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성당 옥터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곡성 옥터성지(곡성성당)는 전남 곡성군 곡성읍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성지이자 본당으로, 1827년 정해박해의 진원지이다. 박해 당시 체포된 신자들이 임시로 갇혀 있던 곡성현 객사 터에 1958년 성당이 세워졌다. 곡성군은 2025년 12월 이 성당을 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역사

정해박해는 1827년(순조 27년) 전라남도 곡성에서 시작되어 전라도 전역과 경상도 상주, 충청도, 서울 일부 지역에서 약 3개월 동안 일어난 천주교 박해이다. 1815년 을해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숨어든 신자들은 곡성 덕실 마을 승법리(현 오곡면)와 미륵골(미산리)에 정착하여 생계와 신앙생활을 위해 가마를 열고 옹기를 구우며 살았다. 곡성군 관광 안내는 이들이 강원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피신해 왔으며 생계유지와 신분 은폐를 위해 옹기를 구웠다고 적는다.

1827년 2월 덕실 마을 옹기점에 신입 교우 전씨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주막을 차렸다. 이 마을에는 신유박해 순교자 한덕운 토마스(1752-1802)의 아들 한백겸이 살았는데, 그가 주막에서 술을 지나치게 마시고 전씨의 부인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하자 남편 전씨가 홧김에 천주교 서적을 들고 곡성 현감을 찾아가 신자들을 고발하였다. 곡성 현감은 곧바로 체포를 명령하였고,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재산이 몰수되었다. 이때 잡혀온 교우들은 곡성현의 객사를 임시 감옥으로 삼아 수용되었으며, 당시 전라도 지역에서 체포된 신자는 240여 명이었다. 굿뉴스는 곡성이 정해박해 때 교우들이 붙잡혀 와 갇힌 옥터가 있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신자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다른 도에 거주하는 신자들의 이름이 밝혀져 박해의 규모가 커졌다. 1827년 5월 17일(음력 4월 22일) 상주에서 신태보 베드로가 검거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서울에서는 이경언 바오로가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으며, 충청도 단양에서도 숨어 있던 신자들이 붙잡혀 충주로 압송되었다. 서울·충청도·전라도·경상도에서 2월부터 4월까지 체포된 신자는 약 500명으로, 수감된 16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배교하여 석방되거나 유배되었다. 주교회의 시복시성 자료는 정해박해 때 순교한 이로 이경언, 박경화, 김세박, 안군심, 이성지, 이성삼 등을 들며, 옥에 남은 나머지 8명은 기해박해(1839) 때까지 수감되었다가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고 전한다. 같은 자료는 124위 복자 가운데 전라도 지역에서 6위(이경언 바오로, 이일언 욥, 신태보 베드로, 이태권 베드로, 정태봉 바오로, 김대권 베드로), 경상도 지역에서 6위(박경화 바오로, 김세박 암브로시오, 안군심 리카르도, 이재행 안드레아, 박사의 안드레아, 김사건 안드레아)가 정해박해 때 순교하였다고 정리한다. 굿뉴스 성지 소개는 정해박해가 기간은 짧았으나 탄압의 정도가 매우 심해 대부분이 배교하였고, 그 와중에도 이 막달레나, 이성지, 이성삼, 이경언 등이 끝까지 신앙을 지켜 옥사하거나 순교하였다고 적는다.

주교회의 자료는 정해박해에 배교자가 많았던 이유를 전라감사 김광문의 독특한 처리 방식에서 찾는다. 그는 가능한 한 사형을 피하고 고문 속에서 다른 교우의 이름을 대지 않은 이는 귀양을 보내는 것으로 처벌을 그쳤으며,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 수인은 교수형 대신 무기한 수감하여 굶주림과 고통으로 죽게 하였다. 또한 이 박해는 천주교인을 일망타진하려는 목적보다 전교 수단인 서적과 성물을 근원적으로 막는 것이 일차적 목표였다고 설명한다.

신앙의 자유를 얻은 뒤 광주교구는 1957년 순교의 현장에 본당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박해 당시 옥터였던 객사 자리를 매입하여 1958년 8월 본당을 설립하고 그해 10월 성당을 준공하였다. 2001년 성지 조성 계획을 발표하며 성역화를 본격화하여 2002년 7월 정해박해 순교성지 기념 '하늘못' 축복식을 가졌고, 2006년 성당 개축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정해박해 관련 자료를 전시하는 옥터 전시실을 개관하였다. 2008년 10월 본당 설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성당 마당에 옥사(獄舍)를 복원하고 야외 십자가의 길을 조성하였다. 2011년 10월 종합관(아가페)을 신축하여 축복식을 가졌고, 2016년 3월에는 성당 지붕의 낡은 슬레이트를 공판으로 교체하였다.

2025년 3월 15일 곡성성당 옆 부지에 세워진 곡성가톨릭역사관 축복식이 열렸다. 정해박해 200주년을 앞두고 광주대교구와 곡성군이 조성하는 '정해박해 진원지 평화순례길' 사업의 일환으로, 대지면적 4,441㎡에 건축면적 701.82㎡인 2층 건물이며 1층에는 다목적 홀, 2층에는 전시관이 있다. 축복식은 광주대교구장 옥현진(시몬) 대주교가 주례하였다. 곡성군은 2025년 12월 30일 곡성성당을 군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건축과 공간

곡성성당은 1958년에 세워졌다. 한국전쟁 이후 미군 격납고 자재를 그대로 활용해 지었기 때문에 신랑과 측랑의 구분이 없는 강당형 평면을 이루며, 호남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퀀셋 구조의 성당이다. 곡성군은 향토문화유산 지정 사유로 정해박해와 연관된 옥터성지 위에 조성된 점과, 전후 복구기에 지어진 근대 종교 건축물로 퀀셋 구조를 채택한 희소성을 들었다.

관련 장소와 인물

  • 곡성 덕실 마을(승법리)·미륵골(미산리): 을해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옹기를 굽던 정착지로, 정해박해의 발단이 된 곳.
  • 곡성가톨릭역사관: 곡성성당 옆에 2025년 3월 축복식을 가진 전시·다목적 시설.
  • 복자 이경언(바오로, 1792~1827)·박경화(바오로, 1757~1827): 정해박해 시기 순교자(가톨릭신문).

참고자료 및 출처

  1. 굿뉴스, 곡성 옥터(곡성 성당). 정해박해 경위와 1958년 본당·성당 설립, 성지 조성 연혁을 확인.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246
  2. 곡성군 곡성문화관광, 천주교 광주대교구 곡성성당. 옥터성지, 1958년 건립, 퀀셋 구조를 확인.
    https://www.gokseong.go.kr/tour/amusement/accommodation/regional?idx=1810&mode=view
  3. 광남신문, 「곡성성당, 군 향토문화유산에 이름 올려」(2025.12.31). 향토문화유산 지정과 건축적 특징을 확인.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665580
  4. 가톨릭신문, 「광주대교구·곡성군, 곡성가톨릭역사관 건립」(2025.3.18). 곡성가톨릭역사관 축복식과 규모를 확인.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0317500060
  5.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곡성 정해박해 진원지 덕실 마을 승법리 가마터. 정해박해 발단·전개와 순교복자 명단을 확인.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82?pag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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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6일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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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6일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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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issamap.com/ko/kr/gwangju-gokseongseongdang-okteo-shrine/wiki/
인용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곡성성당 옥터",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6일 00:44. https://missamap.com/ko/kr/gwangju-gokseongseongdang-okte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