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훈 베드로 묘(반주골)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5. 관련 장소와 인물
  6.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이승훈 베드로 묘(반주골)는 천주교 인천교구에 속한 성지로, 한국 최초의 영세자이자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의 한 명인 이승훈 베드로와 장남 이택규, 3남 이신규 마티아의 묘가 있는 곳이다. 이승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한 뒤 선산인 인천 장수동 반주골에 묻혔다. 묘역은 2011년 인천시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으며, 인천교구와 인천시가 묘역을 중심으로 역사공원과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을 갖춘 성지로 조성하였다.

역사

이승훈은 1756년에 태어났다. 굿뉴스 성지 소개에 따르면 그는 24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벼슬길을 단념하였고, 마재 정씨 가문 정약용의 누이동생과 결혼하여 그들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천진암 강학회에 참석하던 중 이벽의 권유로 1783년 말 동지사를 따라 북경으로 가서 교리를 배웠고, 이듬해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한국 최초의 영세자가 되었다.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은 이 세례를 1783년 부친을 따라 북경에 가서 받은 것으로 소개하는데, 굿뉴스는 세례 시기를 이듬해로 적고 있어 출처마다 표기가 다르다.

귀국 후 그는 교리서와 성물 등을 가지고 돌아와 강학회 동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명례방 집회를 열며 가성직제도를 주도하는 등 신자 공동체를 형성하여 한국 천주교회를 창설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지기념관은 그가 이벽, 정약용 형제,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풀고 정기적인 종교집회를 열어 이 땅에 최초의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탄생하였다고 설명한다. 굿뉴스에 따르면 을사추조적발사건과 조상 제사 문제, 부모의 적극적인 반대 등으로 잠시 교회를 떠나기도 했으나 다시 돌아왔다.

이승훈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 네거리 처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고, 시신은 선산인 인천 장수동 반주골에 묻혔다. 가톨릭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승훈 집안에서는 아들 이신규(마티아), 손자 이재의(토마스) 등 4대에 걸쳐 8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성지기념관의 발자취에 따르면 1933년 오기선 신부가 이승훈의 증손자 이학호(한의학자)와 만났고, 이후 1967년 5대손 이병규 등과 묘를 방문하여 1968년 10월 묘비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1981년에는 조선 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하여 반주골에 안장되었던 이승훈의 유해 일부가 천진암 성지의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묘역으로 이장되어 정약종, 권철신·일신 형제, 이벽 옆에 모셔졌다. 성지기념관은 치명 순교한 지 180년이 지나 대부분의 유해는 이미 진토가 된 상태였다고 설명한다.

2011년 12월 이승훈 묘는 인천시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인천교구는 2014년 1월 교구 순교성지 성역화 사업의 중심이 될 성지개발후원회를 발족하고, 묘역 일대를 인천시와 협력하여 역사문화기념관과 순례길을 갖춘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할 계획을 발표하였다. 2019년 5월 17일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위원회의 '하느님의 종' 현장조사에서 장수동 묘가 실제 묘소임이 확인되었다고 성지기념관은 적고 있다. 2022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성지기념관 건축공사가 진행되었고, 2024년 9월 12일 교황대사가 공동 집전한 순교자현양대회 미사와 함께 기념관이 개관하였다. 2024년 10월 이후에는 묘역 인근 도로 1,801m 구간을 '이승훈베드로길'로 명명하고 도로명판과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건축과 공간

인천시는 약 4만 6천㎡ 규모의 '이승훈베드로 역사공원'을 조성하였고, 기념관에서 묘역까지 이어지는 데크로드인 '십자가의 길', 피에타 연못, 광장을 마련하였다. 가톨릭신문(2026년 2월 1일자)은 인천교구와 인천시가 묘역을 중심으로 약 5만㎡ 대지에 역사공원과 기념관을 갖춘 성지를 조성했다고 보도하였다.

가톨릭신문 기사에 따르면 입구에는 4단으로 된 피에타 연못과 정원이 있어 4대에 걸쳐 8명의 순교자를 낸 이승훈 집안의 순교 내력을 상징한다. 연못을 지나 이승훈 베드로 광장 너머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원형 건물인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이 있다. 건물과 중앙 광장은 달(月)과 연못(池)을 형상화해 원형으로 조성되었고, 기념관 오른편 벽에는 이승훈이 남긴 신앙 고백문 '월락재천, 수상지진(月落在天, 水上池盡)'이 붙어 있다. 이 문구는 달이 져도 하늘에 남아 있듯이 신앙은 천주 안에 남아 있고, 물이 솟구쳐도 연못에서 다하듯이 신앙은 천주 안에서 다한다는 뜻이다.

기념관 2층 상설 전시실은 이승훈의 생애와 후손들의 순교, 지역사회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며, 이승훈이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사제 파견을 요청하며 보낸 서한 등의 사료를 전시한다. 영상 전시실 입구에는 이승훈이 북경 북당성당에서 그라몽 신부에게 세례받는 장면을 재현한 포토존이 있다. 1층 경당 제대 뒤쪽 벽에는 루카복음 18장부터 24장까지의 말씀이 대리석에 음각되어 있고, 유리 조각 45개로 만든 감실은 45세에 순교한 이승훈의 의지를 형상화하였다. 기념관 뒤 산속에는 이승훈과 두 아들의 묘소에 이르는 400m 길이의 목재 데크 십자가의 길이 있다. 기념관은 경당 내 추모의 벽과 기도의 벽, 후원자의 방, 십자가의 길 14처에 후원자 이름과 세례명을 기록하고 미사를 봉헌한다.

신앙적 의미와 방문 맥락

성지기념관과 가톨릭신문은 이 성지를 선교사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 조선교회의 근원을 간직한 성지로 소개한다. 성지기념관은 이승훈 베드로에 의해 시작된 신앙공동체가 약 100여 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순교자를 냈다고 설명한다.

굿뉴스에 따르면 이승훈 베드로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진행 중인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시복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성지기념관은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2009년부터 이승훈 베드로를 비롯한 조선왕조 치하 순교자들의 시복을 추진했고, 2016년 10월 교황청 시성성으로부터 '장애 없음' 교령(Prot N. 3087-4/16)을 받아 '하느님의 종' 명칭을 공식적으로 쓰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묘역 인근에 조성된 기념관
  • 천진암 성지: 1981년 이승훈의 유해 일부가 이장된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묘역
  • 이신규 마티아: 이승훈의 3남이자 순교자로, 묘가 반주골에 있다
  • 이택규: 이승훈의 장남으로, 묘가 반주골에 있다

참고자료 및 출처

  1. 굿뉴스(한국천주교주교회의 가톨릭인터넷), 성지와사적지 '이승훈 베드로 묘(반주골)'. 이승훈의 생애, 1981년 유해 이장, 2011년 인천시 기념물 지정, 2014년 성역화 계획, 시복 절차 진행 사실을 확인하였다.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271
  2. 이승훈베드로성지기념관, 발자취. 성지 발전 과정(1933~2024년), 묘 확인, 기념관 개관, '하느님의 종' 명칭 사용 경위를 확인하였다.
    https://www.leeseunghoon.org/milestone
  3. 가톨릭신문, [순례, 걷고 기도하고] 인천교구 이승훈 베드로 성지(2026년 2월 1일자). 성지의 규모, 기념관 건축과 공간 구성, 십자가의 길을 확인하였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601225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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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02:41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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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ssamap.com/ko/kr/incheon-iseunghun-bedeuro-myo-banjugol-shrine/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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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이승훈 베드로 묘(반주골)",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2:41. https://missamap.com/ko/kr/incheon-iseunghun-bedeuro-myo-banjugol-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