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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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경화동성당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에 있는 천주교 마산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65년 12월 진해 본당(현 중앙 본당)에서 분리 설립되었으며, 진해 공소와 그 후신인 경화동 공소에 터전을 두고 있다. 주보성인은 그리스도 왕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경화동 본당은 진해 공소와 그 후신인 경화동 공소에 터전을 두고 있다. 진해 공소는 1905년 4월 안민 공소(현 창원시 소재)의 현재만(루도비코) 회장과 공소 신자들이 진해시 충무동으로 이주해 와 이곳 신자들과 함께 현재 충무 6가에 있는 만경당을 터전으로 설립했다. 이들은 공소 강당을 건립했으나 1932년 7월 태풍으로 강당을 잃자 2년 뒤 경화동으로 공소 소재지를 옮기고 새 강당을 건립했다. 경화동의 진해 공소는 15년간 지속되다가 1946년 중앙동으로 소재지를 옮기는 동시에 진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이때 경화동 지역 신자들은 진해 본당 관할의 경화동 공소로 남았다. 경화동 공소는 1953년 교구 당국의 지원과 공소 신자들의 노력으로 금융 조합 건물(현 유치원 건물)을 공소 강당으로 꾸미고 장병보(베드로) 신부의 집전으로 미사를 봉헌했다.

〔본당 승격과 분가〕 대사전은 경화동 공소 신자들이 본당 설립 운동을 전개해 1964년 현재의 성당 부지 141평을 매입하고, 이듬해 현재의 사제관 부지 530평을 매입한 뒤 그해 12월 본당으로 승격했다고 적는다. 당시 본당 관할 구역은 진해시 태백동에서 동쪽의 행암동까지와 창원군 일부 지역으로 매우 넓었으나 행정 구역 조정과 창원 지역의 본당 신설로 여러 차례 변동되었다. 특히 1987년에는 진해 지역 3개 본당이 공동으로 기금을 모금해 경화동 본당 관할 안에 100평의 성당 부지를 구입했고, 이를 바탕으로 1992년 8월 19일 덕산동 본당을 분가했다.

〔성당과 부속 시설 건립〕 대사전에 따르면 본당 신자들은 본당 설립 2년 뒤인 1966년 초대 주임 박주선 신부의 지도로 성당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1968년 4월부터 현재의 성당(108평) 신축 공사를 시작해 그해 9월 완공했다. 제5대 최동오 신부 재임 중인 1977년 9월 사제관(44평)을 건립했고, 제6대 유영봉 신부 재임 중인 1981년 3월 유치원과 수녀원을 동시에 갖춘 2층 건물을 완공했으며, 제7대 허성규 신부 재임 중인 1984년 6월 교육 회관을 2층 벽돌 슬라브 구조로 완공했다. 1986년 10월에는 웅천 공소 건물을 건립했다.

〔사목 활동〕 대사전은 본당에서 사목 협의회와 여러 평신도 단체를 조직했고, 관할 구역을 1980년 7월 7개 구역 21개 반으로 편성했다가 교세가 늘면서 1988년 4월 확대 개편했다고 적는다. 1965년 본당 설정부터 1968년까지는 성당을 신축하고 평신도 단체를 조직하며 발전 기반을 구축했고, 1969년부터 1979년까지는 신앙생활의 쇄신과 선교에 힘쓰는 한편 본당의 재정 자립을 위해 평신도 조직을 활성화했으며, 1980년부터는 주교회의와 관할 교구의 사목 지침에 따라 교구·본당·가정의 공동체 의식을 높여 친교의 공동체와 순교 정신을 본받는 쇄신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다고 한다. 본당은 선교 활동과 불우 이웃 돕기 운동을 적극 전개했고 1983년에는 신용 협동 조합을 설립했다. 또 1,353평의 임야를 매입했는데 이곳에는 임진왜란 때 세스페데스(Gregorio de Cespedes) 신부가 거주하던 웅천성 터가 포함되어 있다. 대사전 집필 당시에는 부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의 분원이 설립되어 수녀들이 사목을 돕고 있었다.

〔교세와 관할 구역〕 대사전이 적은 교세는 1965년 1,111명, 1968년 1,589명, 1975년 1,949명, 1981년 2,237명, 1988년 3,122명, 1993년 2,271명이다. 관할 구역은 진해시 경화동·웅천동·웅동 일부 지역과 기타 지역이며 소속 공소는 웅천과 웅동 2개소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 본당을 창원지구 3지역 소속으로, 설립일을 1965년 12월 27일로, 소속 수녀회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로, 신자 수를 3,062명, 공소 수를 0으로 적는다.

〔역대 주임 신부〕 한국가톨릭대사전이 적은 역대 신부는 초대 박주선 안토니오(1966.1~1969.5), 2대 허정식 마태오(1969.5~1971.11), 3대 장덕범 바오로(1971.11~1973.12), 4대 김해동 요한 그리소스토모(1973.12~1975.10), 임시 정수길 요셉(1975.10~1976.1), 5대 최동오 아타나시오(1976.1~1979.1), 6대 유영봉 야고보(1979.1~1982.1), 7대 허성규 베드로(1982.1~1985.2), 8대 정영규 마르코(1985.2~1989.7), 9대 이승홍 이시도로(1989.7~1991.7), 10대 이강해 스테파노(1991.7~대사전 집필 당시 현재)이다.

건축과 공간

대사전에 따르면 1964년 성당 부지 141평을 매입했고, 1968년 4월 현재의 성당(108평) 신축 공사를 시작해 9월에 완공했다. 1977년 9월 사제관(44평), 1981년 3월 유치원·수녀원을 갖춘 2층 건물, 1984년 6월 2층 벽돌 슬라브 구조의 교육 회관, 1986년 10월 웅천 공소 건물을 각각 마련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진해 본당(현 중앙 본당): 1946년 진해 공소가 중앙동으로 소재지를 옮기며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경화동 본당은 1965년 12월 이 본당에서 분리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덕산동 본당: 1992년 8월 19일 경화동 본당에서 분가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웅천 공소·웅동 공소: 대사전이 적은 경화동 본당의 소속 공소이며, 웅천 공소 건물은 1986년 10월 건립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웅천성 터: 본당이 매입한 1,353평 임야에 임진왜란 때 세스페데스 신부가 거주하던 웅천성 터가 포함되어 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경화동 본당”(마산교구, 1권). 진해 공소와 경화동 공소, 1965년 본당 승격, 덕산동 분가, 성당·사제관·수녀원 건립, 사목 활동, 교세, 역대 신부.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07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경화동”(마산교구). 설립일 1965.12.27, 주보성인 그리스도 왕, 창원지구 3지역, 수녀회, 신자 수, 공소 수.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1040&gubu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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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경화동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20일 01:56. https://missamap.com/ko/kr/masan-gyeonghwad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