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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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2. 역사
  3. 관련 장소와 인물
  4.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고성성당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에 있는 천주교 마산교구 소속 성당이다.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1939년 5월 14일 황리 본당(현 경남 통영군 광도면)이 고성으로 이전되어 설립된 본당이며, 주보성인은 대천사 성 미카엘이다.

역사

〔공소 시대〕 한국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고성 지역의 첫 신자는 조향규(다윗)이다. 그의 집안은 박해 시대에 입교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면서 계동(현 고성읍 기월리)에 자리를 잡았다. 경상도 지역을 돌며 신자들을 돌보던 로베르(Robert, 김보록) 신부가 1888년 처음 그의 집을 방문했는데, 당시 신자는 조 다윗 가족 5명뿐이었고 이후 그의 전교 활동으로 조용형(베드로), 이 도나도, 유 요한 집안 등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1895년에는 이웃 장동(현 고성읍 대평리)에서도 공소 예절을 치르게 되었으며, 이때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부산 본당 제2대 주임 우도(Oudot, 오보록) 신부였고 당시 고성 지역 신자는 66명이었다. 우도 신부는 1897년 황리에도 공소를 설립했다.

〔소속 본당의 변천〕 대사전은 부산 본당 소속이던 이 공소들이 1899년 6월 타케(Taquet, 엄택기) 신부가 설립·정착한 진주 본당에 속했다가 1900년 6월 타케 신부가 마산포로 본당을 이전하면서 마산포 본당에 속하게 되었다고 적는다. 이 무렵 신자는 계동 공소 50명, 장동 공소 45명, 황리 공소 29명이었다. 이후 고성 지역 공소들은 1905년 진주 문산 본당에, 1926년 거제 옥포 본당에, 1929년 통영 본당(현 충무 본당)에 속했다가 1935년 6월 15일 설립된 황리 본당에 속했다. 황리 본당은 초대 신순균(바오로) 신부가 1937년 이임한 뒤 일시 공백이 있었고, 그해 9월 고군삼(베네딕도) 신부가 제2대 본당 신부로 부임해 재임하던 중 고성 본당이 신설되면서 공소로 격하되었다.

〔본당 설립과 성당 이전〕 대사전에 따르면 1939년 5월 고성 본당 설립과 함께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서정도(베르나르도) 신부는 처음 기월리의 한옥을 매입해 임시 성당으로 삼았고, 이듬해 10월 고성읍 송학동 475-1번지에 새로 대지와 건물을 3,700원에 매입해 성당을 이전했다. 일제 말기로 사정이 어려워 성당을 신축하지 못하고 기존 건물을 개조해 사용했다. 제2대 장병룡(요한) 신부가 1942년 6월 부임했다가 이듬해 2월 이임한 뒤에는 본당에 정식으로 신부가 임명되지 않았고 몇몇 신부가 임시로 사목을 맡았을 뿐이다.

〔본당의 재건과 새 성당〕 대사전은 고성 본당이 다시 부활한 것이 1954년 5월 제3대 주임으로 이중현(요한) 신부가 부임한 뒤였다고 적는다. 이 신부는 현재 성내리에 새 성당터를 마련하고 성당을 완공한 뒤 1959년 3월 전임되었고, 이어 임시로 메리놀회의 배 후베르토 신부가 잠시 사목을 맡았다. 1961년 4월 15일 김두호(알로이시오) 신부가 제4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며, 이때 예수 성심 시녀회 분원이 설립되어 전교와 시약소, 구라 활동을 담당했다. 당시 본당 신자 수는 1,500여 명이었다.

〔교세와 관할 구역〕 대사전은 본당의 교세가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제11대 황창건(타대오) 신부 재임기에는 1,750여 명, 제13대 이강해(스테파노) 신부 재임기에는 2,000여 명에 달했으나, 지역 여건으로 1991년부터 다시 줄어 1993년 말에는 1,951명이었다고 적는다. 1992년 8월 부임한 제16대 이청준(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가 대사전 집필 당시 재임하고 있었다. 대사전이 적은 소속 공소는 황리, 대가(고성군 대가면), 배둔(고성군 회화면), 상리(고성군 상리면), 마암(고성군 마암면) 5개소이고, 관할 구역은 고성읍과 고성군의 대부분 지역, 통영군 광도면·도산면 일부 지역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은 현재 본당을 거제지구 1지역 소속으로, 설립일을 1939년 5월 14일로, 소속 수녀회를 예수 성심 시녀회로, 신자 수를 2,861명, 공소 수를 3으로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황리 본당: 1935년 6월 15일 설립되었으며 1939년 고성 본당이 신설되면서 본당이 고성으로 이전되어 황리는 공소가 되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계동 공소·장동 공소·황리 공소: 고성 지역 초기 공소로, 각각 1888년, 1895년, 1897년에 기록이 나온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조향규(다윗): 고성 지역의 첫 신자이다(한국가톨릭대사전).
  • 로베르(Robert, 김보록) 신부: 1888년 처음 조향규의 집을 방문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 우도(Oudot, 오보록) 신부: 부산 본당 제2대 주임으로 1895년 장동 공소를 방문하고 1897년 황리 공소를 설립했다(한국가톨릭대사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한국교회사연구소, 한국가톨릭대사전 “고성 본당”(마산교구, 1권). 공소 시대, 소속 본당 변천, 1939년 본당 설립, 성당 이전과 재건, 교세, 소속 공소, 관할 구역.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352
  2.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한국 천주교 주소록 “고성”(마산교구). 설립일 1939.05.14, 주보성인 성 미카엘 대천사, 거제지구 1지역, 수녀회, 신자 수, 공소 수.
    http://directory.cbck.or.kr/m/catholicInfo.asp?code=201001041&gubu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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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0일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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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고성 성당",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20일 01:54. https://missamap.com/ko/kr/masan-goseong-catholic-church/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