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윤봉문 성지(교구 순교복자 묘소)
개요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지세포 성지)는 경남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 있는 마산교구의 성지로, 1888년 진주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한 '거제의 사도' 복자 윤봉문 요셉의 묘소가 모셔진 곳이다. 마산교구는 2013년 4월 20일 옥포의 산중에 있던 순교자의 유해를 이곳으로 이장하고 십자가의 길과 순교자 현양비 등을 갖춘 성지로 조성했다.
역사
굿뉴스 가톨릭정보에 따르면 거제도에 복음의 씨앗이 처음 떨어진 것은 병인박해 직전으로, 리델 신부와 복사였던 복자 구한선 타대오가 전교를 위해 다녀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병인박해 중인 1868년경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 지촌리가 고향인 윤사우 스타니슬라오가 거제도로 들어왔다. 윤사우의 가족은 양산 대청(현 부산시 기장면)에 숨어 살다가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앙생활이 비교적 자유로운 대마도로 피신할 목적으로 거제도에 정착했다고 한다. 윤사우는 버드내, 박개, 덕개 등을 거쳐 진목정(현 거제시 옥포2동)에 정착해 활발히 전교했으며, 날품팔이와 필묵 행상을 하며 몰래 신앙생활을 하다가 옥포의 동수 진진부를 입교시켰다. 신자가 된 진진부 요한은 윤사우의 둘째 아들 윤봉문 요셉을 사위로 맞았다.
윤봉문 요셉의 출생 연도는 자료마다 다르다. 굿뉴스는 1852년 경주 인근에서 윤사우와 막달레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고 적고, 가톨릭신문은 1848~1888년으로 표기한다. 윤봉문은 부인 진순악 아녜스(주교회의 약전의 표기는 진 아녜스) 사이에서 아들 학송 루카와 딸 송악 가타리나를 두었다. 부친이 나중에 함안 지역으로 가서 정착한 뒤에도 형 윤경문 베드로와 함께 거제도에 남아 '거제의 사도'로서 신자들을 모아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썼다(굿뉴스).
1887년 겨울 병인박해 후 처음으로 당시 대구 본당 초대 주임이던 로베르 신부가 판공성사를 주기 위해 거제도를 방문했을 때 윤봉문은 신부를 안내하고 교리교육과 공소예절을 도왔고, 로베르 신부는 그를 회장으로 임명했다. 그해 거제도에서는 윤씨 형제가 가르친 15명의 어른이 세례를 받고 입교했다(굿뉴스, 주교회의 약전).
로베르 신부가 거제도를 떠난 이듬해 봄 통영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를 체포해 개인적인 탐욕을 채우려고 박해를 일으켰다. 당시는 한불수호조약으로 공적인 박해가 끝난 때였으나 지방 일부에서는 사사로운 탄압이 이어지고 있었다(굿뉴스). 주교회의 약전에 따르면 윤봉문은 다른 교우 3명과 함께 체포되었으나 그 혼자만 통영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배교를 거부했다. 굿뉴스는 이때 함께 체포된 교우를 두 명으로 적으며, 그가 몸값 100냥 요구를 거절했는데도 풀려났다고 설명한다. 이후 통영 관리가 영장을 찾아가 윤씨 형제에 대한 체포령을 받아냈고, 윤봉문은 다시 체포되어 가옥이 약탈당하고 소 22마리도 빼앗겼다(굿뉴스).
통영 관장은 이를 대구 감사에게 보고했고, 감사는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도적과 같으니 윤봉문을 진주로 이송하여 처형하라'고 명했다(주교회의 약전). 윤봉문은 진주로 끌려가는 동안 굵은 칡으로 발뒤꿈치를 꿰어 살이 뭉개지는 고통을 받았으나 오히려 큰 소리로 천주십계와 성교사규를 외웠다(굿뉴스). 진주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그날 밤 옥리들에 의해 교수형으로 순교했으며, 때는 1888년 4월 1일(음력 2월 20일)이고 나이는 36세였다.
순교한 뒤 로베르 신부는 교구장에게 '저는 운 좋게도 이 거룩한 순교자를 친밀하게 알았습니다'로 시작하는 보고서를 보냈다. 이 글에서 신부는 그가 열심한 교우였고 비신자들의 회개를 위한 열성이 가득했으며, 여러 섬에 신앙을 전파하는 일을 돕게 하려고 했다고 적었다(주교회의 약전).
굿뉴스에 따르면 순교자의 시신은 진주 비라실(장재리) 공소회장이 거두어 공소 뒷산에 안장했다. 1898년 옥포 교우이며 부산 본당 우도 신부의 복사였던 성낙진 바오로가 유족들과 함께 유해를 거제도로 모셔 와 진목정 족박골의 선산에 안장했다. 이후 진목정의 비신자들이 '천주학쟁이가 죽은 동네'라 하여 지명을 '국산'으로 고쳤다가 후에 다시 옥포로 바뀌었다. 거제도 신자들은 1978년 9월 24일 순교 90주년을 맞아 무덤에 순교 기념비를 세웠고, 거제와 통영 지역 본당들은 현양 사업과 묘지 성역화 사업을 추진했다.
순교자의 묘소는 산중에 있어 순례자가 찾기 어렵고 후손들의 선산이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가 이장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마산교구 거제도의 성당들은 2000년 9월 이장 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여러 후보지를 검토한 끝에 일운면 지세포리가 선정되었다. 이 부지는 본래 서울대교구가 신협 연수원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마산교구에 기증한 곳이었다. 진입로가 없어 포기했던 곳이었지만 인근 농로를 매입하고 거제시의 도움으로 진입로를 만들면서 성지 조성이 본격화되었다(굿뉴스).
마산교구는 2013년 4월 20일 순교자의 유해를 옥포에서 지세포리로 이장해 순교자 현양비 뒤편에 모셨다. 굿뉴스에 따르면 발굴 작업에서 온전히 보존된 유골이 확인되었고, 의학전문가는 오른쪽 골반에 장독으로 인한 골절로 추정되는 상처가 있음을 확인했다. 윤봉문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마산교구는 2015년 12월 30일 교구 인사발령으로 허철수 신부를 거제지구 성지전담으로 임명했다.
건축과 공간
굿뉴스에 따르면 거제도 신자들은 오랫동안 버려져 대나무와 편백나무로 뒤덮여 있던 성지 부지에서 직접 나무를 베고 길을 내는 봉사를 이어갔다. 그 결과 울창한 숲 사이로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길이 우선 조성되었고, 중앙에 순교자 현양비가 건립되었다. 순교자 현양비는 죄인들에게 씌우던 형틀인 칼을 형상화한 것이다.
2016년 가톨릭신문의 순례기에 따르면 성지 입구의 커다란 바위에는 '순교자 복자 윤봉문요셉성지'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올라가면 성모자상이 있다. 십자가의 길은 맹종죽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14처를 다 돌면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이른다. 전망대 옆에 복자의 묘소가 있으며, 칼을 형상화한 순교자탑 아래 마름모꼴로 된 관이 복자의 묘소이다. 마산교구는 앞으로 순교자 기념성당과 교육관, 사제관과 수녀원, 피정의 집과 식당 등을 건립할 계획이다(굿뉴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굿뉴스는 이 순교복자를 병인박해 이후 거제도에 처음 신앙의 뿌리를 내린 '거제의 사도'로 소개하며 그가 자신의 피와 땀으로 거제도에 믿음의 씨앗을 뿌렸다고 설명한다. 가톨릭신문은 이 성지가 거제시가 조성 중인 '섬&섬길' 코스 가운데 천주교순례길의 한 지점이라고 소개한다. 이 순례길은 예구마을 선착장에서 서이말등대를 거쳐 윤봉문 요셉 성지를 지나 지세포성과 거제조선해양문화관까지 이어지는 13.7km(5시간 40분) 코스이다. 가톨릭신문은 서이말등대 일대가 윤봉문의 아버지 윤사우와 '그의 형 경문'이 움막을 짓고 함께 살던 외딴 곳이라고 적는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윤사우 스타니슬라오: 윤봉문의 아버지로, 1868년경 거제도에 들어와 전교한 인물이다.
- 윤경문 베드로: 윤봉문의 형으로, 거제도에서 함께 교리를 가르쳤다.
- 로베르 신부: 1887년 거제도를 방문해 윤봉문을 회장으로 임명한 대구 본당 초대 주임이다.
- 옥포 족박골: 윤봉문의 유해가 2013년까지 모셔졌던 산중 선산이다.
- 진주 감옥: 윤봉문이 교수형으로 순교한 곳이다.
- 구한선 타대오: 병인박해 직전 리델 신부와 함께 거제 전교를 위해 다녀간 복사로 알려진 복자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굿뉴스 가톨릭정보, 마산교구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거제도 전교의 시작, 윤봉문의 생애와 순교, 유해 안장과 이장, 성지 조성을 확인했다.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Orggubun=71&ctxtOrgCode=71&ctxtOrgNum=4109&menugubun=holyplace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124위 복자 약전 윤봉문 요셉. 가족의 이주, 체포와 압송, 순교일을 확인했다.
https://cbck.or.kr/koreanmartyrs/124-Martyrs/124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련 성지 순교 복자 윤봉문 요셉 성지. 진목정 정착과 2013년 4월 20일 유해 이장을 확인했다.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97 - 가톨릭신문, 땅과 바다가 맞닿은 거제도 천주교순례길을 가다(2016년 9월 6일). 성지 시설과 순례길 코스를 확인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609060166665
문서 정보
- 문서 크기
- 10,486 바이트
- 판 수
- 1
- 기여자
- 1명
- 만들어진 날
- 2026년 10월 16일 05:16
- 마지막 수정
- 2026년 10월 16일 05:16
- 본문 연결
- 0개
- 출처 링크
- 4개 · 제출 출처 있음
- 작성 상태
- 보완 권장
- 장소 ID
38926f6e-004f-4230-9399-ddfd319040dd- 고정 주소
- https://missamap.com/ko/kr/masan-bokja-yunbongmun-seongji-gyogu-sungyobokja-myoso-shrine/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복자 윤봉문 성지(교구 순교복자 묘소)",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5:16. https://missamap.com/ko/kr/masan-bokja-yunbongmun-seongji-gyogu-sungyobokja-myos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