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한 묘소
개요
황경한 묘는 제주교구가 성지로 관리하는 추자도 하추자도의 묘소로, 신유박해 때 백서 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과 제주로 유배된 정난주 마리아의 외아들 황경한(黃景漢)이 묻힌 곳이다. 두 살 때 추자도에 남겨져 오씨 집안에서 자란 그의 사연이 깃든 곳이다.
역사
굿뉴스에 따르면 황사영은 1790년 진사시에 급제한 해에 다산 정약용의 맏형 정약현의 딸 정난주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1800년 아들 경한을 낳았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백서 사건으로 체포되어 11월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뒤 홀어머니는 거제도로, 부인은 제주도로, 외아들 경한은 추자도로 유배되었고 가산은 모두 몰수되었다.
굿뉴스는 일성록과 사학징의 등에 "나이가 2세 이하로 어려 법에 따라 교수시키지 않고 영광군 추자도에 노비로 유배시킨다"는 판결문이 있다고 전한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정난주가 호송선의 뱃사공을 매수하고 사공이 다시 두 나졸을 술로 매수하여, 젖먹이 경한을 하추자도 예초리 서남단의 황새바위에 내려놓았고 나졸들은 아이가 뱃길에서 죽어 수장했다고 보고했다.
경한은 오씨 성을 가진 어부에게 거두어져 그의 아들로 자랐다. 입고 있던 저고리 동정에서 나온 이름과 생년월일로 황경한임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서귀포신문은 추자도에 전승되는 이야기로 근처에서 소에게 풀을 먹이던 부인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 데려갔으며, 양아버지가 예초리 어부 오상선이라고 소개한다. 오씨 집에서 장성한 경한은 혼인하여 두 아들 건섭과 태섭을 낳았고 후손은 지금도 추자도에 산다고 알려져 있다. 추자도에서는 오씨와 황씨가 혼인하지 않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경한은 사망한 뒤 신양리 남쪽 산의 중간 산등성이에 묻혔다. 경한이 살던 오씨 집은 1965년 불타 없어졌고 그때 집안에서 간직해 온 젖먹이 때의 옷과 가첩도 소실되었다.
굿뉴스에 따르면 1900년 제주 선교를 위해 파견된 파리 외방전교회의 라크루 신부는 추자도를 왕래하던 중 1909년 황경한의 손자를 만나 전후 사정을 알게 되었다. 라크루 신부는 샤르즈뵈프 신부에게 서한을 보내 경한과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렸고, 샤르즈뵈프 신부는 이를 전교잡지에 소개했다. 라크루 신부는 프랑스 은인들의 후원금으로 황경한의 손자에게 집과 농토를 사주었다.
추자도에는 1908년 5월부터 선교사가 들어와 전교한 기록이 있으며, 1956년부터 제주중앙성당 관할의 공소가 시작되었다. 1988년 추자 공소는 서문 성당 관할로 이관되었고, 추자 공소 신자들이 황경한 묘소를 돌보아 왔다. 제주교구는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묘소 주변 부지 600여 평을 매입하여 소공원을 조성하는 성역화를 추진했다.
1975년 건립된 낡은 공소 건물이 2001년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자 그해 7월 새 성당 건축을 시작하여 2003년 6월 30일 지하 1층·지상 2층 규모의 새 성당 축복식을 가졌다. 어린이집과 영안실을 갖추고 20여 명이 머물 수 있는 방과 식당이 있어 순례객 숙소로 쓰인다(굿뉴스).
건축과 공간
제주일보에 실린 추자면 부면장의 기고에 따르면 황경한의 묘 맞은편 '물생이 끝' 바위 위에 눈물 형상의 십자가와 두 살 난 아기 황경한의 조형물이 설치되었다. 십자가는 가로 3m, 높이 5.5m 크기로 정난주 마리아의 눈물이 십자가에 맺혀 하늘로 오르는 모습을 표현했고, 아기상은 묵주를 손에 쥐고 누워 두 팔을 하늘로 치켜올린 모습이다. 두 작품은 전문가와 지역 주민의 자문을 거쳐 제작되었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연합뉴스(2018년 1월 15일)에 따르면 제주도는 천주교 111번째 성지순례지인 황경한의 묘를 자연생태 휴양공원으로 조성해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한다고 밝혔다. 사업비는 약 20억 원이며 이듬해 사업 완료를 예정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정난주 마리아: 경한의 어머니로 제주 대정현의 관비로 살았으며 묘소는 대정 성지에 있다.
- 황사영 알렉시오: 경한의 아버지로 백서 사건으로 순교하였다.
- 추자 공소: 묘소를 돌보아 온 공소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굿뉴스 가톨릭정보, 제주교구 황경한 묘. 황사영 가족의 유배, 경한의 성장과 후손, 라크루 신부의 후원, 추자 공소와 1999년 성역화, 2003년 공소 성당을 확인했다.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ctxtOrgNum=2372&menugubun=holyplace - 제주일보, 「천주교 성지 추자도 황경한 묘와 눈물의 십자가」. 눈물의 십자가와 아기상의 규모와 형상을 확인했다.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78804 - 서귀포신문, 「바닷가 바위 위 아기 울음소리 따라갔는데..」(2017년 6월 21일). 추자도에 전승되는 경한 발견 이야기와 오씨 집안 입양을 확인했다.
https://www.seogwipo.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9737 - 연합뉴스, 「천주교 순교자 황사영 아들 '황경한의 묘' 관광 자원화」(2018년 1월 15일). 111번째 성지순례지 표기와 휴양공원 조성 계획을 확인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80115119600056
문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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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들어진 날
- 2026년 10월 16일 03:53
- 마지막 수정
- 2026년 10월 16일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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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missamap.com/ko/kr/jeju-hwanggyeonghan-myoso-shrine/wiki/
-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황경한 묘소",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3:59. https://missamap.com/ko/kr/jeju-hwanggyeonghan-myos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