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티 성지

성지

장소 소개

삽티 성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의 산중 고개와 옛 교우촌의 기억을 중심으로 조성된 천주교 대전교구의 성지이다. ‘삽고개’라고도 불리며,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도 대전교구의 성지·사적지로 등재되어 있다. 인근 도앙골 성지와 옛 산길로 연결되는 지형 자체가 순례의 중요한 요소로, 한 건물 안에서 머무르기보다 산길과 교우촌의 자리를 걸으며 박해기 신앙 공동체를 기억하도록 이끈다.

이 성지의 핵심은 성 황석두 루카와 이 지역 신앙 선조들의 기억을 현재의 기도와 순례로 이어 가는 데 있다. 대전교구는 삽티와 도앙골을 잇는 도보 순례길을 안내하여, 순례자가 산지의 공간을 직접 걸으며 교우촌 신앙을 묵상할 수 있도록 한다. 큰 성당 건축이나 화려한 시설보다 옛 공동체의 자리, 산길, 신앙의 기억 자체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삽티는 내포 지역의 박해기 교회사를 ‘걷는 순례’로 만나는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유래

삽티, 곧 삽고개 일대는 조선 후기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산속으로 들어와 살면서 형성된 교우촌 지역이다.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와 내산면 금지리 사이의 고개를 중심으로 능선 남북의 골짜기에 신자들이 흩어져 살았고, 고개를 넘어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며 신앙생활을 이어 갔다. 건너편 도앙골 교우촌과도 연결되어 있었던 것으로 교구 자료는 설명한다. 산지의 지형은 박해를 피하기에는 유리했지만, 동시에 신자들이 서로 연락하고 생활 물자를 나누며 공동체를 유지해야 하는 조건이기도 했다.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까지 이곳에 살았던 인물 가운데 성 황석두 루카의 양자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가 잘 알려져 있다. 황석두가 두 사람을 삽티에 살게 하면서 교우촌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며, 황석두가 1866년 3월 30일 갈매못에서 순교한 뒤 황천일과 황기원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 삽티에 안장하였다. 무덤의 정확한 흔적은 오늘 남아 있지 않지만, 성인의 유해를 모셨던 장소라는 기억은 삽티의 중요한 신앙사적 의미가 되었다. 가족 관계와 교우촌의 생활이 순교 이후의 장례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삽티의 역사는 성인 개인의 이야기와 공동체의 이야기가 겹쳐 있다.

1964년 산림 개간 중에는 ‘즘터’라 불리던 옹기 터에서 박해 시대의 성물이 담긴 옹기가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삽티가 단지 전승으로만 전해진 곳이 아니라 숨어 살던 교우들의 실제 생활 흔적을 품고 있음을 보여 주는 자료가 되었다. 성물은 박해 속에서 신앙을 실천하던 사람들이 이 산중에 실제로 생활했음을 떠올리게 하는 물질적 흔적이다.

오늘 삽티는 도앙골과 연결되는 도보 순례길을 통해 옛 교우촌 사이의 관계를 되살리고 있다. 과거에는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넘나들며 서로를 연결하던 산길이었지만, 이제는 순례자들이 성 황석두와 교우촌 신자들의 신앙을 되새기는 길이 되었다. 시대와 목적은 달라졌지만 길 자체가 신앙 공동체의 기억을 이어 주는 매개가 되었다는 점에서 삽티의 역사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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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대전교구 (Diocese of Daejeon)

공식 홈페이지: http://www.dj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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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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