등을 통해 농촌 본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는다.
〔새 성전과 이후〕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85년 6월 17일 새 성당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1985년 5월 26일에 구 성당을 철거했다고 적는다). 6천여 평의 야산을 깎아 성당 우회 도로를 만들고 부지 400여 평에 단층 성당(127평)을 완공해, 1986년 4월 1일 두봉 주교 집전으로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 행사와 함께 봉헌했다. 1988년 11월에는 ‘나눔의 집’을 준공했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농민 운동이 농민 살리기 운동, 우리 농산물 직거래, 유기 농법을 통한 무공해 농산물 보급 같은 운동으로 변모해 1994년 ‘우리 농산’이 생겼고, 1998년 성모 어린이집을 준공했으며, 1999년 문화원을 신축하고 2011년 『실록 다인 본당 50년』을 발간했다고 적는다.
〔관할 구역과 교세, 역대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관할 구역은 의성군 다인면, 상주군 중동면, 예천군 풍양면 등지이고, 관할 공소는 신락·신산·상광·곤대·길말·산성·풍양 7개소이다.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산하에 신산·신락·상광·곤대 공소가 있고 교적상 총 신도수는 990명이라고 적는다. 대사전의 교세는 1970년 1,775명, 1975년 1,707명, 1980년 1,591명, 1985년 1,506명, 1990년 1,446명, 1994년 1,488명이다. 역대 신부는 초대 김규태 디모테오(1961.5~1964.4), 2대 조상익 베드로(1964.4~1965.6), 3대 정학모 루가(1965.6~1966.12), 4대 이길준 바오로(1966.12~1970.1), 5대 정호경 루도비코(1970.1~1972.8), 6대 독(R. Doc, 박) 로제리오(1972.8~1979.5), 7대 이상복 비오(1979.5~1983.2), 8대 바힐로(P. Bahillo, 방일현) 바오로(1983.2~1984.1), 9대 류강하 베드로(1984.3~1988.7), 10대 정희욱 안드레아(1988.7~1992.6), 11대 권상목 요한(1992.6~1995.7), 12대 황재모 안셀모(1995.7~)이다.
건축과 공간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은 성당이 다인면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면사무소 바로 뒤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원래 성당 자리는 공동묘지였다고 적는다.
1962년에 매입한 부지에 1963년 본당 건물과 사제관, 식당을 지었고, 1985~1986년 새 성당을 지으면서 구 성당을 철거했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1986년에 봉헌한 성당이 부지 400여 평에 지은 127평 규모의 단층 건물이라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퇴강 본당: 1957년 다인 공소를 설립한 본당이며(디지털의성문화대전), 구호 물품을 다인 주민들에게 전한 곳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현 함창 본당 관할 공소로 적는다.
- 군위 본당: 다인 지역 공소들이 1959년 의성 본당에 편입되었다가 1년 뒤 다시 소속된 대구교구 본당이며, 다인 본당은 이 군위 본당 관할 공소에서 승격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안계 본당: 1961년 안계에 본당을 설정하며 초대 신부가 다인에 머물렀고, 1972년 9월 15일 다인 본당 관할이던 안계 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신락·신산·상광·곤대·산성·풍양 공소: 다인 본당이 신축·축성하거나 합쳐 세운 공소들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디지털의성문화대전).
- 김규태 디모테오 신부: 1961년 5월 초대 본당 신부로 임명되어 다인에 머물렀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류강하 베드로 신부: 9대 신부로 농민 사목을 전개했다(디지털의성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다인 본당”(3권). 1961년 5월 25일 본당 승격, 주보, 관할 구역과 공소, 교세, 역대 신부, 공소 시대와 본당 설립 과정, 성당 건립·봉헌, 농민 사목.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1197 - 한국학중앙연구원, 디지털의성문화대전 “다인 성당”. 1957년 다인 공소 설립, 1961년 5월 25일 성당 설립, 1962~1963년 건립, 1986년 새 성전 봉헌, 농민 사목과 압력, 현황.
https://uiseong.grandculture.net/uiseong/toc/GC05201423 - 천주교 안동교구, 관할구역과 본당 분포도. 안동교구 설정 경위와 본당 설립 순서(다인 12번째, 1961년 5월 25일).
https://www.acatholic.or.kr/sub1/sub1_4.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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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다인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7일 06:04. https://missamap.com/ko/kr/andong-dain-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