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은 홍유한 선생의 유적(고택)지

성지

장소 소개

농은 홍유한 선생의 유적(고택)지는 천주교 안동교구가 영주의 순례지로 안내하는 장소로, 조선 후기 홍유한이 구구리에서 수덕생활을 실천한 삶의 터를 기억한다. 안동교구는 세례 여부와 별개로 그가 서학의 가르침을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삶의 규범으로 받아들여 실천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보며, 그의 삶을 교구 지역 신앙의 이른 배경으로 기억한다.

현재 고택지에서는 홍유한이 머물렀던 터와 함께 집안의 역사도 확인할 수 있다. 입구에는 조부 홍중명의 효행을 기려 내려진 정려문 현판이 복원되어 있어, 가톨릭 순례의 기억과 조선시대 가문의 흔적이 한 공간에 겹쳐 있다. 홍유한의 묘가 있는 봉화 우곡성지와는 역할이 다르며, 이곳은 그가 실제로 거주하며 수덕을 실천한 생활의 자리를 기억한다는 데 초점이 있다. 성당이나 본당이 아니라 한 인물의 신앙적 실천과 그 삶의 터를 되새기는 역사 순례지라는 성격이 뚜렷하다.

역사와 유래

홍유한은 1726년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 1742년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갔다. 1750년 무렵부터 「천주실의」와 「칠극」 등 서학서를 접하며 천주교 사상을 공부했고, 이를 지식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자신의 생활 규범으로 삼으려 했다. 세례받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지만, 그는 천주교 교리에 따라 스스로 수계생활을 실천한 한국 교회의 초기 수덕자로 기억된다.

1757년 그는 서울을 떠나 충청도 예산으로 옮겨 약 18년 동안 조용한 생활 속에서 서학 연구와 수덕을 이어 갔다. 1775년에는 더 깊은 수계생활을 위해 소백산 아래 순흥 고을의 구구리로 거처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는 절제와 기도, 묵상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며 178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약 10년을 지냈고, 선종 뒤에는 봉화 우곡리 문수산 자락에 묻혔다.

구구리의 생활 터는 이후 홍유한의 신앙적 실천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었다. 고택지에는 조부 홍중명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문 현판이 전해졌고, 안동교구는 교구 설정 25주년과 홍유한 선종 210주년을 기념해 1995년 5월 27일 이곳에 유적비를 세웠다. 비의 앞면에는 그를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수덕자’로 기리는 문구가 새겨졌고, 옆과 뒷면에는 생애가 정리되어 그의 삶을 장소의 기억으로 남겼다.

이곳의 역사적 의미는 한국 천주교회가 공식적으로 형성되기 전, 한 유학자가 서학을 받아들이고 일상의 실천으로 옮겼던 과정을 구체적인 생활 터에서 되새길 수 있다는 데 있다. 홍유한의 생애는 교회 제도가 자리 잡기 전에 신앙의 내용이 개인의 탐구와 절제된 생활을 통해 어떻게 수용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주며, 그 때문에 안동교구 지역 신앙사의 중요한 전사로 기억된다.

한국 가톨릭 장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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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안동교구 (Diocese of Andong)

공식 홈페이지: http://www.acatholi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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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상태: 공식 출처최종 업데이트 2026년 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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