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 감영과 옥 터
개요
경상 감영과 옥 터는 조선시대 경상도 감영이 있던 대구에서 박해 때 체포된 경상 지역 천주교 신자들이 갇혀 옥고를 치르던 순교 사적지이다. 대구대교구 대안성당이 관할하며, 관덕정순교기념관 자료는 이곳을 이윤일 요한 성인과 순교 복자 19위, 하느님의 종 3위 등 경상 지역 순교자들의 신앙 증거지로 소개한다.
역사
〔경상 감영의 옥〕 관덕정순교기념관 자료에 따르면 경상감영은 1601년 대구에 설치되었고 죄인을 가두는 감옥을 두었으며,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서 많은 고초를 겪고 옥사했다. 감영 옥사는 대구 읍성 서아문 안의 옥골에 있었고 위치는 서내동 8번지 일대로 오늘날 대안성당이 그 일대에 속한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을해박해(1815), 정해박해(1827), 병인박해(1866~1868) 때 각 고을에서 체포된 신자 가운데 끝까지 배교를 거부한 이들이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경상 감영이 있는 대구로 이송되었고 최종 판결과 형 집행이 내려질 때까지 감영 옥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설명한다.
〔을해박해(1815)〕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을해박해가 경상도 북부(청송, 진보, 영양 등)와 강원도 남부(원주, 울진 등) 산골 교우촌을 대상으로 지방 관리 등이 주도한 박해였다고 설명한다. 1814년 대기근 속에서 일부 포졸과 외교인들이 신자들의 재산과 곡식을 빼앗으려는 사욕과 배교자의 밀고가 박해를 촉발했고, 체포와 박해는 수개월 만에 끝났으나 경상 감사가 장계를 올리고 처형 결정을 받기까지 1년 6개월여가 걸려 옥사한 교우가 많았다고 한다. 경상 감영으로 이송된 33명 가운데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 이들은 20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7명은 옥사, 7명은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되었다(관덕정순교기념관).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 청송 노래산 교우촌 출신 신자들은 1815년 2월 22일경(주님부활대축일)에 체포되어 경주 관아에서 먼저 문초를 받고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는 혹독한 형벌 속에서 배교했다가 감영 문을 막 나서던 중 안동에서 이송되어 온 김종한 안드레아를 만나 그의 권면으로 다시 감영 안으로 들어가 배교를 철회했고, 매질을 당한 뒤 옥에 끌려 들어가자마자 숨을 거두었다. 이때가 1815년 음력 4월 또는 5월이며 나이는 50세가량이었다(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옥중의 신자들〕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는 최봉한 프란치스코가 1815년 음력 5월경, 서석봉 안드레아와 김시우 알렉시오, 김흥금·김장복 부자가 1816년 12월 9일 이전, 안치룡이 1815년 12월 26일 이후 옥중에서 순교했다고 적는다. 관덕정순교기념관 자료는 옥에 갇힌 신자들이 낮에는 짚신을 삼아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밤에는 공동기도를 바쳐 대구 읍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고 전한다. 고성대 베드로, 고성운 요셉 형제, 구성열 바르바라, 김화춘 야고보, 이시임 안나, 김희성 프란치스코, 김종한 안드레아 등 7명은 1816년 12월 19일 경상 감영 사형장(아미산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김종한 안드레아는 김진후 비오의 아들이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작은할아버지이다.
〔정해박해(1827)〕 상주·안동·봉화 등지에서 신자 31명이 체포되어 끝까지 신앙을 증거한 6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경화 바오로는 1827년 11월 15일(음력 9월 27일), 김세박 암브로시오는 1828년 12월 3일 옥중에서 순교했고, 안군심 리카르도는 8년의 옥고를 치른 뒤 1835년 옥중에서 병사했다(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박사의·김사건·이재행 세 안드레아는 사형 선고 뒤에도 조정의 판결이 내려오지 않아 오랜 옥살이를 하다 기해박해(1839) 때 5월 26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관덕정순교기념관은 이들이 13년간 갇혀 있다가 1839년 음력 4월 14일 관덕정 형장에서 참수되었다고 적어 날짜 표기가 출처마다 다르다. 박경화 바오로는 옥에서 “이 옥을 복락소(福樂所)로 생각하시오”라고 권했다고 전한다.
〔병인박해(1866~1868)〕 성 이윤일 요한(1815~1867)은 문경 여우목 교우촌 회장으로 1866년 11월 18일 체포되어 문경 관아와 상주를 거쳐 경상 감영으로 이송되었고, 도착 사흘째인 1867년 1월 21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신석복 마르코(1828~1866)는 밀양 명례 출신으로 체포되어 밀양 관아를 거쳐 대구로 이송되었고 1866년 3월 31일(또는 3월 18일) 관덕당 형장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박대식 빅토리노(1812~1868)는 김해 사람으로 김해 관아를 거쳐 경상 감영으로 압송되어 1868년 10월 12일 관덕당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이상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관덕정순교기념관은 병인박해 때 경상감영 옥사자로 서인순 시몬과 송 이야기(1866년)를 기록한다.
〔감영 옥터 표기〕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자료는 옥 터 위치를 대구시 중구 서성로 16길 77 서문로교회와 대안성당 일대로, 감영 공원 쪽은 포정동 10-15로 표기하며, 병인박해 때 신석복 마르코와 오 야고보가 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교수형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는다. 같은 감영 공원 자료는 조선시대 오리정 마당에서 중죄인을 교수형으로 처형했다고 전한다.
관련 장소와 인물
- 대안성당: 경상 감영과 옥 터를 관할하는 성당이다(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 대구 관덕정(관덕정순교기념관): 감영 옥의 신자들이 참수된 형장이 있던 곳이다.
- 박경화 바오로·김세박 암브로시오·안군심 리카르도: 정해박해 때 감영 옥에서 순교한 복자들이다.
- 김윤덕 아가타 막달레나·최봉한 프란치스코·서석봉 안드레아·김시우 알렉시오: 을해박해 때 감영 옥에서 순교한 복자들이다.
참고자료 및 출처
- 관덕정순교기념관, 대구의 성지 “7. 경상감영 옥터”. 경상감영 설치(1601), 옥사 위치, 을해·정해박해 옥사자와 형장 순교자 명단.
http://www.daegusaint.org/p405/1920 -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한국천주교주교회의), 관련 성지 “경상 감영과 옥터”. 을해·정해·병인박해 순교자 약전과 옥터 위치.
https://cbck.or.kr/koreanmartyrs/Shrines/30 -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사진 자료 “경상 감영 옥터”. 김흥금·김장복·안치룡의 옥사와 병인박해 순교자.
https://cbck.or.kr/koreanmartyrs/Resources/all?no=11002786 -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사진 자료 “대구 경상감영 공원”. 김윤덕 아가타의 신앙 증언, 경상감사 장계, 오리정 마당 처형.
https://cbck.or.kr/koreanmartyrs/Resources/all?no=11000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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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10월 15일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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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경상 감영과 옥 터", 마지막 수정 2026년 10월 15일 20:45. https://missamap.com/ko/kr/daegu-gyeongsang-gamyeonggwa-ok-teo-shrine/wi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