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뫼성지

목차
  1. 개요
  2. 역사
  3. 건축과 공간
  4. 관련 장소와 인물
  5. 참고자료 및 출처

개요

솔뫼성지는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교구의 성지로,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태어난 곳이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 종조부 김종한, 부친 김제준과 김대건 신부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이며, 생가터를 포함한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국가 지정 사적이다.

역사

〔솔뫼와 김해 김씨 집안〕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솔뫼가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김해 김씨 집안이 정착해 살던 마을이며, 김대건의 조상들이 1583~1655년 사이에 솔뫼에 정착해 수대에 걸쳐 살고 있었다고 적는다. 굿뉴스는 ‘솔뫼’가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이며, 김대건 신부가 박해를 피해 용인 땅 골배마실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살았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내포 천주교와 교우촌 형성〕 굿뉴스는 이 마을에 복음이 전래된 것이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가 고향인 충청도 지방의 전교를 맡으면서 시작되었고,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가 면천 군수로 재직하던 중 이존창에게 복음을 듣고 벼슬을 버린 뒤 신앙생활에 전념하면서 솔뫼가 교우촌이 되었다고 적는다. 디지털당진문화대전(솔뫼 성지 항목)은 1784년경 세례를 받은 이존창이 내포 지역의 첫 신자이며, 1780년대 후반 이존창이 내포 지역에 천주교를 전파하자 김대건의 집안도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적는다. 입교는 김대건의 작은할아버지 김종한(안드레아)이 가장 먼저, 이어 증조할아버지 김진후(비오)가 입교하면서 집안 전체가 신자가 되었다.

〔솔뫼와 관련된 순교자들〕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솔뫼와 관련된 순교자가 모두 11명이며 그중 세 명이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두 명이 2014년 8월 16일 복자품에 올랐다고 적는다. 김진후(비오)는 1791년 진산 사건 이후 박해 때 네다섯 차례 검거되어 신문과 석방을 반복했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형벌을 못 이겨 배교하고 유배형을 받았으나, 1805년 다시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된 뒤로는 끝까지 신앙을 고백하다가 1814년 12월 1일 해미의 옥에서 75세로 순교했다. 김종한(안드레아, 족보상 이름 한현)은 김진후의 셋째 아들로 경상도 영양의 우련밭(현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에 이사해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교 서적을 필사해 배포했으며, 1815년 박해로 체포되어 안동을 거쳐 대구로 이송된 뒤 1816년 12월 26일 대구 감영에서 참수로 순교했다. 두 사람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 시복식에서 복자품에 올랐다.

〔김제준과 김데레사〕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은 할아버지 김진후와 작은아버지 김종한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고, 고 우르슬라와 결혼해 1821년 김대건을 낳았다. 박해로 1827년 무렵 가족을 데리고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 경기도 용인 한덕동을 거쳐 골배마실에 정착했으며, 1836년 모방 신부가 김대건을 신학생으로 선발하면서 김제준을 회장에 임명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한때 배교했다가 취소하고 신앙을 지켜 1839년 9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8명의 신자와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으며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김종한의 딸 김데레사(1779~1840)는 솔뫼에서 태어나 17세에 손연욱(요셉)과 혼인했고, 1824년 남편이 해미에서 순교한 뒤 프랑스 선교사들의 전교를 도왔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1840년 1월 9일 서울 포청 옥에서 순교했고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

〔김대건 신부〕 김대건은 1821년 솔뫼에서 태어나(당진시 자료는 1821년 8월 21일) 1836년 모방 신부에게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최양업·최방제와 함께 마카오로 유학했다. 1844년 12월 10일경 부제품을, 1845년 8월 17일 상하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아 한국인 첫 사제가 되었고, 1846년 9월 16일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1925년 7월 5일 복자품에, 1984년 5월 6일 성인품에 올랐다(당진시 자료는 군문효수형으로 적는다).

〔성지 조성의 시작(1906~1983)〕 당진시 자료는 1906년 성 김대건 신부 순교 60주년을 맞아 당시 합덕 성당 주임이던 크렘프 신부가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생가터를 고증했다고 적고, 굿뉴스는 크렘프 신부가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해 인근 토지 매입을 시작했다고 적는다. 1946년 순교 100주년을 앞두고 백 필립보 신부가 복자 김대건 신부 100주년 순교 기념비를 세우고 생가터를 매입했다(굿뉴스). 문화대전은 이 기념비 건립으로 솔뫼가 천주교 성지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후 해마다 7월 5일 김대건 신부 축일에 인근 성당 신자들이 순례했다고 적는다. 대전교구는 1976년부터 성지 개발을 본격화해 이듬해(1977) 높이 3미터의 김대건 신부 동상과 기념탑을 세웠고(굿뉴스, 당진시 자료는 현재의 성상을 1977년 전뢰진 교수 제작으로 적는다), 1983년 피정의 집을 세워 솔뫼 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다.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1973년 탄생지 성역화 계획이 수립되었고 1983년부터 성지를 전담하는 신부가 파견되었다고 적는다.

〔생가 복원과 기념관(1998~2006)〕 1998년 7월 28일 김대건 신부 생가지가 충청남도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고, 1998년의 문화재위원 고증과 와편 발굴을 거쳐 2004년 9월 지자체와 함께 생가를 복원했다. 2006년 3월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축복식을 올렸다(굿뉴스).

〔성지 정비와 아레나(2009~2011)〕 굿뉴스는 2009년 주차장 공사를 시작으로 성지가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 야외무대와 광장을 조성하고, 성지를 집회·순례·기념 공간으로 나누었다고 적는다. 노후화된 솔뫼 피정의 집을 철거한 자리에 1,300명을 수용하는 야외 공연장이자 문화공간인 솔뫼 아레나를 세워 2011년 5월 축복식을 올렸다. 당진시 자료는 아레나가 2011년 5월 14일 봉헌되었고 좌석 1,200석, 대형 행사 때 3,000명까지 수용한다고 적으며, 김대건 신부와 동료 밀사들이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한 것을 드러내려는 뜻으로 지었고 12사도상(최영철 바오로, 2011년 작품)을 세웠다고 설명한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과 사적 지정(2014)〕 2014년 8월 13일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 개막식이 솔뫼 성지에서 열렸고, 8월 15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를 방문해 아시아 청년 대회에 참석한 청년들과 만났다. 같은 해 9월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이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529호로 지정되었다(굿뉴스는 9월 25일,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9월 26일로 적는다). 문화대전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고 적는다.

〔교황 방문 이후(2017~2021)〕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3주년을 기념해 성지 안에 신축한 매듭을 푸시는 성모 마리아 경당 축복식을 거행했다. 2021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으로 당진시와 함께 2014년 교황이 청년들을 만났던 현장에 천주교 복합예술공간 ‘기억과 희망’(Memoria et Spes)을 조성하기로 하고 2019년 9월 기공식을 거행했으며, 2021년 7월 20일 축복식을 봉헌했다. 이 공간에는 기억과 희망 성당과 예술 공연장, 전시관, 회랑, 야외 조각공원이 들어섰다(굿뉴스).

건축과 공간

디지털당진문화대전은 성지 구내에 김대건 신부 생가, 성당, 김대건 신부 동상, 야외 공연장(아레나), 십자가의 길이 마련되어 있다고 적는다. 중심에 자리한 배 모양의 성당은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이용한 ‘라파엘호’를 상징하며, 그 안에 매일 미사가 봉헌되는 성전과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남북으로 배치되어 있다. 당진시 자료는 이 기념성당이 서해 폭풍우에 돛이 찢기고 키까지 부러진 라파엘호(페레올 주교가 ‘하느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으로 명명)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며, 모두가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했기에 외관에 붉은색 소재를 쓰고 2006년 봉헌되었다고 설명한다. 성전은 500명이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이고 양편 스테인드글라스는 강경 황산포의 해도를 표현해 감성원 작가가 2010년 제작했다. 기념관에는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박해 상황, 신부의 편지와 기해박해 보고서가 전시되어 있다.

성당 남서쪽에는 야외 미사와 모임을 위한 아레나가, 북서쪽에는 생가를 기와집으로 복원해 놓았다(문화대전). 소나무 숲은 당진 9경에 포함되며 그 중심에 1977년 세운 김대건 신부 동상이 있고, 곁에 1946년에 세워져 솔뫼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인 순교 100주년 기념비가 보존되어 있다. 십자가의 길은 숲을 관통해 마련되어 있으며, 당진시 자료는 예수님의 손을 주제로 한 모자이크화 십자가의 길과 인체 크기 청동 환조 십자가의 길(김종필 작가, 2012년 설치) 두 가지가 있다고 적는다. 한국 전통 여인의 모습을 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상도 순례자의 기도처가 된다(문화대전).

관련 장소와 인물

  • 김대건 신부 생가: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안채가 복원된 생가터이다(굿뉴스, 당진시 자료).
  • 해미: 김진후가 1805년 압송되어 1814년 옥에서 순교한 곳이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 대구 관덕정·대구 감영: 김종한이 1816년 순교한 곳이다(당진시 자료는 관덕정, 문화대전은 대구 감영으로 적는다).
  • 골배마실(용인): 김대건 신부 가족이 솔뫼를 떠나 정착한 곳으로, 김대건이 신학생으로 선발된 은이 교우촌 인근이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 김진후(비오), 김종한(안드레아), 김제준(이냐시오), 김데레사, 김대건(안드레아): 솔뫼와 관련된 순교자들이다(디지털당진문화대전).

참고자료 및 출처

  1. 가톨릭 굿뉴스 성지와 사적지, “솔뫼 성지”(대전교구). 4대 순교자, 교우촌 형성, 1906~2021년 성지 조성 연혁, 2014년 교황 방문과 사적 지정.
    https://m.catholic.or.kr/web/holyplace/?seq=2305
  2. 디지털당진문화대전,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건립 경위와 문화재 지정 일시(1998 충남기념물 제146호, 2014 사적 제529호, 2021 재지정), 성지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dangjin/toc/GC06400548
  3. 디지털당진문화대전,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 솔뫼 성지”. 내포 천주교의 역사와 솔뫼 관련 순교자 11명의 약전, 성지 구내 현황.
    https://www.grandculture.net/dangjin/toc/GC06401440
  4. 당진시 버그내 순례길, “솔뫼성지”. 1906년 크렘프 신부의 생가터 고증, 기념성당과 기념관(2006), 아레나(2011.5.14 봉헌), 십자가의 길 등 시설.
    https://beogeunae.dangjin.go.kr/pil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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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날
2026년 10월 13일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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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3일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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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솔뫼성지",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3일 15:42. https://missamap.com/ko/kr/daejeon-solmoe-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